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게 백년대계를 묻다..전남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

2008. 9. 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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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 축령산에는 참빗처럼 가지런한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빼곡히 들어 차 있다. 이곳에서는 숲의 아름다움에 한 번 놀라고, 이 숲이 한 개인의 고집스러운 열정에 의해 가꿔졌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전남 장성 축령산에는 특별한 숲이 있다. 산 전체에 아름드리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이 숲은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숲을 좀 더 각별하게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 숲의 미적인 가치와 휴양림으로서의 효용 때문이 아니다.

축령산의 숲은 춘원 임종국(林種國·1915∼1987)이라는 한 개인의 고집스러운 열정과 혼신의 노력에 의해 조성됐다. 숲길을 천천히 걷기 좋은 이 가을, 축령산 편백나무 숲을 찾아 그가 이 산에 나무를 심고 가꿨던 과정을 되새기다 보면 가슴이 절로 뭉클해진다. 우리의 삶과 사회의 세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묵직한 교훈도 얻게 된다.

#감사의 마음 갖게 되는 숲길

장성군 북일면 금곡마을과 서상면 모암마을에 걸쳐 있는 축령산 숲의 아름다움은 이미 여러 차례 공인을 받았다. 산림청이 '22세기 후손에게 물려줄 숲'으로 지정했고, 200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도 우수상을 받았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쭉쭉 뻗어 있는 편백나무와 삼나무의 위용은 대단하다. 구불구불한 길과 망망한 수해(樹海)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치를 자아낸다. 이 축령산 숲은 자연림이 아닌 인공조림지다. 우리나라 인공림 가운데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은 곳은 축령산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헐벗게 된 산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꿔 놓은 이가 바로 임씨. 그는 반 세기 전인 1950년대 중반부터 조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57년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약 20년간 축령산에 나무를 심고 가꿨다. 양잠 등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은 그는 축령산을 매입하고 나무를 사들이는 데 전 재산을 쏟아부었다. 임씨는 집과 논밭을 판 것도 모자라 빚까지 져가며 조림을 계속했다. 그는 76년까지 596ha(약 1970만평)에 253만 그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었다.

1968∼69년, 2년여에 걸쳐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는 온 가족이 물지게를 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내렸다. 숲을 일구기 위해 빚까지 졌던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축령산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벌채로 상처를 입기도 했으나, 2002년 산림청이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숲을 매입하며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산림청은 임씨를 '숲의 명예 전당'에 모셨고, 축령산 중턱에는 '춘원 임종국 조림 공적비'도 세워졌다. 임씨는 죽어서도 나무 곁을 지키고 있다. 그는 축령산 중턱 편백나무 숲 한가운데 느티나무 밑에 수목장 됐다. 그러고 보니 '임종국'이라는 이름도 '숲(林)의 씨(種)가 되어 나라(國)에 기여한 사람'이라는 뜻 아닌가.

축령산 편백나무 숲길을 걸어본다. 그가 나무를 심기 위해 만들었던 임도가 지금은 훌륭한 산책로가 되었다. 평탄한 6㎞의 임도는 자동차로도 오갈수 있지만, 삼림욕을 겸해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이면 넉넉하다. 피톤치드(나무가 내뿜는 휘발성 향기)의 왕이라는 편백나무. 소나무나 전나무보다도 훨씬 더 많이 발산한다. 청신한 나무향이 코를 치른다. 이 숲의 내력 때문일까. 다른 숲에서보다 유난히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마음의 때를 씻는 곳, 세심원

편백나무 숲길의 출발지점은 금곡마을. 영화 '태백산맥' '내 마음의 풍금', 드라마 '왕초'의 배경이 됐던 초가 마을로, 시간을 내 둘러볼 만한 곳이다. 1950∼60년대 시골 농촌의 전형을 보여주며, 20여 가구 10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휴양림 입구에는 '세심원'(洗心院)이라는 아담한 황토집이 세워져 있다. 30여년간 장성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던 변동해(54)씨가 '마음의 찌든 때를 씻고 가라'며 지은 것이다. 변씨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축령산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며 "나 혼자 보기는 아까워 세심원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마을에는 그가 지은 소박한 초가 미술관도 있다.

◇인심 넉넉한 주인을 만날 수 있는 '세심원'.

변씨는 몇 해 전부터 임종국씨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변씨는 "자기 자신이 덕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100년 후 200년 후 후손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가꾼 것 아니겠냐"며 "이게 바로 백년대계"라고 말한다.

금곡마을에서 산길을 넘어 모암마을로 왔다가, 이 숲 길을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금곡마을로 넘어간다. 그리고 임종국을 생각해 본다. 그로 인해 우리가 이같이 훌륭한 숲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는 후대를 위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또 무슨 일을 실행하고 있는지도 자문해 보게 된다.

장성=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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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장성나들목에서 나와 북일면 방면으로 향하거나, 서해안고속도로 고창나들목에서 장성 방향으로 가면 된다. 주변 볼거리로는 홍길동 생가, 필암서원, 장성호, 백양사, 입암산성 등이 있다. 북일면과 서상면에 민박집 10여곳이 있다. 서상면사무소 (061)390-7608, 북일면사무소 (061)390-7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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