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물개'와 '솔개'

2008. 7. 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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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6년 '솔개'와 관련한 우화가 '솔개의 혁신'이란 이름으로 널리 회자된 적이 있다.

 솔개는 장수하는 조류 중의 하나다. 보통 70년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솔개가 70년을 사는 것은 아니다. 솔개가 40년을 지내면 날카롭던 부리는 마모되며 각질이 더덕더덕 붙어 무뎌지고, 발톱은 발톱대로 노화해 먹이를 잡아채기도 힘든 지경에 이른다. 깃털 또한 짙고 두껍게 자라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힘겨울 만큼 무거워진다.

 이 시점부터 솔개의 고민이 시작된다. 뼈를 깎는 자기수행을 거쳐 새롭게 거듭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솔개가 새 삶을 만드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우선 산 정상까지 올라 그곳에 둥지를 짓고 바위를 쪼며 뭉퉁해진 부리를 깨뜨린다. 빠진 부리가 다시 나기 시작하면 이번엔 새로 돋아난 부리로 발톱을 뽑아낸다. 그리고 발톱이 새로 돋아나면 이번에는 먼지로 범벅이 돼 무겁기 그지없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씩 뽑아낸다. 6개월의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을 더 살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위해선 피나는 아픔과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반대의 예도 있다. 에스키모의 물개 잡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물개가 좋아하는 동물의 피를 날카로운 칼에 묻혀 딱딱한 눈에 꽂아 놓는다. 물개는 좋아하는 피 냄새를 맡고 칼 가까이 와서 혀로 핥아 먹는데 먹다 보면 날씨가 너무 추워서 혀가 마비돼 자기 혀가 칼에 베이는 것도 모르고 계속 핥아 먹다가 결국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게 된다. 앞의 얘기들은 우리가 현재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안주해 행동하게 되면 결국 자신이 파멸하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도태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KAIST의 생명공학연구원 통합 제안을 시작으로 터져 나온 출연연의 새로운 사명 부여와 생존을 위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결과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정책집행에 질책과 비난만 난무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의 여부다. 정부가 손대기 전에 자발적으로 움직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출연연 정규직의 인력 구조는 대부분 다이아몬드형이다. 역피라미드형도 있다. 중간관리자가 수두룩하다. 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에서 신규 인력 충원이 안 된 탓이다. 지난 1월 정부감사가 시작됐지만 결과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른바 '거리'가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이 분명 있을 텐데 말이다. "출연연을 국가기관으로서 수행할 원천기술 R&D과제 하나 당당하게 내놓지 못하게 만든 주체가 도대체 누구냐"는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특정 부문 R&D 인력만 수만명이다. 그래도 국제 경쟁력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판이다. 그런 상황에서 출연연은 고작 300∼400명이 모여 수십개 분야의 R&D를 수행해 왔다. 경쟁력이 있을 턱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휴일이나 명절이나 도시락을 4개씩 싸가지고 다녀 출연연의 상징으로 불리던 '도시락 연구원' P박사가 최근 대학으로 옮긴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왜 그는 이직해야만 했을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출연연을 물개가 되게 할 것인지, 솔개가 되도록 할 것인지 정부가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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