<볼록거울> 100세 작곡가 김성태 옹

2009. 3. 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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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꿈길밖에 길이 없어 / 꿈길로 가니 / 내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가곡 '꿈' 중)

노랫말처럼 분위기가 사뭇 애련하다. 밤마다 어긋나는 꿈결로나마 노중에서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 아프게 배어 있다. 이 노래는 조선조 여류시인 황진이의 시에 김성태(金聖泰) 옹이 곡을 붙인 것이다.

작곡가 김성태 옹이 뒤돌아보는 인생길은 실로 아득하다. 그의 나이 올해로 100세. 1910년에 태어났으니 만으로 99세인 백수(白壽)를 맞았다. 젊은 시절이 어제런듯 가깝기만 한데, 꿈길로 달려온 세월은 거짓말처럼 저 멀리 흘러가버렸다.

잘 알다시피 김 옹은 한국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동심초' '한 송이 흰 백합화' '이별의 노래' 같은 가곡은 학창시절에 누구나 즐겨 들었던 애창곡들이다. 학창시절뿐이던가. 청초한 음률이 안겨주는 동심의 세계는 성년이 돼서도 우리의 감성을 세월 저 건너편으로 훌쩍 데려가곤 한다.

설도가 가사를 짓고, 김 옹이 곡을 붙인 '동심초'는 꽃이 피고 지는 이 계절에 부르면 딱 좋다. 역시 만남과 이별의 정한이 뭉클하게 묻어 나오는 노래여서다. "꽃 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김 옹은 1930년대에 동요집 '새야새야파랑새야'를 내며 작곡가로 데뷔했다. 이 동요집엔 모두 19곡의 담겨 햇병아리 소리처럼 해맑은 정서를 심어주었다. 그러니까 올해는 그가 데뷔한 지 8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왕년에 김 옹이 축구선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는 1940년대를 주름잡은 축구의 명문 경신중학(현 경신중고)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유명 축구선수의 상당수가 이 학교 출신이어서 당시에 '국가대표 양성학교'로 통했다고 한다. 김 옹은 축구의 귀재였던 김용식(1985년 타계)과 함께 센터 포워드로 뛰었다.

그게 밑천이 돼서인지 김 옹은 100세인 지금도 무척 건강하다. 맨손체조는 물론 걷기와 자전거타기로 힘차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물론 잔병치레도 전혀 하지 않는다. 청력이 다소 떨어진 것 외에는 생활에 별 불편이 없다는 것이다. 축구를 취미와 특기로 내세울 만큼 그의 축구 사랑은 여전하다.

김 옹이 세상에 선보인 노래는 100곡이 훨씬 넘는다. 가곡만 100곡에 가깝고, 그밖에 교성곡, 관현악곡, 실내악곡도 다수 내놓았다. 이런 창작활동은 지금도 쉬지 않아 가곡과 동요의 작곡에 열중이란다. 다시 말해 80년 인생을 고스란히 음악과 벗하며 살아온 셈이다.

인생 100세와 음악 80년을 맞은 올해에 이를 기념하는 행사 등이 차례로 마련된다고 한다. 기념사업의 실무준비는 제자인 김현중 공주교대 음악교육과 명예교수 등이 맡았다. 지난 2004년에 정년퇴임한 김 교수 역시 이미 고희를 넘긴 나이여서 서울음대 시절에 가르침을 주었던 은사와 함께 노년기를 보내고 있다.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는 11월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요석 김성태 박사 음악 80년 기념연주회'. 모윤숙 작시, 김성태 작곡의 교성곡 '비바람 속에'를 주제로 한 이날 연주회에서는 현재 창작 중인 가곡과 기악곡을 포함해 김 옹이 평생 동안 작곡했던 주옥편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작품집이 연주회에 맞춰 출간되고, 음악회 녹음음반도 몇 장의 CD에 담겨 나오게 된다. 음악80년 기념문집 발간도 계획에 들어 있다고.

모든 분야를 통틀어 장수자가 가장 많은 곳은 음악인 것 같다. 예술원 회원만 해도 올해 101살인 국악인 이혜구 옹과 작곡가 김동진 옹(1913년생)이 김성태 옹과 더불어 100세 안팎이다.

이유는 아마 심신을 정화하고 삶을 긍정케 하는 음악과 늘 함께 지내는 데 있지 않나 싶다. 기쁜 곡이 됐든 슬픈 곡이 됐든 내면 세계를 맑게 해주는 '행복 비타민'을 상시 '복용'하고 사는 이들이 장수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김 옹의 대표곡으로 역시 이 계절에 어울리는 '한 송이 흰 백합화'(작사 김호)를 한번 불러보라. 그 청순함에 젖어들다 보면 이들이 왜 그토록 건강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사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해맑은 영혼의 본향이나 다름없다.

"가시밭의 한 송이 흰 백합화 / 고요히 머리 숙여 홀로 피었네 /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 속에 / 고요히 머리 숙여 홀로 피었네 / 어어뻐라 순결한 흰 백합화야 / 그윽한 네 향기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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