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수출국가? 머릿니 수입국가?
[한겨레] [뉴스 쏙] 잊혀졌던 해충들의 아리송한 귀환
최근 "서울서 20년 만에 빈대 발견" 호들갑 뉴스피해인물 미 장기체류 이유로 '물 건너왔다' 추측전문가들 "심심찮게 보고되는 토박이종" 주장세계화·환경변화탓 살충제 내성 돌연변이 확산'해충 무역' 빈번해져 나라마다 벌레전쟁 골치
최첨단 21세기, 흡혈충들이 대거 귀환하고 있다.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빈대가 돌아와 경악하게 하고, 머릿니가 창궐해 참빗이 유행이다. 가히 벌레들의 역습이다. 자취를 감췄던 이와 빈대는 어디에 숨어 있다가 다시 나타난 걸까? 모기는 왜 계절을 안 가리며 더 강력해질까? 사람들이 가려움에 몸부림치는 동안 학자들은 행여 질병 재앙을 우려하며 벌레들과 씨름하고 있다.
컴백 비결 아무도 몰라
지난달 20년 만에 서울에서 빈대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7년 12월 30대 여성이 원인 모를 가려움증으로 세브란스병원을 찾았고, 연세대 의대 환경의생물학교실 용태순 교수팀이 조사에 착수했다. 결과는 빈대였고, 지난 12월 한국기생충학회지에 이 사실이 알려졌다. 다른 쪽에선 머릿니 감염사례도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유아원 및 초등학생의 4%가 머릿니를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향수(?)까지 불러일으키는 두 벌레의 복귀 이유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조사팀은 빈대가 미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해당 여성이 미국 뉴저지에서 살다 귀국한 것이 근거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정확한 결론은 없는 실정이다. 빈대가 미국에서 온 것으로 확정하려면 간단치 않은 조사를 거쳐야 한다. 발견된 빈대와 미국 빈대의 유전형질을 비교 조사해야 하는데, 이 조사는 없었다.
머릿니가 다시 출몰하는 과정도 미스터리다. 우리나라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청결해지면서 머릿니는 한때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그랬다가 다시 생겨난 정확한 이유를 확인할 길이 없어 전문가들은 외국에서 들어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벌레들의 세계화?
사라졌던 벌레들이 돌아오거나 새로운 벌레가 눈에 띄는 주요한 이유로는 세계화가 꼽힌다. 외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짐에 유충이나 성충이 묻어 오가는 일이 많아졌다. 실제 빈대나 머릿니 같은 해충 외에도 다양한 생물종이 국내로 흘러들어온다. 2005년 부산·울산·포항·진해 등 경상도 부근 동해안에서는 영국 남부와 프랑스 서부, 지중해 연안에 사는 유럽산 따개비가 발견됐다. 이뿐 아니라, 대서양에 살던 유령멍게, 지중해 원산의 주름미더덕도 우리 바다에 정착했다. 이들 외래 바닷생물들은 여행객처럼 배를 타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화물선이나 유조선 같은 대형 선박이 화물이 없을 때 배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밸러스트에 채우는 바닷물에 이들이 섞여 들어온 것이다. 지난해 갑자기 늘어나 나뭇가지를 말라죽게 하거나 과일에 상처를 내며 기승을 부린 주홍날개꽃매미도 대표적인 외래 불청객이다.
철이 없어진 모기는? 겨울철 기승을 부리는 모기는 일반적으로 여름에만 활동하는 보통 숲모기나 집모기와 달리 사계절 활동하는 지하집모기들이다. 지하집모기는 90년대 초 잠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처음 잡혔는데, 아직도 재래종인지 들어온 것인지 안 밝혀졌다. 이미 일본에 있던 종류여서 일본에서 건너왔을 가능성도 꽤 높다고 한다.
국내에도 계속 있어 왔지만…
20년 만에 빈대가 발견된 소식에 다들 놀랐겠지만, 빈대는 사실 국내에 계속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다음은 한 학자가 털어놓은 이야기다. "2006년 어디서 전화가 왔어요. 빈대가 있다면서 빈대 없애는 법을 알려달라는 거였어요. 채집을 하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잘 안됐고, 가봤는데 냄새(빈대는 악취를 풍기는 특징이 있다)가 많이 나더라고요. 방제회사에 부탁을 해서 전체를 비닐로 봉쇄하고 살충 가스로 방제를 했는데, 여러 차례 방제했는데도 제대로 못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선박 등에서 방제를 하는 특별 자격증을 가진 분들을 소개해서 결국 해결했죠."
있는 빈대를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건 왜일까? 빈대에 물려 가려워도 쉬쉬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빈대가 묻어왔을 것으로 추정된 30대 여성과 같은 건물에 살던 다른 이들도 빈대가 확인된 뒤 이사를 가버리고 자취를 감췄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역시 괜한 소리가 아닌가 보다.
머릿니도 마찬가지다. 머릿니는 어린아이들에게 많이 발견되는데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어린이집 등에서 아이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머릿니가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문을 닫기 십상이어서 감추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곤충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박사과정 권덕호씨는 "머릿니가 국내에서 계속 있어온 것인지 외국에서 유입된 것인지를 조사할 시료인 머릿니를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시료를 확보해 원인을 찾아야 퇴치가 가능한데 감염 사실을 알리기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2002~2003년께 머릿니 창궐 소식이 뉴스를 탔던 것도, 학부모들이 나서 당시 보건복지부(현 보건복지가족부)에 민원을 넣으면서였다. 머릿니를 제공하려면 서울대 곤충분자생물학 연구실( soyoung5689@gmail.com)로 하면 된다.
환경 변화가 벌레 창궐 근본 요인
외국에서 유입됐든 재래종의 부활이든 근본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가 거론된다. 살충제의 남용으로 해충들의 살충제 저항성이 강해지는가 하면, 악화된 환경에 맞춰 돌연변이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더욱 생존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모기다. 질병관리본부의 이원자 박사는 "20년 전만 해도 서울에 녹지대가 많았지만 도심화가 급격히 이뤄져 도심에 열섬현상이 발생하면서 1년 내내 지하집모기가 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대·아열대 지역에서나 생기는 말라리아가 한겨울 우리나라에서 발병하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로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겨울철에도 살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내에 사는 모기 10마리 중 2~3마리가 말라리아를 감염시킬 수 있는 모기로 확인되고 있다. 모기 성충이 배나 비행기를 타고 유입되기도 하면서 '에어포트 말라리아'로 이름 붙은 신종 감염병까지 나오고 있다.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만 사는 모기들이 퍼뜨리는 병이다. 전세계 공항에서 널리 발견되는데, 모기들이 비행기를 타고 공항과 기내만 오가면서 생긴 현상이다.
살충제 내성도 더욱 강해지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와 서울대 공동연구팀이 돌연변이 빈대를 연구해 최근 발표한 결과를 보면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이 보통 빈대의 무려 264배에 이르렀다. 이 연구팀은 국내 머릿니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다. 충북과 충남, 전남 등 3개 지역의 머릿니에서 살충제에 저항성을 보이는 유전자를 찾아낸 것이다.
세계는 지금 벌레와 전쟁 중
벌레들이 더 극성을 부리고 질병이 확산되는 것은 국제적 현상이다. '치쿤군야'라는 감염증이 대표적이다. 이 병은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심한 통증과 고열을 동반한다. 치쿤군야는 '구부리다'는 뜻의 스와힐리어로, 모기에 물려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구부린 모양에서 이름이 만들어졌다. 아프리카 동부 해안 일대의 늪지대 모기가 옮기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이탈리아 등 유럽에 퍼진 데 이어 동남아시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요즘 말레이시아·타이 등지에선 뎅기열 감염 사망자가 줄을 잇고 있다. 뎅기열은 이집트 숲모기나 흰줄 숲모기가 전염시키고, 관절통·고열·구토·발진 등의 증상을 보이다 심할 경우 내출혈로 죽음에 이른다. 뎅기열 확산은 동남아의 빠른 도시화로 모기가 계절을 안 가리고 활동하게 된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에서도 흰줄 숲모기는 오래전부터 서식 중인데, 아직 뎅기열 발생 보고는 없다.
1938년 우간다의 서나일강 지역에서 발견된 뇌염의 일종인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는 50여년 동안 거의 발견되지 않다가 90년대 말부터 유럽 일부 지역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99년 미국 뉴욕에서도 발견된 뒤 3년 만에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심하면 목숨을 잃는 이 바이러스로 1999~2002년 300여명이 숨져 미국 사회가 공포에 떨기도 했다.
빈대 또한 미국에서 2004년부터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에서 급증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머릿니도 90년 이후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생겨나면서 대대적 휴교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선 빈대나 머릿니, 모기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일본도 해충에 취약한 노숙인들을 상대로 연구한 보고서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초등학생의 머릿니 감염 비율을 조사하고, 참빗으로 빗고 머리를 자주 감으라고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