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우 기자의 군청앞 맛집] 무주 금강식당 '어죽'

2008. 8. 2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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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우 기자

 예로부터 관가 부근에는 맛있는 집이 몰려 있기 마련이다. 지역의 군청(시청) 인근도 마찬가지로 군청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단골 밥집이 골목마다 알토란처럼 박혀 있다. 수십 년 전통을 이어오는 '추억의 밥상'이 있는가 하면 손맛을 새로 다듬고 개발한 신흥 맛집도 있다. 비록 매스컴에는 자주 오르내리지 않은 무명에 가까운 식당이지만 지역 최고의 입맛꾼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 바로 그런 곳이다. 점심 메뉴가 고민될 때, 간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선뜻 찾을 수 있는 만만한 식당, 이런 집을 바로 지역 최고의 맛집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스포츠조선은 '미식기행'이 여행의 주류를 이루는 세태에 맞춰 지자체 공무원들이 강추 하는 숨겨진 밥집, 스토리가 있는 맛집을 '군청앞 맛집'이라는 이름으로 적극 발굴 소개한다.

 무주는 행정구역상 전라북도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 지세는 강원도 오지 못지않다. 마치 북한의 '삼수갑산'처럼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이라는 별칭군에 포함되며 삼남 벽지의 대명사격으로 통해왔다. 음식 또한 청정자연 환경을 곧잘 담아낸다. 덕유산과 금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서 나는 '웰빙푸드'를 접할 수 있다. 구천동 쪽에서는 산채 요리가 흔하고, 내도리 강변과 무주읍에서는 민물고기가 특미다. 그중 동자개, 메자, 꺽지, 꾸구리 등 천렵으로 건져낸 민물고기에 파, 깻잎, 쌀 등을 넣고 푹 끓여낸 '어죽'이 대표 별미로 통한다. < 무주=글ㆍ사진 김형우 기자 scblog.chosun.com/kimtraveller>

남편은 낚시 '손맛' 아내는 국자 '손맛'

◇ 금강식당 주인 김정순씨. 남편에게 자주 어죽을 끓여 주다가 무주의 원조어죽집 주인이 됐다.

◇ 무주 내도리 등 금강상류에서 건져 올린 빠가사리(동자개)는 어죽 맛을 내는 주재료이다

◇ 민물잡어와 쌀, 야채 등을 넣고 끓여낸 어죽. 매콤 부드러운 게 감칠맛 있다.

 냉장고 보급이 뜸하던 시절 내륙 산간지방에서 비린 것을 맛 볼 수 있기로는 자반, 굴비, 젓갈류가 고작이었다. 따라서 맑은 계류에서 갓 잡은 민물 잡어는 이들 지역에서는 근사한 식재료에 다름없었다.

 금강 물줄기가 굽이치는 무주 역시 풍부한 민물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매운탕, 어죽 등의 음식이 발달했다.

 어죽은 말 그대로 물고기 죽이다. 민물고기를 고아 뼈를 발라낸 뒤 불린 쌀과 수제비를 떼어 넣고 끓인 죽이다. 민물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일단 맛을 보고 나면 부드러우면서도 얼큰 고소한 맛에 매료돼 다시 찾는 사철 보양식이다.

 무주의 어죽은 영동, 금산, 함양 등 여타 지역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유독 빠가사리(동자개)를 많이 쓴다. 물에서 잡아 올릴 때 '빠각빠각'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자개미'로도 불리는 것으로 물 흐림이 느린 강바닥에 주로 산다. 때문에 무주에서는 금강 상류 물줄기가 완만하게 휘돌아나가는 내도리 강변에서 곧잘 잡힌다. 어른 손가락 굵기에 길이는 20cm 남짓. 얼핏 큰 미꾸라지 크기이지만 주둥이가 넓적한 게 다르다. 매운탕으로 끓이면 시원한 국물맛에 야들야들 고소한 육질이 별미다.

 무주에는 어죽 집이 여럿 있다. 내도리와 무주 읍내 곳곳에 맛집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무주읍 읍내리 군청 인근 '금강식당'이 어죽의 원조격이다.

 25년 전통. 촌에서 농사를 짓던 정정상(65)-김정순(60)씨 부부가 80년대 초반 삽과 호미 대신 그물과 국자를 들고 음식장사로 나섰다.

 개업 동기는 다소 싱겁다. 여느 맛 집처럼 손맛계승차원도 아니고 외식업에 대한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마침 읍내에 작은 가게 하나를 세 뒀는데, 집세는 쥐 꼬리만한 게 골치께나 썩이더라구요. 툭하면 보수해달라고 했쌌고. 안되겠드라고. 차라리 우리가 뭘 하는 게 낫겠다 싶었지요. 그래 낸 게 이 식당입니다."

 문을 열자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지금은 겉을 고쳐 볼만하지만 예전에는 말도 못하게 허름한 집이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끊일 줄 몰랐다.

 "기관장, 군청-농협 직원, 출장 온 사람…, 뭐 사방 군데서 찾아오드라구요. 벨 볼일 없는 1000원짜리 죽 한 사발 먹을라고 찾아와 섰는 것을 봉께 고마우면서도 미안시럽기까지 하드만요."

 장사도 잘 되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렇지만 쌓아놓은 돈은 없다. 자식 가르치고, 아들 집 마련해주고, 그럭저럭 먹고 산 게 전부다.

 맛깔스런 어죽을 끓이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물고기다. 고기는 남편 정정상씨가 줄곧 잡고 있다. 아예 어업허가를 받아 남대천, 내도리 등 금강상류지역에서 쪽배를 타고 투망질을 한다. 하지만 고기잡이가 그리 수월치는 않다. 여름 장마철과 한겨울에는 조업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봄가을, 장마전후로 집중 조업을 벌인다.

 정씨는 웬만한 악천후가 아니라면 이른 새벽 조업에 나선다. 때문에 비 오는 날이면 말리는 아내와 우기는 남편이 꼭두새벽부터 옥신각신하기 일쑤다.

 "비바람 치면 배가 흔들리고 위험하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어쩝니까. 고기를 잡아야 마누라가 죽을 끓이는디."

 봄에는 껍죽이와 뚜거리, 여름은 빠가사리, 가을은 모래마주, 왕눈이, 메기 등이 주로 잡힌다. 이처럼 철마다 잡히는 고기가 다르다보니 어죽에 쓰이는 재료 또한 계절별로 조금씩 틀리다. 죽거리용으로는 잘잘한 고기가 반갑다. 맛있기 때문이다. 특히 죽을 끓이는 데에는 빠가사리를 많이 넣는다. 빠가사리가 잘 안 잡히는 철에도 미리 잡아둔 것을 섞어서 쓴다. 어죽 맛이 사철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잡고기만 쓰면 틉틉하고 비려요. 빠가사리는 시원하지만 왠지 부족감이 있고. 적절한 비율로 섞어 쓰면 걸쭉하고 감칠맛 나는 어죽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죽에 넣는 파, 마늘, 냉이, 부추, 배추 등은 조금씩 짓는 농사로 충당한다. 쌀은 무주 최고의 미질을 자랑하는 안성 쌀을 쓰고 있다.

 지난 25년 사이 주방기구의 진화로 조리법도 많이 간편해졌다. 하지만 김정순씨는 마당 화덕에 솥단지 걸어 놓고 영업하던 시절의 맛과 변함없다고 자부한다.

 하루 쓸 재료는 전날 밤 고기 손질부터 해둔다. 빠가사리, 모래무지, 꾸구리 등의 내장을 제거하고, 잘 씻어 낸 다음, 육질이 흐물해질 때까지 4시간 가량을 푹 삶는다. 이후 고기를 건져 일일이 손으로 뼈와 살을 분리한다. 살점이라고 해봐야 대부분이 뽀얀 육수 속에 함께 녹아 내려 있다. 이처럼 만들어진 육수에 불린 맵쌀을 넣고 고추장을 풀어 은근히 끓인다. 한소끔 끓어오를 즈음 수제비를 떼어 넣고, 파, 마늘, 부추 등을 섞어 숨을 죽인다. 죽이 얼추 다 끓으면 후추를 살살 뿌리고 들깨가루 한 숟가락을 듬뿍 얹는다.

 "한 솥단지 끓여 놓고 오는 대로 퍼주면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죽은 금방 퍼져 버리거든요. 매 번 새로 끓여 드리다보니 15~20분은 기다려야 합니다."

 김정순씨는 화학조미료를 조금은 쓴다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약간이라도 쓰지 않으면 음식 내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그 양은 맛만 살짝 내는 수준이다.

 비린내가 나지 않아 인기라는 원조집의 어죽 맛은 어떨까. 뚝배기에 담긴 어죽을 한술 떠보니 얼큰 매콤한 것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쌀알도 부드럽게 씹힌다. 특유의 비린내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물고기로 하는 음식이다 보니 감자나 고구마 맛이 날 순 없다. 약간 느껴지는 고소한 생선맛은 어죽을 맛보는 이유쯤으로 여길 법했다.

 김정순씨가 맛깔스런 어죽을 끓여내는 비법은 크게 두 가지. 물고기를 골고루 섞어 쓰고, 핏물을 잘 빼내는 것이다. 비린내를 잡는 데에는 핏물 제거가 필수다. "민물고기는 싱싱할수록 비린내가 강해요.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바로 끓이는 것만이 최고는 아닙니다."

 이 집의 반찬은 전라도식 성찬에 비하면 성의가 없어 보일만큼 단출하다. 배추김치, 물김치에 양파-오이-풋고추 등 야채와 된장이 전부다. '반찬 준비가 수월 하겠다'고 말을 건넸다가 이내 반격을 당했다. "맛있는 야채 고르느라 신경이 더 쓰여요~오."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 소리 들을 때 제일 행복하지요. '안 먹는다'고 빼다가도 일단 숟가락을 들면 맛있다고 곧잘 먹는데, 남편이 '아까 빼던 손님 지금은 겁나게 맛있게 드시네' 하면서 분위기를 전해줄 때는 내 마음도 함께 풀립니다."

 금강식당은 이제 장남 정현씨(38)가 가업을 잇기 위해 합류했다. 석달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귀향해 시골 식당에 친절-위생 등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어죽 6000원(1인분), 쏘가리탕 3만5000~5만5000원, 빠가사리탕 3만~3만5000원, 메기탕 3만~3만5000원. 각 4인 기준.

토박이 추천 맛집

  ▶한방 오리탕

=오리에 각종 한약재를 섞어 우려낸 국물 맛이 일품이다. 석송회관(063-322-4808)이 곧잘한다. 오리탕 4만원(2인 기준).  ▶산채정식=뽕잎, 더덕, 취나물, 표고 등 다양한 산채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천지가든(063-322-3456)도 유명 맛집. 한상 6만원(4인 기준)  ▶시골 순대=무주읍 읍내리 소문난 순대(063-322-3186)가 유명. 순대국 5000원.  ▶잔치국수=멸치로 우려낸 국물 맛이 일품. 읍내리 할매국수(063-324-8070)가 맛집으로 통한다. 잔치국수 3000원.  ▶한우=읍내리 축협한우마을(063-322-3088), 한우프라자(063-322-0987)가 대표 맛집. 축협한우마을 등심 200g 2만원, 한우프라자 등심 600g 3만원(상차림 1인당 3000원 추가)  ▶어죽=내도리 강나루 회관(063-324-2898)도 유명하다. 어죽 6000원.

여행메모

  ▶가는 길

=◇ 자동차: 서울~대전(경부고속도로)~대전 통영고속도로~무주 IC~무주리조트/ 무주구천동 ◇ 기차: 서울역~영동역, 영동역 하차 시외버스~무주읍(30분 소요)/반디랜드(셔틀 30분 소요)  ▶숙박=무주에는 무주리조트(063-322-9000) 등 각종 크고 작은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덕유산 정상의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려거든 향적봉 대피소(063-322-1614)에서 하룻밤 묵는 게 좋다. 하지만 수용인원이 40명으로 사전예약이 필수다.

고단백 영양식… 맛 비리지않아 좋아

  ▶백선미

(40ㆍ무주군청 문화관광과 관광개발 담당자)=원래 어죽은 소화가 잘 되는 고단백 영양식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기에 적당하다. 금강식당 어죽은 맛이 비리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다. 때문에 동료들과 가끔 찾게 된다. 죽이라고 양이 적을 법 하지만 한 사람이 먹기에 적당하고, 포만감도 든다. 무엇보다도 맛이 있어 무주의 대표 음식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뚝배기 같은 토속적인 맛 매력'강추'

  ▶홍한일

(34ㆍ무주군청 기획조정실 홍보협력 담당자)=본래 무주가 고향이 아닌 공무원 7년차로 무주에 와서 처음 어죽 맛을 봤다. 처음엔 민물고기에 대한 부담이 있어 꺼려졌지만 한번 맛을 보게 되니 선입견이 달라졌다. 이후 동료들과 가끔 먹게 됐고, 회식 때, 술 마신 다음날 속 풀이로 자주 이용하고 있다. 무주에는 어죽식당이 여러 곳 있는데, 각각 맛의 특징이 있다. 금강식당은 뚝배기 같은 은근하고도 토속적인 맛이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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