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주택시장-매물이 매물 부른다
경기도 용인시 죽전택지지구와 붙어 있는 보정동 연원마을 삼성명가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모 과장. 지난 2005년 1월부터 이곳에 전세 들어 살고 있는 그는 최근 내집 마련에 나설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난주 알고 있는 부동산중개업소로부터 '급급매물이 나왔다'며 105㎡(32평형) 3억4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소개받아 둘러보고 왔기 때문. 이 가격대는 부동산정보업체의 인터넷 사이트에 나와 있는 인근 죽전 지역의 비슷한 평형대 가격(4억원대 초반)보다 6000만~7000만원가량 저렴하다. 하지만 김 과장은 매입을 포기했다. 거시경제 침체에다 당분간 7~8%에 달하는 고금리 부담 탓에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있어 좀 더 시장 추이를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9억원대(공시가 7억5000만원) 재건축 대상 강남 반포 주공1단지에 살고 있는 박모(37) 씨는 담보대출에 대한 이자 부담으로 매물로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아 가격을 더 낮춰야 할지 고민 중이다. 그는 지난 2002년 반포동 주공1단지 72.6㎡(22평형)를 5억원의 대출을 받아 6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당시 4~5%에 불과했던 대출이자가 최근 7%에 육박하면서 1년 이자만 4000만원에 달한다. 그는 "이자 부담 탓에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어려운 지경"이라며 "당초 매입가와 지금까지 낸 이자 2억원을 생각하면 마냥 가격을 낮출 수도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시장에 매물이 갈수록 쌓이는 반면 매수세는 실종되면서 '급매물'을 뛰어넘어 '급급매물'이 출현하고 있다. 최근 버블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값이 급락세를 보이면서 심리적 가격 마지노선이 속속 깨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경기도 용인시 죽전 지역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A씨는 "용인 지역의 경우 1가구 2주택자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며 "매도 희망자들이 넘쳐나면서 용인 지역 아파트 가격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105㎡ 4억원'이라는 등식이 이미 깨져버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가격 하락세가 두드러졌던 용인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기침체로 매수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주택시장의 도화선인 서울 강남권은 물론 인근 분당 등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 집값이 큰 폭으로 하락한 분당신도시의 경우 105~109㎡(32~33평형)의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6억원이 붕괴됐다. 수내동 양지청구 109㎡는 5억9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고 이매동 이매삼성 105㎡는 5억8000만원에 살 수 있다.
용인 성복 지역의 105~109㎡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5억원이 붕괴됐다. 성복동 경남아너스빌 109㎡는 4억6000만~4억9000만원에 매물이 나오면서 연초 대비 평균 6500만원이 하락했다. 신봉동 LG신봉자이 1차 109㎡는 올봄에도 5억~5억5000만원 이상 호가하던 것이 4억1000만~4억9000만원으로 연초 대비 8500만원 내렸다.
서울 강남권 102~109㎡는 10억원대 이하로 떨어진 곳이 등장한 지 오래다. 강남구 은마아파트 102㎡는 9억3000만원 선의 매물이 나오며 연초 대비 평균 5000만원 하락했다. 송파구는 문정동 올림픽훼미리 142㎡의 경우 지난해 1월 13억3500만원까지 올랐으나 최근에는 9억7000만원으로 10억원이 붕괴됐다. 또 서초구 잠원동 한신21차 132㎡는 2007년 1월 11억8000만원까지 올라갔으나 현재 9억7500만원으로 2억500만원이 떨어졌고, 재건축 단지인 주공1단지 72㎡도 10억7000만원에서 현재 9억 5500만원으로 1억1500만원이 하락했다.
강남구 개포동 S공인 관계자는 "주택 매수 수요자들이 대출 제한 등으로 씨가 말라 있는 상황에서 희망 가격을 턱없이 낮추고 초급매물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정상가격대보다 1억원 이상 낮춘 급매물이 아니면 거래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주 개포 주공4단지 49㎡의 경우 현재 9억원에서 9억7000~8000만원 선의 시세가 형성돼 있음에도 매매 상황에서 매수자들이 5000만~1억원 가까이 낮춘 가격을 요구해 거래가 어긋났다고 그는 전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타운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거래가 안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인근 주공1, 2, 3, 4단지 모두 물건은 꽤 있는데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며 "매도자와 매수자들 간의 차이가 5000만원까지 나고 있는 상황이다. 100㎡형의 경우 일반적인 매도 호가가 9억5000만원 선인 데 비해 매수자들은 9억원에서 8억원 선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팀/goahead@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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