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FEATURE]문학기행③ 소설 속 배경이 된 명소

2008. 10. 1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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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의 보성 벌교소설의 무대가 된 곳을 찾아가 작품의 배경을 더듬어 보는 것은 매력적인 여행이 된다. 보성 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로 문학여행을 하기에도 알맞다. 벌교 읍내에는 철다리(鐵橋)를 비롯해 소화다리, 중도방죽, 남도여관, 현부잣집, 김범우집 등이 소설 속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작품 구절을 떠올리며 그 현장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그것을 읽을 때의 감동이 다시 한 번 살아난다.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 중에서 철다리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준다. 빨치산 대장인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벌교 제일의 주먹이던 땅벌을 제압하고자 스스로의 담력을 보여주기 위해 기차가 올 때까지 오래 버티는 담력 결투를 벌였던 곳으로 아직도 소설 속 모습 그대로다. 1930년 경전선 철도가 깔리면서 놓인 이 다리는 1970년대까지 홍교, 소화다리(부용교)와 함께 벌교포구의 양안을 연결하는 3개의 다리 가운데 하나였다.

'소화다리'의 원래 이름은 '부용교'인데, 소설 속의 좌익과 우익 서로 간에 사형을 집행하던 장소로 밀물 때면 여기까지 올라온 바닷물이 온통 피바다였다는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난간이 없는 탓에 처형할 사람들을 줄줄이 세워놓고 방아쇠를 당기면 시체가 그대로 벌교천으로 떨어졌고, 물 위로 시체가 둥둥 떠다녔다. 소설은 당시의 학살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 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겄구만이라."

무지개 모양을 닮은 홍교(虹橋ㆍ보물 304호)는 원래 이름이 뗏목으로 연결한 다리라는 뜻의 벌교(筏橋)였다. 마을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다. 소설 속의 이곳은 지주인 김범우가 소작인들의 농사일을 감시했던 벌교읍 봉림리 자택에서 농토로 연결된 다리로 '설을 쇠라'며 쌀을 쌓아두던, 빨치산과 토벌군 간 심리전을 벌이던 곳이다.

양심적 지주로 그려진 김사용과 그의 아들인 '고뇌하는 지식인' 김범우의 집, 병원 원장이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인술을 펼친 '자애병원'이 있던 '벌교어린이집', 토벌대가 머문 곳으로 왜색 건물 그대로인 남도여관, 마을 지주인 현준배의 집이자 소화와 정하섭이 사랑을 나누었던 '현부잣집', 야학이 열렸던 회정리 교회 등을 통해 우리 근대사를 관통했던 질곡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 > 대하소설 '태백산맥'원고지 1만6천500장의 방대한 분량 속에서 60명이 넘는 주인공들이 등장해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남기는 1980년대 분단문학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이다. '한의 모닥불', '민중의 불꽃', '분단과 전쟁', '전쟁과 분단' 등 4부작 10권으로 이루어진 '태백산맥'이 다루고 있는 시간은 한반도가 해방과 분단을 동시에 맞아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제주도에서 4.3항쟁이 터지고, 여순사건이 일어나 진압된 1948년 10월부터 한국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조인되어 분단이 고착화된 1953년 10월까지다. '태백산맥'은 그 시대를 살다 간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삶의 기록이다.

> > 태백산맥 문학관벌교읍 회정리 일대 4천359㎡ 부지에 지상 3층, 전체 건축 면적 1천375㎡ 규모로 지어진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작가의 육필 원고와 증여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1층에는 소설 '태백산맥'의 탄생 과정과 출간 이후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 2층에는 소설 자체를 조명하는 전시공간이 마련돼 있다. 10월 개관 예정.

> > 주변 볼거리율포해수욕장의 해수녹차탕, 보성차밭, 대원사, 주암호> > 문의보성군 문화관광과 061-850-5223◆그 외 가볼 만한 소설 배경지> > '리진'의 여주 명성황후 생가신경숙의 장편소설 '리진'은 19세기 말, 시대의 역동 속에서 궁중 무희의 신분으로 프랑스 외교관을 사랑한 실존 여인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리진'과 함께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 '리진'만큼이나 삶이 고난으로 점철된 비범한 여인, 명성황후다. 여주 능현리에 위치한 명성황후 생가는 을미사변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던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으로 소설 '리진'의 배경이다. 생가 바로 옆 명성황후 기념관에는 112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으며, 명성황후가 어린 시절 글공부를 했던 자리에 세워진 높이 2.5m 크기의 '명성황후탄강구리비(明成皇后誕降舊里碑)'가 서 있다.

> > '남한산성'의 광주 남한산성김훈의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갇힌 성 안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기록을 낱낱이 담고 있다. 청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들어 47일 동안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삼전도에서 이마를 땅에 찧으며 굴욕적인 항복을 해야 했던 병자호란의 뼈아픈 이야기다.

남한산성 성벽은 능선과 계곡을 따라 자연스런 흐름으로 병풍을 치듯 부드럽게 굴곡이 져 있다. 길은 성벽을 따라 널찍하게 나 있고, 작은 오솔길들도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부모들이 아이들 손잡고 트레킹하기 딱 좋다. 역사 공부까지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병자호란 때 끝까지 항전을 주장하다 청나라에 끌려가 목숨을 잃은 윤집ㆍ홍익한ㆍ오달제 3학사, 그리고 역시 항전을 주장하던 김상헌, 정온을 함께 모신 현절사도 남아 있다.

> > '탁류'의 군산주인공 초봉의 슬픈 삶을 통해 뒤틀린 조선의 사회상을 풍자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는 1930년대의 군산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군산은 일제의 병참 기지화 정책에 따라 궁핍화가 더욱 극심해지는 가운데 일제의 수탈을 위한 창구 역할을 했던 곳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과 건물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미두장(쌀 선물거래소)이 있던 거리에는 '백룡 채만식 소설비'가 서 있다. 1923년 지어진 2층 벽돌건물의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일제 식민지배를 상징하는 대표 건물로 당시 전북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지어진 적산 가옥, 군산세관, 시마타니 농장 귀중품 창고 등을 통해 군산의 슬픈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실제 도시를 거닐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금강변에 있는 채만식문학관도 한번 둘러볼 만한 곳이다.

글/이창호 기자(changho@yna.co.kr), 사진/연합뉴스 DB센터(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 긴급속보 SMS 신청 >< 포토 매거진 >< 스포츠뉴스는 M-SPORTS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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