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칸〉[엽기인물 한국사]29.사랑은 젖을 타고..③

2008. 2. 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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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식에게 먹일 젖을 빼앗아 왕자에게 젖을 먹이며 십 수 년을 함께 한 유모! 이들이 공식적으로 빛을 보는 것은 그렇게 젖을 먹여 키운 왕자가 왕위에 오른 뒤이다. 이렇게 되면, 내수사나 관청의 노비 출신이었던 유모가 공식적인 국가문서에 그 이름을 올리며, 화려한 부활의 날개 짓을 펼치게 된다.

"인생 뭐 있어? 한방이지. 그냥 열씨미 왕자님한테 젖 물린 거 밖에 없어. 어찌나 힘차게 드시는지 내 젖꼭지가 떨어지는 줄 알았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크셔서 다행이지."

그랬다. 힘차게 젖만 빨면 소용이 없었다. 중요한 건 별 탈 없이 커야 한다는 것이다. 별 탈 없이 큰 다음,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아야 무사히 왕위를 이어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럴 확률 별로 높지 않다. 조선시대 왕위승계의 원칙이었던, 적장승계(嫡長 承繼 : 정실부인, 즉 중전이 낳은 장자가 승계)의 원칙에 따라 왕위를 이어받은 왕은 고작 6명 뿐 이었다(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27명의 왕들 중 6명이라니… 아무리 세자를 세우고, 키워봤자. 왕이 될지 안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확률로 따지면 22%밖에 되지 않는 상황. 왕자에게나 유모에게나 로또의 꿈이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그 22%의 확률을 뚫고 왕위에 오른 연산군이었다. 독자 여러분들도 알고 있듯이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소생이었다. 어머니는 폐비로 몰려 일찌감치 사약을 받아 죽었고, 연산군은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 손에 키워지게 된다. 정현왕후는 자신의 친자식인 진성대군(晉城大君 : 훗날의 중종)과 같이 연산군을 키우면서도 차별 없이 키웠다. 문제는 연산군이 느끼기에 차별 없이 컸냐는 점이다. 연산군은 이미 자신의 생모가 죽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정에 굶주린 연산군은 유모였던 최씨에게 과도하게 집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집착은 왕위에 오른 뒤 최씨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시'로 표출되게 된다.

"흠흠… 일단 왕 된 기분으로다가 봉보부인(奉保夫人 : 임금의 유모에게 내려주던 봉작으로 종1품이었다) 최씨에 대해 선물을 좀 줬으면 하는데… 다들 알지? 보통 왕 되면, 한번씩 쏴 주고 그래야지 안 그래?"

"음 뭐… 남자가 쏘는 맛이 있긴 있어야죠? 전하께서는 그럼 어느 정도로 쏘실 생각이십니까?"

"에또, 그러니까… 네들이 잘 몰라서 그런데, 최씨랑 나랑은 좀 각별한 사이거든… 거의 뭐 내 엄마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섭섭지 않게…"

"서론이 너무 깁니다. 후딱 본론으로 넘어가시죠?"

"색희가… 알았어. 거두절미하고, 봉보부인 최씨의 친척들 62명을 허량(許良 : 양인 신분이 되는 것을 허락함)하고, 방역(放役 : 신역을 면제해 주는 것)을 해 주려고."

"전하, 좀 과하게 쏘시는 것 아닙니까?"

"야, 쏠 때 한번 제대로 쏴야지. 찔끔찔끔 쏴 봐. 나중에 쏘고도 욕먹어."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은데요?"

"이색희가… 야! 뭐가 아닌데? 날 키운 사람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할 거 아냐!"

"누가 안 키웠답니까? 문제는 아무리 전하를 키웠다지만, 그 공에 비해서 너무 과하다는 거죠. 툭 까놓고 말해서, 봉보부인 최씨… 지금 받은 걸로만 해도 삼대가 떵떵거리며 살 겁니다. 여기에 뭘 더 얹어 주는 건…"

그랬다. 임금에게 젖을 먹여 키운 유모들…. 이들은 자신이 젖을 먹고 자란 왕자가 왕이 되는 순간 인생역전의 꿈을 이루게 된다. 당장 그녀들이 받는 봉작부터 보자. 봉보부인이란 봉작은 왕비의 엄마, 즉 왕에게는 장모가 되는 부부인(府夫人 : 정1품)보다 한 등급 아래이고, 외명부 품계인 정경부인(貞敬夫人: 문무관의 처로서 정, 종1품에 해당. 남편이 품계가 오르면 같이 올려 받기 때문에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나 부총리 와이프에 해당)과 같은 레벨이었다. 당시 육조판서들의 품계가 정2품이었던 걸로 보면, 봉보부인은 장관들 보다 지위가 높았던 것이다. 이런 높은 지위에 걸맞게 연봉도 보장되었는데,

"젖을 먹여도 될 성 싶은 애들한테 먹여야 한다니까… 봐봐. 연봉만 따지면, 영의정 보다 더 받는다니까. 영의정 연봉이 얼마냐? 한달에 쌀 2석 8부에 콩 1석 5두잖아? 합하면 4석 좀 더 받는데, 일년이면 50석이 안 돼. 근데, 봉보부인은 연봉만 1년에 60석이야. 여기에 식대랑 의상비 같은 품위유지비는 후궁인 빈과 귀인 레벨로 매달 지원받고, 엊그제만 해도 내수사 노비였던 여자가 인생 역전이라니까…"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었다. 방금 전까지 노비였고, 궁녀였던 유모가 종1품 봉보부인으로 영전, 여기에 더해 노비신분 해방. 덤으로 봉보부인의 남편 역시 벼슬을 받게 된다. 이뿐인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포상을 받게 된다. 왕들은 직접 부릴 수 있는 노비들도 보너스로 얹어주었기에 웬만한 양반가를 압도하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런 부와 명예는 말 그대로 기본 옵션이었다. 봉보부인이 가지는 최고 히든카드는 바로 왕과의 끈적끈적한 정(情)이었다.

"전하, 저희 집 앞으로 길을 뚫는다고 인부들이 소란을 피우는 통에…"

"진짜요? 아니 어떤 놈이 감히 봉보부인의 집 앞에서 소란을 떠는 건데? 어이 도승지! 당장 공조판서 데려와!"

왕자시절부터 닦아온 그 끈끈한 유대감과 정은 일반인이 상상하기에는 더 깊었던 것이다. 보통의 왕이 이럴진대, 모정(母情)에 굶주렸던 연산군이 봉보부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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