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속 '왕과나' 폐비윤씨 어찌 죽고 연산군 어찌 알았나(역사극 다이어리)

2008. 2. 1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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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의 역사극 다이어리⑬]

조선왕조실록은 세계 역사상 손꼽히는 사서다.

이처럼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의 역사가들에게 인정을 받는 이유는 그 사료의 방대함과 더불어 다른 정사서에서 찾기 힘든 객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조 일대기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왕들의 열람을 불가하게 했다. 당시 왕들의 치세를 후세가 평가하게 하고 역사가 왕과 권력층에게 이용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왕조실록이 100% 객관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정치세력이 만든 정사의 맹점인 '승자'의 역사 기술은 조선왕조실록 역시 피할 수 없는 비판 점이다.

SBS 대하사극 '왕과나'는 폐비윤씨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기존 악녀 이미지로 남아있던 폐비윤씨(구혜선 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폐비윤씨 사사사건을 어찌 그릴지 관심의 대상이다.

과연 조선왕조실록이 아닌 야사엔 폐비윤씨의 죽음이 어찌 표현됐고 연산군은 어떻게 그녀의 죽음을 알았을까.

● 피묻은 적삼-성종 얼굴 흠집 과연 있었나?

폐비윤씨와 연산군을 주인공으로 삼은 사극이나 영화 속에서 빠지지 않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바로 성종(고주원 분) 용안흠집사건과 '금삼의 피'로 불리는 피묻은 적삼이 연산군에게 건네진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대한민국 대중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사건은 정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이 아닌 야사서에 기록돼있다.

성종용안에 흠집을 낸 사건은 야사서인 기묘록에 기술돼있다.

기묘록엔 "..여러 후궁들 양가(良家)의 엄씨(嚴氏)와 정씨(鄭氏)를 투기하고 임금에게도 공손하지 못하였다. 어느 날 임금의 얼굴에 손톱 자국이 났으므로 인수대비(仁粹大妃) 소혜왕후(昭惠王后)가 크게 노하여..."라고 적혀있다.

● 사약 건넨 이세좌 부인의 한탄 "어머니가 죄없이 죽으니 아들이 훗날 보복하지 않겠느냐"

폐비윤씨의 죽음을 다룬 야사서들도 눈에 띈다. 이들 야사서는 폐비윤씨의 죽음을 정당하게 표현한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폐비윤씨의 억울함에 주목하고 있다.

기묘력에는 "윤씨는 폐위되자 밤낮으로 울어 끝내는 피눈물을 흘렸는데 궁중에서 중상함이 날로 더하였다. 임금이 내시를 보내 염탐했더니 인수대비가 그 내시를 시켜 "윤씨가 머리 빗고 낯 씻어 예쁘게 단장하고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뜻이 없다"고 대답하게 하였다"고 기록했다.

송와잡기라는 야사서엔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전한 이세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세좌가 사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약을 내려 죽였다"고 답하니 그 아내가 깜짝 놀라 "슬프다. 우리 자손이 사라지겠구나. 어머니가 죄없이 죽었으니 아들이 훗날 보복을 않겠는가"고 울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있는 피묻은 적삼 일화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와있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선 그저 연산군이 우연히 폐비윤씨의 아버지 이름을 듣고 궁금해하다 폐비윤씨 사사를 알게 됐다고 적었다. 연산군은 이날 식음을 전폐했다.

그러나 야사서엔 피묻은 적삼이 연산군(정윤석 분)에게 전해진 에피소드가 상세히 나와있다.

기묘록엔 사약을 먹은 윤씨가 피묻은 수건을 어머니에게 주면서 "(연산군이) 목숨을 보전하면 이것을 보여 나의 원통함을 말해달라"고 했다. 또 "거동하는 길 옆에 장사해 임금의 행차를 보게 해주오"라고 적었다. 이후 어머니 신씨가 나인과 통해 연산군에게 원통함을 호소하며 수건을 올렸더니 연산군이 놀라 슬퍼했다.

● 야사 속 윤씨 유언 "연산군이 목숨을 보전하면 피묻은 적삼을 보여 내 원통함을 말해달라"

야사서 파수편에도 관련된 글이 있다. "윤씨가 죽을 때 약을 토하면서 그 약물이 희 비단 적삼에 뿌려졌다. 윤씨의 어미가 그 적삼을 폐주에게 전해 드리니 폐주는 밤낮으로 적삼을 안고 울었다"고 적혀있다. 재미있게도 파수편은 폐비윤씨 사사사건을 두고 성종을 꾸짖고 있다. "성종이 집안 다스리는 도리를 잃게 되자 중전의 덕도 허물어지고 원자 또한 보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린 연산군은 폐비사사를 알지 못했을까?

재미있는 야사 기록이 있다. 아성잡기엔 연산군이 성종에게 거리에 나간 일을 고하며 "송아지 한마리가 어미소를 따라가는데 그 어미소가 소리를 하면 송아지도 소리를 내 응하니 어미와 새끼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야사는 폐비윤씨에 대해 정사와는 사뭇 다른 시각으로 담고 있다. 어찌보면 대중들이 알고 있는 폐비윤씨에 대한 잘못된 오해도 이들 야사를 무책임적으로 수용한 드라마 혹은 소설의 영향이 크다.

물론 야사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건 위험하다. 야사는 적힌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당시 시대상이나 생활상을 유추하는데 도움을 받는 사서다. 야사에 적힌 기사들을 '역사'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역사왜곡이 시작된다.

정사와 야사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가 될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법이다. 폐비윤씨와 연산군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후대사람들은 정사와 야사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폐비윤씨와 연산군 사건이 전해주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면 될 뿐이다.

김형우 cox109@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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