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대한 신랄한 보고서
토마스 베른하르트 '소멸'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오스트리아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1931-1989)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작품이 저작권법 유효기간 내에 오스트리아 내에서 공연되고 인쇄되거나 낭독되는 것을 금지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문학을 통해 끊임 없이 조국의 위선과 모순을 꼬집었던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지향을 죽은 후에까지 이어간 것이다.
그가 사망하기 3년 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 '소멸'(현암사 펴냄)에도 이러한 베른하르트의 문학세계가 잘 나타난다.
"프란츠 요셉 무라우는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간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작가의 분신인 무라우를 화자로 등장시켜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작가이면서 로마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는 무라우는 부모님과 형의 부고 전보를 받고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볼프스엑으로 향한다.
무라우에게 볼프스엑은 지옥과도 같은 끔찍한 공간이고 부모님과 형은 경멸하고 증오하던 대상이었다.
그는 물질 지향적이고 문화를 경멸하는 어머니가 볼프스엑을 비(非)정신과 반(反)문화의 공간으로 파멸시켰다고 믿는다.
볼프스엑은 곧 조국 오스트리아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에 대한 그의 냉소는 신랄하기 그지 없다.
"처음엔 비열하고 저속한 나치즘이 판을 치다가 나중에는 저속하고 야비하고 범죄적인 이 사이비 사회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나치즘과 사이비 사회주의가 조국 오스트리아에 가져온 파괴와 멸망은 이 오스트리아에서 언제나 화근이 되어 온 가톨릭교와의 유착 때문입니다."(496쪽)
이 소설 속에서 무라우는 볼프스엑의 모든 것을 냉정하게 관찰한 후 보고서를 쓰려고 하는데 그 보고서의 제목이 바로 '소멸'이다.
"내가 쓰고자 하는 보고서는 보고서에 기록된 것, 즉 내가 볼프스엑으로 이해하고 있는 모든 것, 볼프스엑을 의미하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지요."(150-151쪽)
그 보고서가 바로 이 소설 자체이며, 결국 이 소설이 작가의 자서전, 아니 자신의 뿌리를 청산하기 위한 '반(反)자서전'인 것이다.
소설은 무라우가 부고 전보를 받고 볼프스엑에 가서 장례를 치르는 단 사흘 간의 이야기를 줄 바꿈 없는 전체 두 문단 짜리 긴 소설 속에 담았다.
사건 없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그의 소설은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다소 불친절할 수 있지만 작가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독자들에게 가장 생생하게 들려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류은희ㆍ조현천 옮김. 508쪽. 1만4천800원.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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