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AI 서울 확산..강남 율현동 조류 살처분 현장

2008. 5. 1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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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부처님 오신 날, 알 품고 있던 암탉까지 죄다 묻어죽이다니…."석가탄신일인 12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율현동 방죽마을. 화창한 날씨 속에 평소 같으면 농사일에 매달렸을 10여 명의 주민들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강남구청 방제팀의 가금류 매립작업을 지켜보았다. 광진구에 이어 11일 송파구에서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견되자 서울시가 예방차원에서 서울 전역의 가금류를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연출된 풍경이다.

그린벨트에 묶인 탓에 '도심의 농촌'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밭농사를 짓는 일부 주민들이 닭과 오리 등을 소규모로 사육하고 있었다. 이날 매립 살처분은 강남구청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율현동, 개포동, 세곡동 등 관내 가금류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주민들은 애써 기른 닭과 오리가 '예방'이라는 이름으로 땅 속에 속절없이 묻히는 것을 몹시도 안타까워했다. 이른 아침 남편과 시장에 나간 사이 구청 방제팀들이 들이닥쳐 애지중지 길러온 닭 9마리를 거둬갔다는 오모씨(53·여)는 "오늘이 부처님오신날인데, 이게 무슨 변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오씨는 "정부가 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는 일이니 어쩔 수는 없다지만 병도 안 걸린 닭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눈물을 머금었다.

소일거리 삼아 10여 마리를 기르다 이날 아침 방제팀에 고스란히 닭들을 내준 한 할머니는 "우리 집에는 처음부터 닭이 없었다"며 볼멘소리로 우겼지만 집 한켠에는 텅빈 닭장이 주인을 잃은 채 덩그마니 있었다.

방죽마을의 한 농약상에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은 언론등을 통해 AI의 위험성을 충분히 전해들은 탓인지 불안한 기색이었다. 농약상을 운영하는 A씨는 "이른 아침부터 마을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며 "하얀 방제옷을 입은 사람들이 집집마다 닭과 오리를 찾아다니는 통에 하루종일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율현동 일부 주민들은 이날 아침 9시30분께 방제팀들의 매립을 저지하기도 했다.농사일을 하고 있는 김모씨(51)는 "제대로 된 예고도 없이 방제팀들이 몰려와 가금류를 무조건 땅에 묻으려 하는데, 그럼 방제옷 하나 없이 여기서 농사 짓는 우리들은 어쩌란 거냐"고 항의했다. "송파구에서 병이 났다는 가금류를 농사 짓는 땅에 묻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있었다.

"매립하는 가금류가 대부분 건강한 상태이며 예방적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는 방제팀의 설명을 듣고 난 뒤 주민들은 한시간 넘게 계속한 농성을 풀었다.

휴일인데도 AI를 차단하기 위해 가금류 긴급수거에 나선 구청 직원들도 AI가 다시 번지자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강남구청은 이날 새벽 4시30분부터 100여명의 방제조를 긴급 투입해 가금류 수거에 나섰지만 신고를 꺼리는 일부 주민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구청 관계자는 "전체적으로는 협조적이지만 일부 주민들이 집에 가금류를 숨기려고 하고 이를 다른 주민들이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현재 구청에서 파악한 수량은 100% 가까이 매립 살처분 하고 있지만 개인이 소규모로 기르는 가금류까지 처분하려면 주민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청 방제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3시께 닭과 오리, 거위, 칠면조 등 모두 478마리의 가금류에 대한 매립 살처분을 마쳤지만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AI에 대한 걱정 탓인지 모두들 피곤한 표정이었다.

< 관련사진 있음 >손대선기자 sds1105@newsis.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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