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 찰톤 헤스톤의 영화세계..사극 제왕에서 평범한 배우로

2008. 4. 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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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최나영 기자] 영화 '벤허'(BenHur)로 유명한 할리우드 명배우 찰톤 헤스톤이 5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향년 84세로 타계했다. 서부극 사극 스릴러, 나중에 조역 카메오 시절까지 다양한 배우 경험을 점철했지만, 주로 인류의 역사적 인물을 주로 연기해 팬들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그의 작품세계를 되짚어본다.(영화인 이규웅씨의 글 '찰톤 헤스톤 - 스펙타클 영화의 제왕' 참고) ○화려한 데뷔

1924년 10월 4일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톤에서 태어난 헤스톤은 연극무대에서 배우로의 꿈을 키워갔다. 그러던 중 20대 후반, 당대의 유명 감독 세실 B 드밀의 작품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 1952)에 주인공급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명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한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후 그는 '네이키드 정글'(The Naked Jungle, 1954), '쓰리 바이어런트 피플'(Three Violent People, 1956) 등에 출연하다가 1956년 세실 B. 드밀 감독의 '십계'(The Ten Commandments) 의 모세 역으로 출연하면서 톱배우의 반열에 올라섰다.

○ 스펙터클의 제왕

헤스톤은 50년대 초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미국영화계에서 강인한 역사속의 인물이나 성서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로서의 역할을 했다.

'십계'와 1959년작 '벤허'는 엄청난 제작비와 물량을 들인 50년대 최고의 대작이었고, 동시에 세계적인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감독 윌리암 와일러가 "신이여, 내가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까"라고 스스로 감탄하기까지 한 이 영화의 타이틀롤 쥬다 벤허 역으로 헤스톤은 196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십계'와 '벤허'를 필두로 그는 유난히 스펙터클 사극에 자주 출연했다. '위대한 생애'(The Greatest Story Ever Told, 1965)에서는 세례 요한 역으로, '줄리어스 시저'(Julius Ceasar, 1970)에서는 마크 앤소니 역으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 1973)에서는 마크 안토니 역으로 출연했다. '고뇌와 절정'(The Agony and Ecstacy)에서는 미켈란젤로 역을 맡아 섬세한 내면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십계'와 '벤허'의 대히트는 그에게 득임과 동시에 실이었다. 그의 이미지가 '스펙터클한 대작 사극 배우'으로 굳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탐닉할 수 없었던 그는 '엘 시드'(El Cid, 1961), '북경의 55일'(55 Days at Peking, 1963), '위대한 생애'(The Greatest Story Ever Told, 1965), '하르툼 공방전'(Khartoum, 1966) 등의 영화들을 통해 역사적인 사극인물에 주로 배역이 한정됐다.

○ 영화인생의 돌파구 '혹성 탈출'

헤스톤의 영화 인생에 돌파구를 마련해 준 것은 1968년 제작된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이었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그는 SF영화인 '혹성탈출'에 테일러 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혹성탈출' 이후 헤스톤은 몇몇의 SF영화 출연을 이어갔다. 물론 그 와중에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 1978) 등에 출연했지만 '혹성 탈출'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마련해 준 작품이었다.

○ 평범한 배우로 내리막길..

화려하게 데뷔하며 많은 흥행작을 만들어 낸 그는 비교적 내리막길이 빨랐다. 그의 영화 인생은 50대 초반부터 슬슬 내리막길을 걸었다. 1976년에 출연한 '미드웨이'가 그에게는 마지막 히트작이었다. 나이가 든 헤스톤은 말년에 다소 질이 떨어지는 영화들에 단역으로 주로 출연했으며, 그가 주인공을 맡은 몇몇 영화들은 개봉이 되지 않았다.

헤스톤의 최근작은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 '타운 앤 컨트리'(Town & Country, 2001), '매드니스' (In the Mouth of Madness, 1995), '트루 라이즈 '(True Lies, 1994) 등이다. 특히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는 마이클 무어 감독이 인터뷰를 하기위해 총기협회 회장인 찰턴 헤스톤에 카메라를 들이댔으나, 헤스톤은 자리를 뜨고 말았다.

[ 사진 = 영화 '벤허' '지상 최대의 쇼', '십계', 찰톤 헤스톤의 자서전 'Charlton Heston In Arena'(사진 위로부터)]

(최나영 기자 nyn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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