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조계사 천막은 '제2의 촛불상황실'

2008. 7. 1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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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장] 조계사 수배자들의 1박2일

파도타기와 택견, 자유발언까지 '그들만의 촛불집회''경호자봉단 24시간' 지원…108배서도 재협상 빌어

보고 있자니 안쓰럽다. 조계사에서 만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박원석(38) 상황실장의 손. 피부 각질이 흉하게 벗겨져 있었다. 화상이라도 입은 듯하다.

"3-4주 전부터 생겼다. 연고를 발라도 잘 안 낫는다. 병원에 갈 수가 없으니 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생긴 거라고 하더라." 박 실장은 자신이 앓고 있는 피부병을 아무렇지 않은 듯 설명했다. 그에겐 현장이 더 앞선 걱정거리다. 수배 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이 뭐냐고 묻는데, '가족이 보고 싶다든지', '병원에 못가 곤란하다든지' 이런 대답을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상황실장인데, 촛불 현장감을 잃을까 답답하다. 현장에서 감각을 놓치면, 이 운동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박 실장의 눈에서 초조한 기색이 엿보였다.

5월 2일 시작된 촛불집회가 두달을 넘기자, 정부는 인내심을 잃은 듯 대책회의 활동가들을 구속하고 수배를 내렸다. 지난달 27일 박원석 상황실장에 대해 긴급체포영장이 발부된 데 이어 대책회의 한용진 상황실장, 김광일 행진팀장, 김동규 조직팀장에게 차례로 영장이 날아들었다. 누리꾼도 예외가 없었다. 백성균 <미친소닷넷> 운영자와 백은종 <안티이명박카페> 부대표도 함께 수배자가 됐다. 이들은 모두 지난 5일부터 서울 조계사 안에서 '수배생활'을 하고 있다.

이 여섯명의 수배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9일 조계사를 찾았다. 수배자 천막은 대웅전 뒤편 작은 마당에 자리잡고 있었다. 30㎡ 정도 될까. 여섯명이 살기엔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바닥은 나무 판대기에 스티로폼을 깔았다. 그 외 살림살이는? 후텁지근한 날씨를 이겨낼 선풍기 3대(원래 2대였는데 취재 도중 한 20대 여성 직장인이 선풍기 한 대를 놓고 도망갔다. 수배자 천막에 와서 뭔가 놓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시민이 꽤 있다. 어쩌면 지금쯤 선풍기가 5대로 늘었을 지 모른다), 아이스 박스 2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노트북 4대, 정수기, 담요와 이불, 돗자리 5개, 모기장, 약간의 촛불들. 살람살이는 이것이 다다. 궁핍해 보이지만 꼭 필요한 건 다 갖췄다.

천막 한 켠엔 '농성장 하루 일정'이 적혀 있다.-새벽 4시 기상-6시 기상, 체조-6시 30분 아침식사, 세수, 농성장 청소-8시 30분 아침조회-11시 30분 점심식사-5시 30분 저녁식사-7시 촛불집회-10시 종례

▶ 저녁 7시 '그들만의 촛불집회'…파도타기와 택견, 자유발언까지

가만히 살펴봤다. 언뜻보면 평범한 하루 일정표다. 다만, '촛불집회'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수배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촛불집회에 가겠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물어보니 그건 아니었다. 박원석 실장은 "7시부터 시민들이 여는 촛불집회에 함께 하려고 조계사 안에서 약식 집회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녁 7시가 되자 30여개의 촛불이 천막 농성장 앞 바닥에 일렬로 놓이기 시작했다. 흩어져있던 수배자들이 천막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이들 주변에 있던 시민 20여명도 그 앞에 선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헌법 제1조' 노래를 부른다. 바로 앞 대웅전에선 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잠시 뒤, 수배자 여섯명이 차례로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촛불 파도타기' 퍼포먼스가 열렸다. 좀 썰렁하다. 그러자 공연이 시작된다. 택견 시범이었다. '숙달된' 한용진 실장과 '어색한' 조교 2명의 발차기가 선보였다. "아이, 아이, 아이크, 헛." 어색한 시범에 분위기가 더 썰렁해졌다. 그래도 다들 표정은 즐겁다. 김광일 팀장이 익살스럽게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자 택견 공연은 끝났다.

이어 자유발언. 김광일 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명박이 G8 회의 차 일본에 갔다. G8의 G는 '쥐'였나보다" 그의 농담에 다들 키득거린다. 다음으로 행진이 빠질 수 없다. 시민 20여명과 수배자 6명은 줄을 맞춰 조계사 경내 한바퀴를 빙 돌았다. 대웅전 불상 앞에선 반배를 올렸다. 규모는 작지만 할건 다하는 촛불집회였다.

약식 촛불집회가 진행되던 도중 시민 2명이 어느새 천막 옆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박선희(45·서울시 도봉구 도봉2동)씨와 천아무개(40)씨. 박씨는 "양심이 시켜서 왔다. 이 분(수배자)들이 촛불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촛불이 이 분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어서 수배가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시가 넘어서야 이들은 조용히 조계사를 떠났다.

▶천막은 '제2의 촛불 상황실'…경호자봉단 24시간 철벽 경호

천막 안은 수배자들의 생활공간이면서도 '제2의 상황실'이다. 박원석 실장을 비롯 대책회의 관계자들은 수시로 노트북을 켜서 촛불집회 관련 모니터링을 한다. 뉴스도 보고 전화도 한다. 특히 박 실장의 손전화기는 쉴 틈이 없다. 이곳저곳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느라 박 실장과의 인터뷰는 자꾸 끊긴다. 찾아오는 손님도 박 실장이 제일 많다. 이날 오후 4시 20분. 참여연대 활동가 7명이 그를 찾았다. 참여연대 인턴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리(20·협성대 사회복지학과 2학년)씨는 "수배는 말도 안된다. 마녀사냥이다. 안타깝다"며 박 실장을 위로했다. 박 실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가장 바쁜 수배자가 박원석 실장이라면, 가장 인기있는 수배자는 누구일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은종(55) <안티이명박카페> 부대표의 인기는 현장에서 '스타급'이다. 그의 주변엔 항상 카페 회원 10여명이 붙어 다닌다.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잔다. 아니, 사실은 백씨가 잠을 잘 때 회원들은 경호한다. 새벽 깊은 시각이 되어도 이들은 조계사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혹시 사복경찰이 들어오진 않나 예의 주시한다.

백씨의 경호원을 자처한 누리꾼 용달맨(40)씨는 29일 백씨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날부터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백씨는 "누군가는 지켜줘야 하지 않겠나. 본의 아니게 수배생활 같이 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이주형(19)씨도 대학 1학년 첫 여름방학을 '대표님 사수'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형사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 방학 내내 여기에 있겠다"며 "'초딩'들도 방학해서 함께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계사를 드나드는 승려와 불자들은 수배자들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배자 천막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관스님(김포시 용화사 주지)에게 물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당한 주권행사를 했는데 이 더운 여름에 수배생활을 하다니. 불자들이 보호해줘야 한다. 종교가 뭔가. 약자와 환자들의 고통을 달래고 함께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박원석 실장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머리가 희끗한 불자 박순천(85·서울시 사직동)씨도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억울한 시대의 희생양이다. 잘못된 쇠고기 협상 바로잡으려고 국민들 대신 나선 사람들인데…" 김용구 조계종 총무원 행정관은 "약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며 "하루 빨리 이 불행한 일이 해결되도록 스님들도 수배해제를 위한 노력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11시. 수배자 여섯명이 둥글게 앉아 저녁 종례를 열었다. 이날 종례의 안건은 전기선 추가와 빗물방지용 천막보수, 새벽 108배였다. 20여분 간의 회의를 마친 뒤, 천막엔 모기장이 쳐졌다. 수배자들은 하나둘 잠을 청했다. 대웅전에서 들려오는 불경소리가 깊은 새벽에도 이어졌다. 김동규 대책회의 조직팀장에게 '잠은 좀 잘만한 지' 물었다. "괜찮아요. 스님들이 외는 불경소리가 오히려 자장가입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박원석 실장은 지갑에 들어있는 10살짜리 아들과 부인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 후, <나눔문화> 회원들이 전해준 편지를 조용히 읽었다. 조계사에서 수배자들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108배로 하루 시작…"그래도 아들 얼굴 보러 왔지"

새벽 5시. 아침이슬이 촛불 수배자들의 천막을 촉촉이 적셨다. 대웅전은 이미 새벽 예불을 드리러온 불자들 50여명으로 꽉 차 있다. 조계사에 아침이 찾아온 것이다. 수배자들은 정확히 5시에 일어났다. 새벽까지 수배자들과 함께 한 누리꾼 10여명은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5시 40분. 농성천막을 떠나 대웅전 앞 마당으로 자리를 옮긴 수배자들이 108번 절하기를 시작했다. 박원석 실장이 죽비를 손바닥에 부딪혔다. '딱' 소리가 나자 나머지 일행이 함께 절을 올렸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백승균 <미친소닷넷> 운영자에게 말을 걸었다. "뭘 빌었나요?", "재협상이죠" 수배자 여섯명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조계사 수배자들의 취재를 마칠 무렵, 백성균(30)씨의 어머니 박아무개(58)씨가 아들을 만나러 왔다. 박씨의 볼은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박씨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며 손수건으로 눈을 훔쳤다. 눈시울이 붉었다. 백씨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 마디 했다. "여긴 뭐하러 왔어요", "그래도 아들 얼굴 한번 보러왔지" 30대지만, 소년같은 외모를 가진 백씨는 어머니에겐 여전히 챙겨주고픈 아들이었다. 조계사의 수배자들은 그렇게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있었다.

취재 도중, 이들은 자신들을 '수배자말고 다른 용어로 불러주는 것 어떠냐'고 제안했다. 누군가가 대답했다. "촛불지킴이 어때요?" 수배자 여섯명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들이 '수배자'로 기억될지 '촛불지킴이'로 기억될지는 알 수 없다. 시간이 이들의 이름을 정해 줄 것이다. '폭동'과 '항쟁'사이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처럼.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김도성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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