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함께 재기의 꿈도 가꿉니다"

2008. 12. 10.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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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노숙자들… 대전 '드림화훼사업단'20~60대까지 다양… 숯부작·분재 등 제작"月 90만원 벌어서 담뱃값만 빼고 집에 송금"

9일 오전 11시 대전 동구 삼성동의 간판도 없는 허름한 조립식 건물 안. 백열전구 아래에서 낡은 옷차림의 남자들이 숯부작을 만들고 있었다. 나이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데,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얼굴이 드러나는 걸 꺼리나 싶어, 뒷모습만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괜찮아요. 앞에서 찍으세요. 뭐, 어때요."

이들은 얼마 전까지 거리에서 자고 먹는 노숙인이었다. 지금도 대전역 인근의 노숙자쉼터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숨기지 않는다. 당당하게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법인 벧엘의 집이 운영하는 '드림화훼사업단'(야베스공동체). 이곳에서 일하는 45명은 수반(받침) 위에 숯이나 나무를 세우고 풍란을 붙이고 물레방아 등을 설치해 멋진 숯부작과 분재 화분을 만들며, 자신들의 꿈도 새로 엮어가고 있다.

'총무과장'으로 불리는 이진석(49ㆍ가명)씨. 그가 자재관리, 입출고, 수금, 회계까지 '중책'을 도맡게 된 것은 은행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상고 졸업 후 27년 동안 일하던 은행을 4년 전에 때려치우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1년 여 만에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그는 가족 볼 면목이 없다며 집을 나와 대전역 주변에서 1년 이상 노숙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이곳에 왔다.

"월급 90만원을 받으면 담뱃값을 빼고는 모두 집으로 송금해요. 은행원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훨씬 더 소중한 돈입니다." 이씨는 이혼한 아내와 내년에 재결합해 작은 꽃집을 내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 의대에 지원한 아들의 학비를 대주며 제대로 아버지 역할을 해볼 각오다. 드림화훼사업단이 지원하는 창업 1호로 기록될 것이다.

대외영업과 배송을 담당하는 한상수(47ㆍ가명)씨는 서울대 출신이다. 대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큰 돈을 벌었지만 강원랜드를 드나들며 도박으로 탕진했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 만나 다시 보금자리를 꾸미는 게 꿈이지만 언제 이뤄질 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묵묵히 일할 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재기에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월급 받은 다음 날이면 출근 인원이 꼭 줄어든다. "옛 버릇을 끊지 못하고 돈이 생기면 술 마시며 다 써버려요. 그래도 다시 대전역 대합실로 가지 않고 공장으로 돌아오니까 다행이죠." 이들을 지원하는 대전시 사회복지 공무원 정기룡씨는 이들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드림화훼사업단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시민단체 등이 힘을 합친 새로운 형태의 사회복지사업이다. 노숙인의 자활은 단순히 먹이고 재우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주어야 가능하지만, 기업은 이들의 고용을 꺼린다. 그래서 대전시는 기업들의 도움을 받아 화훼사업단을 설립하고 노숙자쉼터와 진료소 등을 운영하는 벧엘의 집에 운영을 맡겼다.

매월 공장 임대료 140만원을 시에서 보조하고 SK텔레콤과 KT & G 등이 2,000만~3,000만원을 자재비나 배달용 트럭 구입비 등으로 지원했다. 최근에는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승인을 받았고, 인건비 일부도 보조 받고 있다.

현재 드림화훼사업단의 월 매출은 5,000만원 수준이다. 올 초에 비해 2배 정도 늘었다. 재료비와 경상비를 대부분 지원 받기 때문에 매출액은 모두 급여로 지급된다. 월급이 오르는 즐거움을 맛 본 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일한다.

드림화훼사업단은 올 봄 대전 대덕구 비래동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난 등 화초 공급도 시작했다. 도로공사에서 땅을 제공하고 주택공사와 한전 등이 시설과 설비를 제공했다. 이곳에서는 버려지는 화분들을 수거해 재생하는 작업을 통해 시중보다 절반 가까이 저렴한 가격에 화분을 공급하고 있다.

점점 소문이 나면서 이들이 만든 숯부작과 난 화분 등은 관공서와 기업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판매망도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원용호 드림화훼사업단 대표는 "최종 목표는 창업 지원"이라며 "이 분들이 여기서 기술과 경험만 쌓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의지를 만들어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하려면 각계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드림화훼사업단 (042)582-0159

글·사진 대전=전성우기자 swchun@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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