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Q-English]남자는 칼로써 여자를 차지한다?

2009. 1. 21. 15: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의 명작 < 라쇼몽(Rashomon·羅生門) > 이 베네치아 영화제의 대상과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는 간결하고 문학적인 뛰어난 자막 번역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산적에게 강간당한 여자에 관한 스님의 증언을 이런 식으로 번역해 놓았다.

"A human life is truly as frail and fleeting as the morning dew."(인생은 정말로 아침 이슬처럼 덧없는 것입니다.) '덧없는'을 두운에 맞춰 frail and fleeting(연약하고 무상한)이라고 옮겨놓은 솜씨를 보면, 얼마나 공을 많이 들인 번역인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런데 그만 어느 한 대목에 이르면 예기치 못했던 폭소가 터져 나온다. 남편(시무라 다카시)이 지켜보는 앞에서 산적(미후네 도시로)에게 강간을 당한 여자(교 마치코)는 두 남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을 맞고, 그래서 산적과 남편에게 칼싸움을 붙여 살아남는 남자를 선택하겠다며 이런 말을 한다.

"A man has to make a woman his by his sword."(남자는 칼로써 여자를 차지해야 합니다.) '칼'에는 워낙 종류가 많아서, 널리 알려진 knife나 razor 이외에도 도적들이 무기로 삼는 blade, 군용 bayonet(단검), 이국적이고 멋진 단검 stiletto, 간편한 무기인 dagger(단검), 스코틀랜드의 단검인 dirk, 911 당시 오사마 빈 라덴의 전사가 비행기에서 효과적인 무기로 사용한 cutter, 정글에서 휘두르는 machete(벌목도, "마셰티"라고 발음), 멋쟁이 sabre, 알라모에서 최후를 마친 서부의 사나이 짐 보우이가 결투용으로 개발한 Bowie knife, 그리고 중국 요리사들이 사용하는 직사각형의 넓적한 칼 meat-cleaver 따위가 널리 쓰인다.

그런데 하고 많은 칼 가운데 무사들의 무기인 sword(劍)는 유별나게도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속어로 맹활약을 벌인다. 그래서 < 라쇼몽 > 여자의 말을 직설적으로 번역하면 이런 민망스러운 표현이 된다. "남자는 여자를 성기로 정복해야 합니다." 번역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작업인지를 잘 보여주는 이런 unintended pun(의도하지 않은 곁말)을 피하려면 sword 대신 swordsmanship(칼솜씨) 따위 다른 말로 둘러대야 할 필요가 생긴다.

필자가 영어로 소설쓰기를 공부하던 대학시절에는 '시사영어' 잡지에, 황순원 선생의 작품이라고 기억되지만, 한국 고전 단편소설을 영어로 번역해서 실었는데, "수탉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는 대목을 "The cock strutted around rooster"라고 옮겨놓았다. 오스틴 파워스의 goldmember 대목에서 설명했듯이 cock 역시 남성의 성기를 뜻한다. 그러니까 이 번역문은, 점잖은 신문에 이런 표현을 쓰기가 멋쩍기는 하지만, "×대가리가 까딱거리며 돌아다녔다"는 뜻이 된다. 이때부터 나는 기회가 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수탉'은 cock이 아니라 무조건 rooster라는 말로 번역하라고 열심히 권한다. rooster가 까딱거리며 돌아다니는 건방진 꼴은 동물의 의인화(擬人化, personification)에서 대표격이겠다. 암탉이 알을 낳으면 마치 제가 알을 낳기라도 한 듯 얼른 지붕으로 날아올라가 목청껏 울어대는 수탉의 행태를 보면, < 진정한 용기(True Grit) > 에서 애꾸눈 술주정뱅이 치안관 존 웨인의 이름이 왜 Rooster Cogburn인지 쉽게 이해가 간다. 이 극중인물의 이름은 "수탉 아저씨"라고 번역했어도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The Man From Laramie) > 에서 목장의 여주인이 보안관에게 제임스 스튜어트를 감옥에서 내보내 달라며 "Tom, let this rooster out of here"(톰, 이 수탉을 여기서 좀 내보내주지 그래요)라고 했을 때도 같은 의미로 쓰인 용법이다.

cock의 형용사 꼴인 cocky는 '수탉 같은'에서 '건방진'으로 의미가 발전했다. <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 에서 정신 상담을 받지 않으려고 버티는 맷 데이먼에게 로빈 윌리엄스가 하는 말이다.

"Look at you. I don't see any intelligent, confident man. I see a cocky scared lonely kid."(자네 꼴을 보라고. 자네 딴에는 자신이 꽤나 지적이고 자신만만한 남자라고 생각하겠지. 내가 보기엔 건방지고 겁이 잔뜩 난 외로운 아이에 불과한데 말이야.)

cock을 자동사로 쓰면 권총이나 장총을 격발하려고 "공이치기를 뒤로 당기다"나 모자 따위를 "삐딱하게 치켜올리다"라는 뜻이 되는데, 역시 삐딱하고 발딱 일어서려는 수탉의 속성을 반영한 의미다. 그래서 cockeye(d)는 '사팔뜨기(의)'로부터 '비뚤어진'이나 '가당치도 않은'으로 의미가 진화했다.

< 콜로라도의 사나이(The Man From Colorado) > 에서는 강도단 두목이 된 옛 부하를 찾아간 윌리엄 홀든이 광산회사 습격에는 가담하지도 않은 어린 동생을 교수형 위기에서 구해주라고 충고한다. "But Johnny is kinda young to die for nothing but cock-eyed loyalty to his brother. Who will pay the bill, Jericho, you or Johnny?"(하지만 자니는 형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 하나 때문에 죽기에는 좀 어린 나이잖아. 그 죗값은 자네 제리코와 자니 가운데 누가 갚아야 되겠나?)

cocktail(닭꼬리)이 어쩌다 술 이름이 되었는지에 대한 가설은 여러 가지인데, 이런 '닭꼬리'도 있다. < 13구역을 수비하라(Assault on Precinct 13) > 에서 불량배들이 마지막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고, 지붕에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경찰서를 지키던 경위가 말한다. "Molotov cocktails. They're going to set this damn place on fire."(몰로토프 칵테일이야. 녀석들이 여길 불바다로 만들려고 그러는가봐.)

소련 정치가의 이름을 딴 Molotov cocktail은 에스파냐 내전 당시 대전차용 화염병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한때 대단히 많이 사용되었던 모든 '화염병'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 재취업·전직지원 무료 서비스 가기 -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