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OTL] 곰팡이 핀 주거권, 지상에서 살고싶다

2008. 8. 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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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대한민국 국민 141만여 명이 사는 반지하, 몸과 마음의 건강 해치는 반인권적 주거 공간을 방치하는가

▣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인권OTL-30개의 시선 16]

1970년대 재개발로 인한 철거에 내몰린 '난장이'들, 그들은 하늘을 향해 공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곧 땅에 떨어져버린 그 공은 결국 땅 밑에 가 박혔다. 지상에 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성을 쌓아 올라가며 풍요로운 사회의 편안한 안식처가 돼가는 동안, 지상에 제 몸 누일 곳을 돈 주고 빌리지조차 못하는 가난한 이들은 값싼 낮은 곳을 찾아 지하방에 둥지를 틀었다.

방엔 늘 습기가 가득하고, 한 줌의 햇볕과 한 줄기 바람도 외면하는 그곳에선 곰팡이가 벽지를 까맣게 갉아먹는다. 최상의 서식조건을 만난 바퀴벌레 등 다리 6개 이상의 곤충들은 친구하자며 달려든다. 낮은 창문으로는 먼지와 각종 소음이 날아든다. 창문 옆 하수구에선 썩은 내가 피어오른다. 그곳엔 지금 대한민국 국민 141만여 명이 살고 있다.

선풍기 하루종일 돌려도 축축한 집안

올해 들어 처음으로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8월5일 중구 신당5동 주택가. 다닥다닥 붙은 다가구주택 사이로 열기가 훅 뿜어져 나온다. 10년째 10평(33㎡)짜리 반지하방에서 부인,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최아무개(65)씨 집에 들어서자 작열하는 햇볕은 어디갔는지 사위가 어두컴컴하다. 후텁지근한 공기를 식히려 최씨가 유일한 냉방기구인 선풍기를 2대나 가동했지만, 별 소용이 없다. 길바닥보다 조금 위에 달린 창문에는 발이 쳐져 있다. 바깥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어둡고 환기도 안되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다. 장롱 뒤쪽 벽에는 오래된 신문지가 붙어 있다. 최씨가 벽을 가리고 있던 두루마리 화장지를 치우자 시커멓게 곰팡이가 슨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씨는 "붙여도 습기 때문에 자꾸 떨어져 더 이상 신문지를 붙이지 않고 있다"며 "겨울에 난방비 걱정에 보일러를 펄펄 못 때다 보니 습기가 더 많이 차는 경향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공사장에서 목수 일을 하던 그는 1998년만 해도 바로 윗동네에 번듯한 30여 평짜리 단층집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구제금융 한파 속에서 인부 노임 2천만원과 새마을금고에 진 빚 1400만원, 그리고 이자를 갚으려고 급매물로 집을 내놓았다가 1억원도 못 받고 팔아야 했다. 원래 집 자리는 지금 재개발이 진행 중인데, 평당 1500만원의 보상비가 나왔으니 그 집에 계속 살았더라면 4억5천만원은 받았을 것이다. 그는 이 반지하방을 탈출할 꿈을 꾸지 못했다. "없는 사람은 이렇게 살다 죽는 거죠, 뭐." 정신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이 하루 종일 혼자 틀어박혀 지내는 옆방의 벽을 바라보며 그가 체념하듯 말했다.

통계청이 2005년 실시한 인구·주택 센서스 결과를 보면, 전국적으로 58만6649가구 141만9784명이 반지하(지하 포함)에 살고 있는데, 95%는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서울시를 놓고 보면, 전체 330만9890가구 가운데 10.7%에 해당하는 35만5427가구가 반지하(지하 포함)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가정 열에 하나 꼴이다.

반지하는 아파트 단지만 벗어나면 어느 동네에서나 흔하다. 그러나 쪽방이나 비닐하우스촌이 한 곳에 밀집해 있어 눈에 잘 띄는 것과는 달리 반지하방은 흩어져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반지하 인생은 어디에나 있고, 잘 보이지 않는다.

경기 과천시 문원동 청계1길의 단독주택 반지하에 세들어 사는 전아무개(86) 할머니는 과천에서만 60여 년을 산 터줏대감이다. 그러나 그의 거처는 두세 평짜리 지하 단칸방이다. 문원동은 서울 강남구 세곡동과 함께 전국 3573개 읍·면·동 가운데 반지하 거주자 비율이 가장 높은 동네다. 1991가구 가운데 35%에 이르는 699가구(1872명)가 지하방에 산다. 문원 2단지 지역에는 나지막한 비탈길을 따라 단독주택이 죽 이어져 있는데, 과천 사람들은 이곳을 '이주단지'라고 부른다. 1980년대 초 현재의 서울랜드 자리에 살던 주민들 대부분이 옮겨 왔기 때문이다.

지난 8월7일 오후 집에서 만난 전 할머니도 그렇게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15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엔 혼자서 산다. 방금 병원에 다녀왔다는 할머니의 방에 들어서자 방바닥에 있는 요구르트 병이 눈에 들어왔다. 무더운 여름에 곰팡이가 슬어 바닥이 썩어 들어가자 장판의 끝과 벽 사이에 요구르트 병을 끼워넣어 공기가 들어갈 틈을 만들어 둔 것이다. 장롱의 문도 활짝 열려 있었다. 할머니는 "열어두지 않으면 안에서 물이 줄줄 흘러"라고 말했다. 습기가 차서 이슬이 맺히는 것이다.

무더운 날씨는 차라리 낫다. 며칠 전 비가 쏟아진 날엔 하수물이 역류해 방 앞으로 밀려오는 바람에 할머니는 혼자서 물을 퍼내기 바빴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고생이 말도 못해"라고 크게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나마 도로로 난 창문이 숨통을 터주지만, 누군가가 트럭을 자주 대놓아 그 숨통마저 막는다. 할머니는 "뭐라고 하면 자기 땅이라 그런다니까"라고 말했다. 무더운 여름에 창문을 열어두지 않을 도리가 없지만 그러면 도로에서 들어오는 먼지도 함께 마셔야 한다. 기관지가 성할 리 없다. 이날의 수은주는 33도를 훌쩍 넘었다. 이렇게 날씨는 덥고 방은 습한데, 또 다른 고통이 더한다. 할머니는 "씻을 데가 없어"라고 호소했다. 지하의 세 가구가 함께 쓰는 화장실이 너무 좁아 샤워할 공간이 없는 것이다.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번씩 복지관에서 목욕하는 게 전부야"라고 말했다. 그렇게 여름을 나면 몸무게가 3kg씩 빠진다. 할머니는 그렇게 이곳에서 4년을 살았고, 이사오기 전에도 문원동의 지하방을 전전했다.

반지하 쪽방엔 씻을 곳도 없어

이렇게 대지면적 40평(132㎡) 짜리 단독주택 반지하에 4가구가 살고 있다. 두어 평 방에 싱크대 놓을 자투리 공간이 전부인 곳에 전 할머니부터 아흔이 넘은 또 다른 할머니까지, 4명의 홀로 사는 노인들이 거주한다. 전 할머니 방에서 나와 통로 안으로 들어가면 장아무개 할머니의 방이 나온다. 장 할머니는 "아니, 이것 좀 봐"라며 손을 끌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천장 양쪽은 습기가 차서 벽지가 울었고, 곰팡이가 잔뜩 끼었다. 할머니는 "저것 때문에 이틀 밤을 울면서 지샜어"라며 "속상해서 보기도 싫어"라고 고개를 돌렸다. 천장이 무너지면 속절없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날마다 시달린다. 그래서 기술자를 불러서 보였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집 주인도 고쳐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원동에 단독주택이 들어선 지 20여 년. 머잖아 재건축할 생각이 앞서는 탓이다.

환기가 잘 안 되고 습하며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주거 조건은 실제로 사는 이들에게 가장 큰 불만 사항이다. 한국도시연구소가 2005년 지하방에서 거주하는 서울과 수도권 462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하주거공간의 주거환경과 거주민 실태에 관한 연구' 결과, 가장 문제가 되는 주거환경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습기를 지목한 이가 49.5%로 가장 많았고 채광(21.8%), 환기(10.5%), 악취(7.0%), 소음(5.1%) 순서였다. 이런 주거환경은 심리적 불쾌감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경기 하남시 신장3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박은미(40)씨의 네살배기 막내아들은 감기를 달고 산다. "1년 중 360일은 감기약을 먹는다"고 한다. 여기엔 반지하방의 영향이 크다는 게 박씨의 생각이다. 따라간 박씨의 집은 대낮인데도 현관문과 장롱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선풍기 1대는 주인도 없이 혼자 열심히 돌았다. 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은 방 책상 뒷면은 불에 탄 듯 시커멓게 곰팡이가 슬어 썩어가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오줌을 싼 듯 요가 축축해져 있다"고 박씨는 말했다. 막내아들은 급기야 지난 5월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다. 강원 철원에서 군 복무 중인 큰아들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지하방에 살며 알레르기성 비염과 축농증으로 고생했는데, 잠시 지상에 살 때는 괜찮아졌다가 이 집으로 이사온 뒤 다시 악화됐다. 박씨 자신과 남편도 기침이 계속 난다고 한다. 생전 병원 구경 한 번 한 적 없던 박씨 남편은 언젠가 폐렴으로 실신해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다.

박씨 이웃인 주부 김아무개(32)씨도 반지하에 산다. 그런데 5년 전 이사오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돌쟁이 둘째 아들이 그 뒤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다. "남편도 팔 뒤쪽이 울긋불긋해지면서 두드러기가 나 계속 긁고 다닌다"고 한다. 병원 진단은 아직 안 받아봤다. "우리 같은 사람은 죽지 않으면 (병원에) 안 가잖아요"라고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퓨어피부과의 정혜신 원장은 "곰팡이가 많으면 호흡기에 알레르기성 질환을 일으키고 눈이나 피부 등에도 적용되기 쉽다"며 "습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바퀴벌레나 개미 등 벌레가 물면 오톨도톨한 병변이 생기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둠처럼 스며든 우울과 가족 불화

열악한 일조량과 좁은 공간은 정신건강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서울 용산동 반지하방에 여섯 달 전 이사 온 대학생 박아무개(23)씨는 부모, 두 언니와 함께 사는데, 큰언니와 자신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본인은 아토피도 갖고 있는데 최근엔 공황장애 증상마저 생겨 1년째 지속되고 있다. 박씨는 "엄마도 피해망상, 폐쇄공포 등의 증상을 보이지만 병원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박씨 가족은 17년째 반지하방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가족들이 늘 어둡고 우울하고 가족끼리 불화가 잦다"며 "집은 늘 갑갑하고 어두운 공간이라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고 말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이상민 대한신경정신과개원의협의회 홍보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일조량이 적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주민들이 우울증에 더 잘 걸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대체로 빛의 양이 적은 겨울철에 우울증의 심각도가 증가한다. 더구나 빛이 적은 반지하방에서 사는 경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심각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때 하루 2500∼1만 룩스의 빛을 아침에 30분~2시간 동안 쬐는 광치료법을 쓴다. 행동과학적 지식으로 봤을 때,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이면 갈등과 반목의 가능성은 높아지는데, 반지하방은 대부분 비좁은 공간이다보니 가족 내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고 이런 스트레스는 유전적 취약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이치는 먼지와 소음, 악취, 쓰레기, 각종 장사치들의 홍보물 등 반지하 거주자들을 괴롭히는 요소는 하나둘이 아니다. 신당동에서 만난 여성 김아무개(46)씨는 "창문 옆으로 지나가는 골목길 오토바이 소음에 아침잠을 잘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김씨는 "나라가 이만큼 먹고살 만하면 주택 문제는 해결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며 "지하방이 다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지하방은 그래서 거주공간이라기보다는 지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의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실제로 지하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가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과천 문원동엔 오래된 단독주택 사이로 새로 지은 다세대주택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 앞서 소개한 전 할머니의 전세금은 1200만원. 장 할머니의 전세금은 800만원. 문원동에 재건축 열풍이 거세게 분다면 이렇게 1천만원 안팎이 재산의 전부인 할머니들이 옮겨갈 '지상의 거처'는커녕 '지하의 거처 하나'도 찾기 힘들어진다. 평생을 과천시 문원동 토박이로 살아온 이들이 또 다시 쫓겨날 위기에 놓이는 것이다. 서울 신당5동의 경우는 윗동네 재개발로 전세와 사글세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지하방 값마저 크게 뛰었다. 이 동네 ㅇ복덕방의 공인중개사는 "지난해 가을부터 올봄까지 1천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가 2천만원에 월세 50만원으로 오르는 등 40%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한국도시연구소 조사 결과 반지하에 거주하는 이들 가운데 거주지를 옮길 계획을 가진 가구는 전체의 59.8%에 그쳤다. 그나마 1년 안에 이사가겠다는 가구는 10.8%에 그쳤다. 실제 조사가구의 84.2%가 월평균 소득 200만원 이하였고, 55.2%가 부채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주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거주가구의 임대료 수준은 전세는 평균 2974만원, 월세는 21만8천원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지하방과 옥탑방 거주자의 전월세 비율은 84%로, 전체 평균의 2배를 넘었다.

이렇게 지상의 좀 더 넓은 거주 공간으로 옮길 꿈은 멀다. 부자들은 부동산 재테크 차원에서 주거지를 곧잘 옮기지만, 반지하방 거주자들은 여러모로 불쾌한 환경을 벗어나고픈 '소극적 욕구'가 훨씬 더 많이 작용한다. 그나마 반지하방을 벗어나려 해도 그 시도는 좌절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홍인옥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신혼부부들은 정말로 어려운 상황이 아니면 지하방을 피한다"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지하로 내려간 사람이 다시 지상의 주거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가족이 있는 경우에 지하주거를 택하는 이들은 신용불량 같은 극단적 상황에 처한 경우란 것이다.

3천만원 생기면 "지상으로 나가겠다"

반지하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선 실효있는 건축 기준을 마련해 반지하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해 반지하 거주자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하남에서 만난 박씨는 "물이 나오지 않도록 방수를 완벽하게 하는 법조항이 생기든가 아예 반지하방을 못 짓게 해야 한다"며 "국민임대주택을 더 많이 지어 지금보다 더 싸게 공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시연구소 실태조사에서 지하방 거주자가 원하는 시급한 대책으로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제공(61.8%), 전세금 융자(14.5%) 등이 꼽혔다.

우리 사회에서 주택은 여전히 공공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개인의 경제 능력에 전적으로 맡겨진 영역이다. 반지하는 비닐하우스나 벌집과는 달리 그나마 살 만한 공간으로 여겨져, 사회적 문제로 인식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이는 반지하방의 '난장이'들이 쏘아올리는 공을 우리 사회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 수 있고 살아야 하는 지상의 건축물을 향해 그들이 말없이 내미는 손길을 외면하는 한 대한민국의 주거 인권과 사회 정의, 건강 정의는 요원할 뿐이다.

'3천만원이 생기면 어디에 쓰겠습니까?' 도시연구소가 지하방 거주자들에게 물었을 때 4명 중 3명은 한가지 대답이었다. "지상으로 나가겠다."

지하방의 역사

박정희 정권 '방공호'가 거주공간으로▣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그것은 원래 '방공호'였다.지하방은 방공호에서 시작됐다. 1970년 건축법 개정으로 주택의 지하층 설치 '의무규정'이 신설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단독주택 지하에 방공호를 두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북괴'의 침입에 대비하자는 명목이었다. 이렇게 생겨난 지하층은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수도권 인구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불법 주거지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지하나 차고 등을 임의 변경해 집으로 쓴 것이다. 물론 한국전쟁 전후로 피난민 가운데 땅굴을 파서 사는 토막민이 있었지만, 현대적 의미의 지하주거는 방공호에서 시작됐다.애초 불법이었던 지하주거는 1984년 지하층 규정이 완화되면서 합법화되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의 지하층 의무설치 규정이 완전 폐지됐으나, 90년엔 오히려 공동주택 지하층 건축기준 완화에 따라 기준에 맞으면 지하에 주거공간이 허용됐다. 더불어 80~90년대 다세대·다가구주택 건설이 빠르게 늘면서 (반)지하 거주는 수도권 어디에나 있는 거주 형태가 됐다. 1주택·1가구 정책이 오히려 불법 개조와 개축을 가져와 서민의 주거환경이 더 열악해지는 면을 인정해 정부의 정책이 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바뀌어왔다.이렇게 고도로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서 저렴한 거주공간을 찾는 서민의 욕구와 거주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임대수익을 늘리려는 주택 소유자의 욕구가 결합해 지하거주가 생겼고, 정부는 거주공간 부족이란 현실에 떠밀려 법으로 지하거주를 허용한 것이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2005년 주거기본권의 인권실태보고'에 바탕하면, 1988년에 이미 당시 서울 인구의 5%인 50만 명가량이 지하에 산다는 추정치가 있었고 1994년 서울의 다세대주택 거주가구의 20.1%가 지하에 거주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2003년 연구에서 서울지역 지하거주 가구를 25만 세대로 추정했다. 이러한 수치는 이미 1990년대 이전부터 지하 거주가 광범위한 현상이었고, 2000년대까지 꾸준히 늘어왔음을 보여준다. 민변의 보고서에는 또 2001년 집중호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9만2천 가구 중 80%인 7만 가구가 다세대 및 다가구주택 지하층에 거주하는 가구였다고 나오는데, 이는 지하층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것이다.80년대 이후에 달동네·판자촌이 서서히 개발에 밀려 사라지면서 이곳에 살던 빈민은 지하로 스며들었다. 서울의 대표적 산동네 난곡의 개발 이후에 인근의 지하방으로 이주한 이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물론 80년대 건축된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지하를 개조한 낙후한 지하방도 있는 반면에 90년대 이후에 지어진 다세대주택의 지하는 독립적인 시설을 갖추고 환기장치를 겸비한 곳도 있다. 이렇게 숨겨진 근대의 그늘에서, 움푹 팬 서울의 상처로 지하방은 확산됐고 진화했다.

반지하방 환경개선 분투기

헉, 제습제가 21개나 출동해도…▣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음식물쓰레기는 그때그때 모아 냉동실에다 얼리죠. 초파리 때문에요."지난 8월6일 서울 신답동 반지하방에서 만난 오경석(28)씨는 반지하 생활의 단점을 극복하는 데 도가 텄다. 그의 집에는 개당 1천원에 못 미치는 '물먹는…'류의 제습제가 21개 설치돼 있다. 바퀴벌레 등 곤충과의 전쟁을 위해 자그마한 플라스틱 판때기 사이에 살충제를 뿌려 구석마다 설치한 게 열댓 개에 이른다. 다른 벌레와 파리를 잡기 위한 끈끈이도 있다. 1달에 한 번가량 치약으로 장판을 닦아주는 건 기본이다.00학번인 그가 지하방에 사는 건 이번이 5번째. 지하방이 뭐가 문제인지, 해결책은 뭔지 이제 알 만큼 안다. "바퀴벌레는 크기 순대로 독일바퀴, 먹바퀴, 미국바퀴가 있고요, 음식물쓰레기에 생기는 초파리는 간장 냄새와 과일 껍질의 달콤한 냄새를 좋아하는데요, 2시간에 한 번 알을 까죠." 그의 집은 여느 지하방 못잖은 습기에도 불구하고 끈임없이 쓸고 닦는 부지런함 덕에 곰팡이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그에게 반지하방을 고르는 요령을 물었다. "첫째는 낮 12시에 방을 봐야 해요. 채광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죠. 밤에 보면 꽝이에요. 그 다음엔 장판을 꼭 들춰 얼마나 습기가 차는지 봐야죠. 가능하면 옥탑방이 없는 건물의 지하방을 고르세요. 옥탑방 있는 집은 집 주인이 욕심이 많다고 봐야죠. 세입자에게 요구하는 게 더 많습니다. 그리고 수도를 꼭 틀어봐야 해요. 지하가 물이 더 잘 나오는 집도 있지만, 위층에서 물을 쓰면 졸졸거리는 지하방도 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관문과 방의 창문이 일렬로 배치된 지하방이 환기가 훨씬 나아요."거침없이 지하방 극복기를 설명하는 그에게 반지하방과 옥탑방 가운데 선택하라면 어디가 낫겠냐고 물었다. "옥탑방 가라면 차라리 군대에 한 번 더 갈 거예요. 군대 시절 텔레비전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를 보고는 정말 브라운관을 부수고 싶었어요. 옥탑방에 살면 대륙성기후란 게 뭔지 제대로 알게 돼요." 철마다 바깥 기온에 절대적으로 좌우되는 옥탑방의 끔찍함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런 그도 침실 옆방의 장판을 들춰보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이 흥건했기 때문이다. "헉, 이 정도인지는 미처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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