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중국 가정의료기 한국인이 '평정'

2009. 2. 2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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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국한인회 정효권 회장의 '성공 신화'… 가족경영으로 시장점유율 1위에

80만 재중국 교민의 대표인 재중국한인회 새회장에 오른 중국 산둥성 칭다오 리커(麗可) 의료기계 정효권(50) 회장. 정 회장은 중국 진출 7년 만에 그렇게 어렵다는 중국 내수시장에 완벽하게 뿌리내린 유망 중소기업인이다. 그가 2002년 11월 칭다오에 세운 리커 의료기계는 현재 5개 공장에서 온열 치료기, 온열 매트 등 12종의 의료기기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 걸쳐 있는 1200여 개 대리점을 통해 지난해 6억 위안(약 1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2007년보다 2000만 위안(약 40억 원)이 늘어난 것으로, 중국 가정용 의료기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직원 20여 명을 비롯해 전체 직원은 1000여 명에 이른다.

정 회장의 오늘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마산고와 부산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주)대우 신발 판매부서에서 1년 6개월, 대한생명에서 11년 동안 보험영업과 대리점 소장으로 일한 그는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2001년 한 해 동안 중국을 드나들면서 의료기 사업 진출을 시도한 것. 한국 최초로 신장결석 체외충격파 시술기계를 만들어 의료기 제조업에 뛰어들었던 매제(조승현 누가의료기 회장)의 권유 덕분이었다. 중국에 오기 전에는 1년 동안 매제의 의료기 공장 근로자와 의료기 대리점 직원으로 직접 뛰면서 경험을 쌓았다.

회사 설립 5개월 만에 사스로 위기 맞아

그는 공장 입지를 찾기 위해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다가 항구 도시인 칭다오에 정착하기로 했다. 우선 교통 편의를 감안해서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의료기 부품을 가져와 중국에서 조립하는 방식이었던 만큼 항구 도시가 공장 입지로 유리했던 것. 의료기 핵심부품인 모터를 구하기도 칭다오가 편리했다. 중국 내수 시장을 겨냥하는 만큼 지리적으로도 중국 대륙 중간에 위치한 산둥성에 자리를 잡는 것이 제품을 수송하는 데 수월했다. 더욱이 마산 출신인 정 회장으로서는 바다를 보면 마음이 푸근해졌고, 날씨도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칭다오가 중국 도시 가운데 한국 기업의 진출이 가장 많은 도시였다는 점은 전혀 고려 사항이 되지 않았다.

대부분 그렇듯 중국 사업이 처음부터 순풍에 돛 단 듯 풀리지는 않았다. 회사를 세우기도 힘들었고, 제품 허가를 받기도 까다로웠다. 2002년 11월 회사를 세우기까지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퍽이나 힘든 시기였다. 회사를 세운 뒤에도 건강과 관련한 분야이니만큼 의료기에 대한 제품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회사가 출범한 지 5개월 만인 2003년 4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중국 전역을 강타하면서 충격은 컸다.

당시 행정기관의 모든 업무가 사실상 마비됐다. 각종 인·허가를 받느라 씨름하던 상황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자본금은 바닥나고, 예금 통장에는 불과 800위안(16만 원)만 남아 있었다. 초창기 함께 온 한국인 직원 4명에게는 월급도 제때 주지 못했다.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한겨울에도 사무실에 난로조차 피우지 않았다. 문을 닫고 철수해야 하는 고비를 만난 것이다.그렇다고 그냥 포기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평소 안면이 있던 중국인 지인들에게 급전을 빌려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중국 내수 시장을 공략하려면 대리점 사업이 적당하다고 보고, 2003년 8월 칭다오 시내에 처음으로 대리점 3개(1개는 직영)를 열었다. 알고 지내던 조선족들이 점포당 30만~50만 위안(약 6000만~1억 원)씩 돈을 들여 대리점을 연 것이다.

무료 체험관을 열어 소비자들이 의료기가 건강에 효험이 있음을 실감하도록 하면서 판매 실적이 차츰 나아졌다. 사업이 결정적으로 도약의 기회를 잡은 것은 2004년 11월. 판매 이윤이 너무 박하다는 생각에서, 2005년 1월 1일부터 온열 치료기 등 의료기를 대당 300위안(약 6만 원)씩 올리기로 하고, 연말 2개월 동안 판촉행사에 들어갔다. 서둘러 사면 돈을 아낀다는 생각에 소비자들이 몰려들었고, 불과 한 달 동안 2만5000대를 파는 '대박'을 터뜨렸다. 대당 가격을 1만 위안(약 200만 원)으로 쳐서 한 달 새 2억5000만 위안(약 500억 원)을 챙기는 믿지 못할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품이 신뢰를 얻은 상태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던 고객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이 먹힌 것이다. 당시 100여 개였던 대리점이 순식간에 450여 개로 크게 늘었다. 소자본을 들여 불과 몇 달 만에 투자금 전액을 회수하는 것을 보고는 중국 사람들이 너나없이 대리점을 하겠다고 달려든 것이다.

과감한 광고 전략으로 인지도 높여

정 회장은 회사가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눈을 돌렸다. 브랜드 충성도가 강한 중국 소비자들을 겨냥한 포석이었다. 2005년 1월 중국 국영 방송인 CCTV 1번 채널(종합 프로)의 노인 대상 프로그램인 < 석양홍 > 에 회사 광고를 시작했다. 그해 5월에는 CCTV 1번 채널의 대표 뉴스 프로그램인 < (오후 7시) 종합뉴스 > 앞에 광고를 내보냈다. 한 달 동안 700만 위안(약 14억 원)을 들인 이 광고는 칭다오의 중소기업을 중국 전역에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 중국 전역에서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그는 이와 함께 '리커' 상표를 알리기 위해 2004년 7월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하는 중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을 공식 후원했다. 또 2006년 6월에는 중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에 100만 위안(약 2억 원)을 기증해 선수들의 초상권을 1년 동안 사용했다. 지금도 CCTV를 비롯해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등 유력 신문에 꾸준히 광고를 싣고 있다. 2005년 9월에는 국정자문기구인 전국정치협상회의가 주최하는 세계 석학들의 토론장인 '21세기 논단' 후원을 맡기도 했다.

그는 직원들을 각별하게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재는 기술과 함께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핵심 요소라는 생각에서다. 직원 봉급도 칭다오에서 첫손에 들 정도다. 현장 공장 근로자들은 월 2700위안(약 54만 원), 사무직 직원은 월 6000위안(약 120만 원)을 넘는다. 연간 7차례 사원 격려 행사를 하며 그때마다 디지털 카메라, 전자레인지 등 푸짐한 선물을 안겨준다.

그는 '리커 가족'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이 세상에서 가족만큼 강한 조직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직원은 물론이고 고객도 가족처럼 여기고 제품을 개발, 생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 회장은 올해 국제 금융위기로 경영 여건이 불투명하기는 하지만 매출 목표를 8억 위안(1600억 원)으로 잡고 있다. 대리점도 13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회사를 혈압 측정기 등도 생산하는 종합 가정용 의료기 기업으로 크게 키울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업종 다각화의 일환으로 천연 비누 제조업에 진출했는데 이미 중국 전역에 10개의 총판을 확보했다.

정 회장은 최근 제5대 한인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앞으로 임기 2년 동안 역대 어느 한인회장보다 잘했다는 평가를 받겠다"고 밝혔다. 기존 한인회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것은 예산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한 그는 연간 700만 위안(약 14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한인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펴겠다고 강조했다.

한인회 예산 확충 다양한 활동 계획

정 회장이 취임한 이후 재중국 한인회는 첫 공식 행사로 춘절(음력 설날)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22일 1000여 명의 중국·한국 노인을 초청한 경로 잔치를 베이징 코리아타운인 왕징 부근의 한 음식점에서 성대하게 벌였다. 정 회장은 "중국의 혐한 감정은 지나치게 과장된 면이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 같은 혐한 감정이 확산되지 않도록 경로 잔치와 비슷한 행사를 연간 두세 차례 열면서 중국과 한국 사람 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사소통을 하는 기회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인터넷 선플 운동을 펴면서 한국과 중국 누리꾼의 악플을 막을 계획이다. 또한 전임 재중국한인회가 베이징 올림픽 이후 펼쳤던 '겸따마다(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기)' 운동을 더욱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 회장은 "국제 금융위기와 위안화 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중국을 떠나는 우리 교민이나 기업이 늘고 있다"면서 "그러나 중국의 경제력과 우리와 가깝다는 지리적 여건 등을 감안하면 우리 교민들이 다시 중국에 돌아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중국 내수시장 성공비결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중국에 진출한 모든 외국 기업의 꿈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높아 외국 기업이 진출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중국에서 값싼 임금을 겨냥했던 임가공 업종은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고 이제는 중국 내수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전하는 내수시장의 성공 비결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내수시장을 개척하는 데는 대리점을 통한 소자본 프랜차이즈 창업이 좋다. 외국 기업이 중국 내수시장을 직접 뚫는 것보다 중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리점 모집이 효율적이다. 중국 사람들은 소자본으로 대리점을 차릴 수 있고, 회사 측은 직접 진출하는 데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꾸준히 제품을 납품할 수 있다. 상부상조인 것이다.

2. 대리점의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소자본 창업을 하면 중국 사람들은 대리점의 성공 여부를 유심히 눈여겨본다. 본사가 뛰어난 기술을 갖춘 제품을 값싸게 공급하면 대리점의 제품 판매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국 사람들이 느리다고 하지만 돈만 된다면 언제든지 달려온다.

3. 사후 서비스를 철저히 한다. 제품을 대리점에 넘겨주고 본사가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 사후 서비스를 철저히 해 고객의 불만을 없애고자 노력해야 한다. 리커 의료기계의 경우 중국 전역에 43개 사후 서비스센터 거점을 만들어 고객의 불만이나 불량품을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임원 10명이 대리점 100여 개씩 분담해서 관리하고 있다.

4. 현금 장사를 해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고 제품부터 넘기면 안 된다. 리커 의료기계는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현금을 먼저 받고 제품을 대리점에 납품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래야 외상 제품에 대한 부담을 없앨 수 있다.

5. 현지화가 중요하다. 리커 의료기계도 처음에는 한국에서 부품을 가져왔지만 지금은 35개 중국 협력업체를 통해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현지화가 필수적이다. 직원이나 고객을 가족처럼 대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성실하게 대하면 모든 게 풀린다.

홍인표 < 경향신문 베이징지국장·문학박사 > iphong@kyunghyang.com-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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