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왕 회장'을 불러낸 까닭은
현대건설 인수전 우위 확보, 정몽준 정치적 기반 다지기 등 추측 만발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이 과거 현대그룹의 '왕 회장'으로 불렸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TV광고에 내보내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설 연휴부터 등장한 이 TV광고는 정 명예회장의 1986년도 중앙대 특강 장면에서 시작한다. 정 명예회장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건 백사장과 설계도면 뿐이었지만 해외에 나가 당당하게 수주를 했다"면서 현대중공업 창업 비화를 밝혔다.
▲ 현대중공업이 6일부터 내보내고 있는 TV광고 캡쳐화면. | ||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부터 "해봤어?"라는 정 명예회장의 어록과 사진을 담은 인쇄용 광고도 계속 내보내고 있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와 현대건설 등을 인수해 과거 현대 그룹의 명성을 부활하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현정은 회장이 이끌고 있는 현대그룹이 대북 사업을 계승,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주창하고 있는 것과 맞서기 위한 전략이라는 이야기다.
▲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5월부터 내보내고 있는 신문 광고. | ||
또 일부에서는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인 정몽준 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정 명예회장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정 의원은 지난 11일 아버지의 아호를 딴 '아산정책연구원'을 출범시켰고 역시 아버지의 아호를 쓰고 있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이사장도 정 의원이 맡아 왔다. 최근에는 정주영기념관 건립도 추진중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10대 그룹 가운데 TV 광고 안 하는 데가 있느냐"면서 "단순한 이미지 광고일 뿐이고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몽준 의원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서도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으면 2002년부터 광고를 했지 왜 이제 와서 하겠느냐"며 관련 가능성을 일축했다.
일부 언론에 "현대자동차 그룹은 삼각형 로고를 버렸는데 우리는 계속 계승하고 있다"는 멘트가 나온 것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중공업 그룹의 특성상 중후장대한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삼각형 로고를 계속 쓰기로 결정한 것이고 다른 그룹을 깎아내리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현대중공업의 광고는 다양한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현대중공업은 연초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마시고 현대건설 인수에 사운을 걸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현대그룹과 다른 유수 건설회사들과의 치열한 신경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 등 비상장 계열사의 상장과 함께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래저래 대대적인 이미지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고 이런 모든 상황을 감안할 때 최선의 기업 이미지 모델로 정 명예회장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 과거 현대그룹 가계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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