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영면] 인파몰린 마지막 작별 표정

2009. 2. 2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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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 살았다" 생전 음성 흘러나오자 울음 바다"참된 하느님의 사람임을 보여주셨다" 교황청 고별사운구 행렬 지나가는 곳마다 시민들 손 흔들며 배웅아침부터 발길… 용인 장지에도 추도객 2000여명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김수환 추기경을 보내는 20일 하늘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아쉬워하듯 추위와 짙은 황사를 보냈다. 그러나 추기경의 마지막 길에 동참하려는 추도객들의 발길은 장례 미사가 치러진 서울 명동에서 영면의 장소인 경기 용인의 장지까지 이어졌다.

■ 장례 미사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 선종(善終) 닷새째인 이날 오전 10시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장례미사를 열어 마지막 작별 의식을 치렀다. 미사에는 한승수 국무총리와 김형오 국회의장, 주한 외교사절, 사제와 신자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평소 장애인에 대한 고인의 각별한 관심을 반영, 장애인 신자 6명이 맨 앞쪽에 자리했다. 일반 시민 1만여명은 대성전 밖에서 대형 스크린을 보며 미사를 함께 했다.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의 이름으로 집전한 미사는 신자들이 입당 성가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 를 부르며 시작됐다. 이후 구약 성서의 '지혜서 3장'과 신약 성서의 '마태오 복음' 등이 낭독된 '말씀의 전례'가 이어졌다.

정 추기경은 고인이 잠든 관에 성수를 세 번 뿌린 뒤 이어진 강론에서 "김 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성자처럼 산 촛불 같은 존재"라며 "'고맙습니다. 사랑하십시오'라는 유언을 받들어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 참가자들이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제병'(際餠)을 나눠 먹는 '성찬 예식'이 끝난 뒤 이어진 '작별 예식'에서 정 추기경은 "교황에게 충심으로 협력한 김 추기경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한다"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추도사를 대독했다.

이후 정부 대표 등 5명의 고별사가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 총리가 대독한 고별사에서 "이 나라를 지탱해온 큰 기둥이고 우리의 나아갈 바를 가르쳐 준 큰 어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 한다"며 "이분법이 팽배한 요즘 타인을 존중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것을 가르치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았다"고 애도했다.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청 대사도 "전 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고별사가 끝난 11시 30분 김 추기경의 생전 음성이 공개됐다. 2007년 녹음된 "내 나이 팔십오, 여생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고인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성당 안팎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진 고별 의식에서 정 추기경은 "이제 우리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과 마지막 작별을 한다. 언젠가 주님 안에서 다시 만날 희망으로 위안을 삼는다"며 향을 피우고, 관 주위를 돌며 성수를 뿌렸다. 유족들의 울음은 더욱 커지고, 눈물을 흘리는 신자들도 늘어나면서 장례미사는 오전 11시40분 끝났다.

■ 엄숙한 운구

미사 후 검은색 사제복 차림의 젊은 신부 8명이 관을 들고 성당 가운데 통로로 나섰다. 맨 앞에는 십자가를 높이 든 사제와 영정 사진을 든 사제가 따로 섰다. 느린 걸음으로 옮겨지는 관을 신자들이 울면서 따랐고, 성당 앞마당에 대기한 운구차에 옮겨진 뒤 정오께 장지로 향했다.

김 추기경의 관을 실은 장례용 캐딜락은 선도에 선 경찰 오토바이와 순찰차를 따랐고, 운구차 뒤에는 주교단과 유가족, 사제들을 태운 대형 버스 18대가 함께 했다. 명동을 출발한 운구 행렬은 경찰의 교통 통제 도움을 받아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양재, 수원 톨게이트, 죽전 로터리를 거쳐 약 1시간 10분 만에 경기 용인 모현군의 서울대교구 천주교 공원묘지 성직자 묘역에 도착했다. 운구 행렬이 지나는 곳마다 시민들은 손을 흔들거나 성호를 그어 김 추기경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 하관예절

명동성당에서 고인의 장례미사가 진행되던 오전 10시부터 추도객 50여명은 성직자 묘역에 미리 파놓은 김 추기경의 장지 앞에 서 있었다. 추도객들은 성서와 묵주를 들고 끊임 없이 성가를 부르고 기도문을 읊조렸는데,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 하관 예절이 시작된 오후 1시30분에는 2,000여명으로 불어났다.

시부모와 남편 모두 이곳에 안장됐다는 경기 안양의 김수복(70ㆍ여)씨는 "이런 분이 또 계실까 싶다. 남편 잃고는 마음 아픈지 몰랐는데 김 추기경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가슴이 텅 빈 것 같다"며 "평생을 남을 위해 사셨던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일찍 나왔다"고 말했다.

성직자 묘역 입구에도 추도객들이 두 줄로 도열한 채 정오 무렵부터 기도와 성가를 부르며 김 추기경을 기다렸다. <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기도 > 라는 위령기도는 잔잔했고, < 주님은 나의 목자 > , < 주여 임하소서 > 성가는 경건했다.

운구 행렬이 묘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후 1시16분. 도착 즉시 서울諭낢?소속 8명의 사제가 운구를 위해 차량의 뒷편에 도열했다. 이어 오후 1시30분 성가와 기도 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추기경을 품은 관이 운반되고, 정진석 추기경 등 주교단과 유족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하관예절이 시작됐다. 정 추기경이 주교관을 쓴 채 기도를 올리는 도중 고인이 잠든 관은 제자리를 찾아 다가왔다. 정 추기경이 성수를 뿌린 뒤 관은 묘역 앞 거치대에 놓였다. 고인의 관이 놓일 자리는 이미 가로 1m, 세로 2.5m, 깊이 1.2m 크기로 파여 있었다.

< 주님은 나의 목자 >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묘지관리원 6명이 광목 천으로 휘감아 관을 땅 속으로 내려 놓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이어졌다. 하관이 끝난 뒤 정 추기경이 다시 성수를 뿌렸고 주례자의 선창에 따라 추도객들은 묵주기도를 올렸다.

이어 김 추기경의 관임을 표시하는 '명정(銘旌)'이 관 위에 올려졌다. 붉은 명정에는 '樞機卿 光山 金公 壽煥 스테파노 之柩'(추기경 광산 김공 수환 스테파노 지구)라는 글이 수놓아져 있었다. 명정 위에는 한지가 놓이고 관을 묻은 뒤에 구덩이 위에 덮는 널조각인 '횡대(橫帶)'가 관을 완전히 막았다. 이어 주변으로 주교들이 도열했다. 정 추기경이 성수를 뿌린 뒤 주교와 유족들의 순서로 성수와 흙을 번갈아 뿌렸다.

오후 2시5분, 묘지 관리원들이 봉분의 흙을 완전히 덮고 정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단이 퇴장했다. 이로써 엄혹했던 시절 우리들의 버팀목이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본인이 원하던 대로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故김수환 추기경 장례식 구름인파 몰려

故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20일 오전 10시경 서울 명동성당에서 교황장으로 엄숙히 치뤄졌다. 장례미사가 끝난 후 김 추기경의 시신은 오후 1시경 경기도 용인공원 성직자묘역에 옮겨져 안장됐다. /한국아이닷컴 고광홍 기자 kkh@hankooki.com

장재용기자 jyjang@hk.co.kr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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