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은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2008. 2. 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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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구별짓기와 '나도주의'로 상류 가치를 지향하는 키치 왕국의 주민들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2006년 사망한 미국 여성운동가 베티 프리단은 1963년에 출간한 <여성의 신비>에서 안락한 미국 중산층 가정을 '포로수용소'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현대식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를 '여성의 신비'라고 규정하면서 그런 주장을 폈는데, '포로수용소' 개념은 좀 다른 의미에서 한국의 중산층에 더 어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산층이 무너졌다! 지난 대선을 지배한 정치 구호다. '중산층 복원'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2007년 11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10년 전 41%에서 28%로 감소했다. "국민의 70%를 중산층으로 만들겠다"는 게 노무현의 대선 공약이었는데, 턱도 없는 헛소리를 한 셈이다.

히피와 386, 도전에 실패하다

'중산층 몰락론'은 허구라는 주장도 있다. 유팔무·김원동·박경숙은 <중산층의 몰락과 계급양극화>(소화 펴냄)에서 중산층 몰락론은 "노동자와 서민의 고통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중산층이 이들과 같아지는 것을 우려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대책에만 열중하는" 정치적인 편파성을 가진 논리라고 비판했다.

사실 정치인들의 '중산층 포섭 전략'이야말로 세계적으로 정치를 보수화하는 주범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선거에서 '빈곤 문제의 정치 쟁점화'는 금기사항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빈곤층보다 훨씬 더 막강한 힘을 가진 중산층 유권자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중산층에 팽배하던 물질 만능주의와 순응주의에 깊은 회의를 느낀 중산층 젊은이들이 저항의 길을 택한 건 1950년대였다. 이른바 '히피'의 출현이다. 한국에서 1980년대에 출현한 '386'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광주학살의 토대 위에 선 군사독재 정권에 순응하면서 물질적 삶에 안주하는 중산층 가치에 정면 도전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두 저항세력 모두 종국엔 몰락하고 말았지만, 이는 중산층 가치에의 도전이 그만큼 어렵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중산층은 경제·사회적 개념인 동시에 심리적 개념이다. 중산층의 꿈은 105㎡(32평) 아파트와 중형차의 소유, 주말여행, 골프와 스키 등으로 상징된다고는 하지만, 각 항목 내에서도 다양한 차별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중산층의 실체를 종잡기가 어렵다.

아니 뜬구름을 잡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조사가 나오기 6개월 전에 발표된 삼성경제연구소-성균관대 리서치센터 설문조사에선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74%였다. 6개월 만에 74%에서 28%로 급락할 수 있는가? 그럴 수도 있는 게 바로 한국의 중산층이다.

2007년 8월 삼성경제연구소는 중산층을 ① 예비 부유층(월소득 420만~499만원) ② 전형적 중산층(350만~419만원) ③ 무관심형 중산층(270만~349만원) ④ 생계형 중산층(200만~269만원) 등 4개 그룹으로 세분화했다. 연구소는 "중산층을 획일적인 시장이 아닌 다양한 특성을 지닌 세분화된 시장들의 집합체로 봐야 한다"며 "각각의 세분화된 시장을 타깃으로 기업 마케팅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4가지 분류에 따라 기업 마케팅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면, 어떻게 바뀔 것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광고를 지겹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광고주의 숨은 뜻까지 파악하려는 시도를 해보면, 광고는 우리 사회를 읽을 수 있는 좋은 텍스트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마케팅의 기본 원리 중 하나는 범주화 전략이다. 특히 한국 광고에서 많이 사용되는 전략이다. "너 이거 있어?" "너 여기 살고 싶지?" "쉿! 아무 말 하지 마. 브랜드가 널 말해주는 거야!" 한국 광고의 특성은 이런 메시지가 비교적 직설적으로 표현돼도 소비자의 저항이 없거나 약하다는 점이다.

400만원대는 5.1%, 100만원 미만은 61%

범주화 전략의 묘미는 불안을 부추기는 데 유리하다는 것에 있다. 과거 고교 시절에 '우열반'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게다. 불안은 중산층의 본원적 속성이지만, 한국 중산층의 불안은 유별나다.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해외 의존도가 높은 탓도 있지만, 사회문화적 비교 의식이 지나칠 정도로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회문화적 동질성과 거주 밀집성으로 인해 이웃을 의식하지 않고선 한시도 살 수 없는 묘한 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다. 이웃과의 비교는 처절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필사적이다. 물질적으로 잘살게 될수록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보다 더 잘사는 사람을 이웃으로 두게 되는 결과만 초래해 불행해지는 역설마저 가능해진다.

2006년 11월 동아대 교수 장세훈은 제9회 비판사회학대회에서 "이제 집값이 비싼 서울 강남이나 수도권 일부 지역 같은 곳에 자기 집을 갖고 있는 사람만 중산층이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심리적으론 강남에 살아도 자신보다 더 잘사는 이웃을 두면 비강남 거주자보다 더 위축될 수도 있다.

실제로 2006년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선 월소득이 500만원대인 사람 중 26.6%가 자신이 하위 계층이라고 답한 반면, 400만원대인 소득계층에선 그 비율이 5.1%에 불과했으며, 100만원 미만 소득계층에선 61%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평가했고, 36.5%만이 하위 계층이라고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만족감은 이웃과의 비교로 결정된다는 이른바 '이웃 효과'는 한국인 삶의 전 국면을 지배하고 있으며, 특히 상층지향성이 높은 동시에 하층으로의 전락을 두려워하는 중산층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전염 효과와 쏠림 현상이 자주 극단을 치닫곤 하는 이유다. 교육·부동산 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들이 순수한 정책적 고려만으로 풀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산층 행태의 본질은 '키치'다. 키치란 19세기 말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로 생겨난 중산층이 귀족의 예술적 취향을 흉내낸 데서 비롯된 개념이지만,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정통 예술가들은 키치를 경멸하지만, 키치엔 사회적 이동에 따른 평등의 욕망이 강하게 내재돼 있다. "너희만 즐기냐? 너희만 잘났냐? 어디 나도 좀 맛보자!"라는 오기가 키치의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키치를 대신할 우리말 순화어로 '눈길끌기'를 선정한 건 바로 그 점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예술을 스스로 즐길 만한 감식안이 없기 때문에 예술을 남들의 눈길을 끄는 용도로 소비하는 것이다.

호텔을 이용하고 명품을 소비하는 중산층

실제 삶에서 대상의 본래적 가치 이외에 다른 덧붙여진 가치들을 소비하려는 존재를 가리켜 '키치 인간'이라는 개념까지 등장했다. '키치 인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정신에 가장 충실한 계층은 단연 중산층이다. 중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구조로 되풀이되는 구조를 가리키는 '프랙털' 개념은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계층을 떠나 국가와 개인도 중간에 속할 경우 아래와는 구별되고 싶고 위를 닮고 싶은 욕망에 몸부림치기 마련이다.

키치는 압축성장, 사회변동, 역동성에 친화적이다. 한국에서 키치를 조롱하거나 경멸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일 수 있다. 매우 이른 시간에 근대화 또는 서구화를 이룩한 한국 사회의 많은 부문이 서구적 원형을 흉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키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키치는 한국인에게 숙명이며 한국은 '키치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주요 명품 소비국은 선진국이 아니라 한국과 같은 '중간층' 국가들이며, 한국 내에서 명품의 주요 소비층도 상류층이 아니라 중산층이다. 호텔의 주요 소비층도 상류층인 것 같지만 실은 중산층이다. <도시의 창, 고급호텔>(후마니타스 펴냄)을 쓰기 위해 서울 시내 15개 '특1급' 호텔들을 취재한 발레리 줄레조에 따르면, 숙박에서는 외국인 여행객의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전체 매출액에서는 상류층 고급 사교문화를 향유하려는 중산층의 소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층지향성이 강한 중산층의 키치 문화가 명품 열풍, 골프 열풍, 해외여행 열풍을 넘어서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최근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와인 열풍과 고급예술 열풍이다. 경제력을 갖춘 신중산층 사이에 불고 있는 클래식 음악 열풍, 와인 열풍, 미술품 구매 열풍을 합쳐 부르는 '삼종신기'(三種神器)라는 신조어마저 생겨났다. 다 좋고 아름다운 일이겠지만, 남과의 '구별짓기'를 위한 속물근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각종 열풍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포로가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와인 전문가 박찬일은 서양에서는 와인 인구의 0.001%나 될까 말까 한 와인감정사에게나 필요한 시음법이 한국 중산층에게 필수 교양으로 통용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뭔가 우리는 외래문화에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외국 대통령도 안 지키는 예절을 우리가 수수한 대중식당에서조차 지키고 있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라고 했다.

그런데 와인만 그런 게 아니다. 무엇이건 유행만 했다 하면 대부분이 그런 식이다. 스스로 즐기기보다는 남과의 '구별짓기'가 우선적인 목적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와인·고급예술 열풍은 웃어넘길 수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건 '나도주의'(me-tooism)로 인해 가족의 삶 자체가 피폐해지는 경우다.

대표적인 게 상류층에서 시작돼 중산층으로까지 열병처럼 번진 조기유학 바람이다. 물론 자녀의 조기유학은 치열한 생존경쟁에 적응하기 위해 내린 비장한 결단이겠지만, '이웃 효과'에 따른 불안 심리가 증폭돼 나타난 현상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가족 차원에선 아무리 진지하고 심각해도 사회적 차원에선 '포로수용소'가 연상되는 걸 어이하랴. "중산층이 무너졌다"는 소리도 높지만, 그전에 중산층 스스로 만든 '포로수용소'를 무너뜨리는 게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첩경은 아닐까?

서울대 개혁론이 실패하는 이유

대학도 중산층 포로수용소로 변해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대는 점점 더 부잣집 아이들의 대학으로 변해가고 있고, 이에 질세라 명문 사립대학들은 어떻게 해서든 부잣집 아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대학교수진도 그 추세를 따르고 있다. 박노자는 "지금 같으면 시간강사 몇 년 않고는 교수 할 수 없는 분위기인데, 시간강사 하는 것이 생계를 해결 못할 직업이에요. 박사과정 들어가는 사람들 보면 가난뱅이 출신들 별로 없어요. 십중팔구 중산층 그 이상 출신인데, 그들은 대한민국에 대해 불만조차 없지요"라고 개탄했다.

대한민국에 대한 불만보다는 상류층에 편입하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전 인구의 한 자릿수밖에 안 되는 상류층의 이해관계가 다수결의 원리로 관철되는 희한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마치 서울대를 개혁하자고 하면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중산층 학부모가 자기 자식 서울대 보낼 생각에 서울대 개혁론에 반대하거나 시큰둥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 또한 중산층을 가둔 '포로수용소'라 할 수 있다.

중산층은 진보정치 세력의 딜레마다. 영합할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양심적인 중산층'이나 '문화적 감수성이나 지향하는 가치가 진보적인 중산층'이다. 그러나 이들의 수가 얼마나 되랴. 그렇다고 중산층의 상층지향성과 속물근성을 노골적으로 비판할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진보정치 세력이 이런 딜레마를 타개하기 위해선 기업들과는 다른 목적으로 중산층 세분화를 해 맞춤형 설득을 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전략'이 필요하다. 실용주의 노선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한국형 실용주의엔 워낙 때가 많이 묻었으니 실사구시라는 말을 쓰기로 하자. 그런데 문제는 무슨 말을 쓰건 진보 진영이 실사구시에 비교적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진보 진영을 대변하는 논객들의 글을 읽어보시라. 구구절절이 옳고 아름답다. 그런데 대부분 거대담론이다. 비분강개다. 비진보·반진보 세력의 양심 없음, 어리석음, 파렴치함을 공격하는 걸로 진보 진영에 표를 주는 유권자가 늘 거라고 믿는 방식이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중산층을 구해내야 할 이들마저 스스로 만든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으니, 무슨 변화가 가능하랴. 다양성은 진보파의 미덕이기도 하다. 옳고 아름다운 거대담론과 더불어 생활밀착형 담론도 꽃을 피우면 좋겠다. 포로수용소에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아무런 길이 없다고 자포자기한 중산층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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