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칸〉[영화 내 사랑]정웅인이 본 '여인의 향기'
ㆍ보고 또 봐도 '역시 알 파치노'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제목 때문에 야한 영화인가 했다. 그런데 포스터 사진은 그게 아니었다. 큼직하게 새겨진 알 파치노의 이름 아래 선글라스를 쓴 그가 한 청년과 함께 지팡이를 짚고 걷고 있었다. 제목에 어떤 상징성이 있는지 궁금했고, 알 파치노의 영화여서 극장으로 달려갔다.
1993년 봄 어느날의 기억이다. 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입대,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시절이었다. 벌써 14년이 지났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 '여인의 향기'에 출연했을 당시 알 파치노의 나이(52세)를 먹는 것도 순식간일 것 같아 오싹한 느낌이 든다.
굴곡 없는 삶이 있을까? 우리네 삶에는 크고 작은 위기가 있게 마련이다. '여인의 향기'는 50대 퇴역 중령 프랭크(알 파치노)와 10대 고교생 찰리(크리스 오도넬)를 내세워 이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프랭크는 시각장애인, 찰리는 하버드대 진학이 가능한 장학생이다. 프랭크는 어둠 속에 갇혀 사는 삶이 덧없다. 찰리는 교장을 골탕먹인 친구들을 밀고하면 하버드에 갈 수 있고, 하지 않으면 퇴학을 당할 처지에 놓인다. 영화는 두 남자가 맞닥뜨린 위기와 그것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룬다. 신·구세대의 화합을 담았다.
그런데 제목이 '여인의 향기'다. 줄거리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그 이유는 비행기·레스토랑·호텔에서 두 남자의 언행을 통해 알게 된다. 뉴욕행 기내 1등석에서 한 스튜어디스의 서비스를 받은 뒤 프랭크는 여성의 머리칼·입술·가슴·다리 등에 대한 감상을 털어놓는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선 남다른 후각을 발휘, 옆자리 여성이 쓴 비누냄새를 맞춘 뒤 미모의 그 여성과 탱고를 멋들어지게 춘다.
최고급 호텔 침실에서는 찰리에게 "언젠가는 내가 여자의 품에 안겨 있고, 그녀의 다리가 날 감싸고 있고, 깨어난 아침에도 그녀가 그대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포기했다"고 털어놓는다.
이 과정에 프랭크는 "세상에서 들을 가치가 있는 유일한 낱말이 여자"라고,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면 죽은 것"이라고 역설한다. '여인의 향기'는 삶의 '희망'인 것이다. 프랭크는 또 자신 없다는 여성에게 "실수하면 발이 엉기는 게 바로 탱고"라며 춤을 권한다. 엉기면 엉기는 대로 추면 된다고, 우리네 삶도 그런 거라는 의미로.
이 말은 훗날 찰리가 자살하려는 프랭크에게 써먹는다. 마음을 바꾼 프랭크는 학교를 방문, 5분여에 걸친 연설로 퇴학 위기에 처한 찰리를 구제한다. 이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백미로 알 파치노의 명성을 재확인시켜 준다. 알 파치노는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주옥같은 대사를 적고 암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담배·술 생각이 간절할 때도 많다. '여인의 향기'는 그런 영화다. 보고 또 봤지만 또 보고 싶은 영화다.
〈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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