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들의 연말풍경] 택배기사 동행 '강남·북 릴레이'

2008. 12. 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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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업체들 물량확보 전쟁 일은 늘어도 수입 줄어"

지난 11일 오후 1시. 택배기사 '하루 체험'을 위해 서울 성북구 삼선동으로 향했다. 오후 배송할 물건은 40개 남짓. 유달리 음식물 택배가 많았다. 택배기사 문병곤씨(41)는 "시골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챙겨 보내주는 김장김치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선동은 택배기사에게는 쉽지 않은 동네다. 아파트촌과 달리 비탈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골목마다 차를 세우고 일일이 어깨에 상자를 짊어지고 날라야 한다. 쌀쌀한 날씨에도 금세 땀이 나기 시작했다.

문씨는 "일이 힘들다 보니 처음 시작하는 사람 절반 이상이 한 달 안에 그만둔다"며 "한 달을 버티면 적응하고 계속하지만, 이틀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요즘은 '택배 위장 강도'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일이 더 힘들어졌다. 문씨는 "어떤 집에선 문을 열어주지 않아 5분 정도 문앞에 계속 서 있었더니 경찰이 나타나더라"며 "강도로 오인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4시30분쯤 차에 실었던 물건을 거의 배달했다. 일은 더 남았다. 다음날 발송할 물건을 받아와야 한다. 배송했던 물건, 새로 받아온 물건 리스트를 다시 확인해 본사로 전송하고 나니 오후 7시가 넘었다. 그나마 평소보다는 이른 퇴근이다. 주소가 잘못 기재돼 재확인 후 발송해야 하는 '잔류 물량'이 적었기 때문이다.

9일 후인 20일에는 처음부터 물류센터로 출근했다. 오전 7시30분 경기 용인시 동천동 현대택배 물류터미널에는 800여개의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맨 위에 있는 물건부터 차례차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았다. 박스더미가 키보다 높아 쉽지가 않다. 세 차례나 박스더미를 무너뜨렸다.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동승할 엄재광씨(36)가 맡고 있는 지역은 서울 서초구 서초2동 일부와 강남구 세곡동·자곡동·율현동 일대다. 물건을 분류해 탑차에 옮겨 싣고 오전 10시쯤 터미널을 나섰다. 이날 엄씨에게 배당된 물건은 48개. 강남 지역은 사무실이 많아 토요일 물량은 평일의 절반 이하라고 했다.

세곡동 주택가부터 배달을 시작했다.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부자 동네다. 집을 비운 사람이 많았다. 엄씨는 계속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담 안에다 던져 놓고 가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동을 걸고, 가속 페달을 한 번 밟으면 다음 집이 나타났다. 택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때문이다.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현대택배에서 배달한 물량만 519만4000여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9%나 늘어난 수치다. 콩·쌀 같은 자잘한 물건들이 그만큼 많아진 때문이라고 한다. 박스 여러 개를 테이프로 감아 한 박스로 만든 물건도 종종 눈에 띈다. 엄씨는 "운임을 덜 내기 위해 '합포장' 해서 보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배송 도중 삼각김밥 하나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택배기사에게는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밥 시간을 챙기다보면 퇴근시간도 늦어지고 고객 불만도 그만큼 커진다.

오후 행선지는 서초동의 아파트 단지. 이른바 '프리미엄 아파트'라 불리는 고급단지라 경비가 삼엄했다. 택배기사들에게는 더 번거롭다.

가장 작은 평수가 254㎡(77평)인 ㅅ아파트는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택배 송장을 보여주고 배송인 이름을 일일이 적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아파트 1층에 '주민지원센터'가 별도로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빈집으로 배달되는 물건을 모두 맡아두었다가 일일이 각 가구로 나눠주는 시스템이다.

오후 2시20분. 아침에 실었던 물건들을 모두 배달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용인 물류터미널로 향했다. 엄씨는 "업체들이 서로 거래처를 얻기 위해 경쟁하면서 운임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예전에 100개를 배달했다면 이제는 150개는 해야 그만큼 벌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청솔기자 taiyang@kyunghyang.com > - 재취업·전직지원 무료 서비스 가기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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