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숙 세번째 소설집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

2008. 4. 28.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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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하던 부모의 죽음과 우울증… '고통의 6년'이 토해낸 6편의 고백

소설가 차현숙(45ㆍ사진)씨가 세 번째 소설집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이룸 발행)를 펴냈다. 두 번째 장편 <안녕, 사랑이여>(2002) 발표 후 6년 만이다. 1994년 등단 이래 장편과 단편집을 두 권씩 내면서 도시 기혼 여성들이 겪는 현실과 욕망의 갈등을 천착했던 차씨에게 이번 책은 각별할 듯하다.

스스로 작가 후기에 밝혔듯 1999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기점으로 6년간 이어진 중증의 우울증을 극복하고 펴낸 책이기 때문이다. 후기엔 "양쪽 손목을 커트 칼로 그어댄 그날, 그 밤의 고독은 평생 잊을 수 없다"는 구절도 있어 당시의 고통을 엿보게 한다.

수록작 6편 중 표제작을 비롯한 4편은 우울증을 앓던 시절에 관한 자전 소설이다. 최근작인 '세상 모든 문이 닫히던 날'(<현대문학> 2007년6월호)은 손목을 자해한 뒤 응급실에 실려온 일을 모티프로 했다. 순차적 시간을 조각내 뒤섞어 배치한 구성이 '나'의 정신적 혼돈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2002-2003년에 발표된 다른 세 작품-표제작과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종이인형'-은 어머니의 치매,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를 소재로 한다. 동일 인물로 봐도 무방한 작중 화자-우울증에 빠진 중년 여성-들은 노부모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면서 그 뿌리를 이루는 신산한 가족사를 들춘다.

부모는 각자 배우자와 거기서 얻은 자녀를 떨치고 도망치듯 서울로 와 고단한 삶을 꾸린다. 두 사람 사이엔 딸(주인공)과 아들이 태어나지만, 생계에 치인 이들의 양육법은 살가움보단 무관심에 가깝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이전의 혼인 관계가 자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초등학생이 된 딸에게 가정환경조사서를 받아든 아버지는 어딘가 다녀오더니 종잇장을 도로 집어던진다. "엄마의 이름이 없다. 나는 아주 낯선, 이름 모를 여자의 둘째 딸이 되어 있다."(98쪽) 외할머니가 신병을 앓았다는 어머니의 뒤늦은 증언을 듣고 화자는 제 몸에 "할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불안과 공포"(61쪽)에 젖는다.

기억의 봉인을 뜯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상처의 응시 없이 치유는 없다. 작품 속 차씨의 페르소나들은 어떤 욕된 기억에도 눈감지 않음으로써 쓰린 개인사를 완성한다. 자기 삶의 맥락을 찾았으니 고될지언정 더는 방황하는 일이 없을테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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