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 권력이 싫어하는 바른 소리 할 것"

김수정 기자, rubisujeong@mediatoday.co.kr 2009. 1. 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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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희망을 찾아서]4.RTV

[미디어오늘 김수정 기자]

지난 12일 오전 10시, 서울 구로구 구로3동 RTV(이사장 이학영) 본사에서 9명이 둘러앉아 편성회의를 열고있었다. 조천중 편성팀장은 "정오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가야 한다"며 회의를 서둘렀다. 실업급여 얘기가 나오자 다른 이들도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직원은 며칠 전 실업급여를 신청하러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내 번호표가 190번이었는데 뒤로 130명이 더 있었다. 경기가 좋지 않다더니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우리만 힘든 게 아니지 않은가." 그는 되레 동료를 위로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RTV직원이었던 20여 명은 지난해 12월31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권고사직'됐다.

지난 2002년 9월에 개국한 RTV는 국내 유일의 시청자참여 전문채널로 그동안 하루 20여 시간씩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방송을 해왔다. 그런 RTV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시청자참여 프로그램에 대한 정책을 재고하면서 기금 지원이 잇따라 중단됐고 공익채널 선정에서도 배제됐다. 잇단 악재는 RTV를 경영위기로 몰아갔다.

객관적인 여건은 '채널중단' 요구…생존 위해 '비상경영' 선언

▷RTV '비상경영' 선언…전 직원 '권고사직'=

RTV는 지난해 11월28일 열린 이사회에서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전 직원에 대한 근로연봉계약을 12월31일부로 해지한다'고 공고했다. 직원의 임금을 줄 수 없을 만큼 재정상황이 안 좋아진 것이다. 그리고 닷새 뒤 연 직원설명회에서 '자원봉사'로 일할 직원을 모집했다. 10여 명의 직원들이 '자발적 운영주체'로 RTV에 남기로 했다.

시민의 목소리였던 RTV가 이대로 문닫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혜원씨는 "RTV라는 채널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것"이라며 "RTV가 문을 닫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운영을 위해 동료들과 고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주영 기획실장은 "정권이 바뀌면 힘들어질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면서 "그렇지만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는 곳인 만큼 손을 놓을 수가 없어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잇단 지원 중단에 공익채널 탈락…엎친 데 덮친 격=

RTV에 위기 신호가 감지된 것은 지난해 2월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출범 직후 "RTV에 대한 기금 지원 집행을 중단하고 적법성을 판단한 뒤 지원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월부터 7월까지 6개월 간 제작지원금과 시민제작자에게 돌아가는 방송채택료 집행이 미뤄졌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여당위원들이 집중 공격했고 동아·문화일보 등도 가세해 RTV가 참여정부의 특혜를 받았다고 보도하면서 색깔론 공세를 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방통위는 2009년 공익채널에서 RTV를 배제시켰다. '시청자 참여' 부문에서는 유일한 신청자인 RTV 대신 '법질서 강조'를 표방하는 법률방송이 개국 1년도 안 돼 공익채널로 선정됐다. 김영철 부이사장은 "나중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당시 심사결과 보고서를 확인해 봤는데 RTV는 모든 항목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체편성 비율이 높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전문편성비율' 항목조차 RTV는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 '채널 중단' 요구…하지만 '생존' 결정=방통위는 지난해 7월 위성방송을 통한 시청자참여 프로그램 제작지원금을 위성방송사업자(스카이라이프)에게 직접 지급하고 시청자참여 프로그램 채택방식을 비공모제에서 공모제로 전환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공모제를 추진했다. RTV는 개국 당시부터 옛 방송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스카이라이프의 시청자참여 프로그램을 위탁 운영해 왔다.

방통위의 'PP공모제' 도입, 스카이라이프의 '시민채널 위탁사업자' 계약 해지 통보, 공익채널 탈락은 공적지원금 비중이 높던 RTV에 직접적인 재정위기를 초래했다. 지난해 RTV의 운영재원은 △제작 지원금 및 운영 지원금 △케이블 수신료 △방문진 지원금 등 16억여 원이었지만 올해 RTV의 예산은 스카이라이프의 지원금 4억 원뿐이다. 이것 역시 계약을 체결하기 전이라 확정지을 수는 없다. 객관적인 상황은 RTV에 '법인 청산'과 '채널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생존'을 선택하고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올해 760편 편성키로…예년의 절반 수준=

'PP공모제'를 신청한 PP는 복지TV, 아리랑TV, 일자리방송, 법률TV, RTV, 리빙TV 등 6곳이다. 스카이라이프가 시청자참여 프로그램 지원비로 통과시킨 금액은 11억3600만 원이며 스카이라이프는 이들 PP에 지원비를 균등 분배할 것으로 알려졌다. RTV가 올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방송채택료는 1억8000만 원으로 지난해 8억4000만 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현재까지는 이마저 불투명해 재방송만으로 채널을 편성해왔다. 2월부터 편성을 해도 현재 예정된 금액으로는 전체편성을 다 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PP공모제 등으로 인한 RTV의 경영악화가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위축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RTV는 이 금액 중 40%를 일반 공모에, 60%는 기획공모에 배분할 계획이다. 나머지 프로그램은 무상으로 수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RTV는 올해 760여 편의 프로그램을 내보낼 계획이지만 이는 예년의 절반 수준인데다 이것도 무료수급의 정도에 따라 유동적이다. 대신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위축되지 않도록 RTV에 들어오지만 소화하지 못하는 작품은 다른 채널을 통해 방송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로 했다.

▷"반드시 살아 남아 권력자가 듣기 싫은 바른 소리 할 것"=

마혜원씨는 "올해 RTV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지만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RTV를 지키고 있는 만큼 최악의 상황에서 채널의 존속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철 부이사장은 "방송채택료가 줄어 시청자참여 프로그램의 활성화에는 한계가 있지만 장애인 이주노동자 지역민 여성 등 사회 약자에 관한 프로그램은 유지한다는 원칙을 세웠다"며 "제한된 여건에서도 이들 소재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영 기획실장은 "그간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수급됐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찾아 나서는 것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위기를 계기로 정말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이는, 하고 싶은 방송을 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은 1년을 넘어 이 정권 내내 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실험을 하면 된다"며 "반드시 살아남아서 권력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RTV의 역할이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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