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선의 세계 오지 기행]〈14〉 라오스 루앙프라방

2008. 2. 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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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 메콩강변에 있는 동굴사원.

루앙프라방의 새벽은 승려들의 탁발로 시작된다. 한 아낙이 새벽 거리에서 합장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낙의 곁에는 밥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황색 장삼을 걸친 승려들이 공양 그릇인 발우를 들고 거리에 나온다. 승려들이 다가오자 아낙은 갓 지은 밥을 승려들의 공양 그릇에 넣어 주고 합장을 한다. 맨 앞줄에 있던 나이든 승려가 아낙에게 짧은 법문으로 감사를 표한다. 이제 아낙은 남은 밥으로 가족들의 아침을 준비할 것이다.

승려들의 뒤를 따라가 본다. 길 군데군데에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기도 하고 방금 그 여인처럼 혼자서 공양을 바치기도 한다. 날이 밝자 승려들은 발우를 들고 사원으로 향한다. 이렇게 시주받은 밥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는다고 한다. 맨 마지막으로 사원에 들어가던 어린 승려가 계속 따라다니는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뒤를 돌아본다. 눈길이 마주치자 어린 승려는 부끄러운 듯 황망히 돌아서서 사원 안으로 총총걸음을 놓는다. 참 순박한 땅이다.

'위대한 황금 불상의 도시'라는 이름의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은 라오스 북부에 자리한 작은 도시이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메콩강을 따라 북쪽으로 430㎞ 정도 올라가면 닿을 수 있다. 라오스 최초의 통일 왕국인 란쌍(Lane Xang) 왕조의 수도로 800여년의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루앙프라방 시내 한복판에 있는 '푸시'라는 야트막한 산에 올랐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루앙프라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도시 곳곳에는 아름다운 사원들이 메콩강을 따라 보석처럼 박혀 있다. 남칸강과 메콩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왓 씨앙통(Wat Xieng Thong)사원의 벽화는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

◇루앙프라방의 사원.

라오스는 종교자유가 있지만 국민 대부분이 불교를 믿는다. 이곳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은 사원에서 승려생활을 체험한다. 그래서인지 거리 곳곳에서 어린 승려들을 마주친다. 승려들이 공부하는 학교에 들어가 보았다. 불교경전만 공부할 줄 알았는데 현대식 교실에 앉아 수학, 과학 등의 수업을 받는다. 선생님은 승려가 아닌 일반인이다. 쉬는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교정으로 우루루 몰려나온다. 한 학생이 용기를 내어 내게 서툰 영어로 물어 온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주변에 몰려 있던 어린 학생들이 까르르 웃는다. 옷은 승복을 입었지만 얼굴 가득 장난기가 묻어난다. 어린 승려들의 웃음소리가 메콩강변으로 퍼져 간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너도나도 포즈를 잡으며 카메라 앞으로 모여든다. "김치" 하면서 어린 승려들의 미소를 담는다.

루앙프라방에서 배를 타고 메콩강을 2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가자 산세들이 험해지면서 강물의 흐름도 거세진다. 강변 백사장에 옹기가 많이 쌓여 있는 마을에서 배가 멎는다. 반상하이 마을이다. 옛날 중국 사람들이 옹기를 빚던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라올라올'이라는 술을 빚으며 살고 있다.

배에서 내리자 술 익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시 한 구절이 생각나는 마을이다. 옹기마다 술이 익어가고 강변에 설치된 솥에서는 익은 탁주가 증류되어 소주로 걸러지고 있다. 마을로 들어선다. 집집마다 술밥을 찌거나 찐 술밥에 누룩을 섞어 항아리에 비벼 넣는 풍경이 어릴 적 명절을 앞둔 고향 마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솥에서 갓 쪄낸 고두밥 한 주먹을 얻어먹는다. 붉은색이 도는 찹쌀로 지은 고두밥은 차지고 고소하다. 술맛은 물맛이 좌우한다는데, 티베트의 만년설이 메콩강을 따라 흘러내려와 루앙프라방에서는 향긋한 술이 되고 있었다.

남칸강이 메콩강과 합류하기 직전 크게 한 바퀴 돌아간 곳에 반하트엥 마을이 있다. 몇몇 사람들이 대장간 일을 하던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온 마을 사람들이 망치질하는 대장간 마을로 변해 버렸다.

◇루앙프라방 시내의 거리풍경.

뚝딱뚝딱 연장 다듬는 소리가 마을 입구에서부터 들린다. 대규모 작업은 마을 공동으로 하고, 작은 건 가족끼리의 분업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풀무는 나무통으로 되어 있는데, 풀무질은 대체로 아이들 몫이다. 아낙은 풀무질에 달구어진 쇳조각을 남편에게 건네고, 망치로 두들겨 담금질하는 것은 남편 몫이다.

더운 날씨와 뜨거운 화덕으로 온 식구들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 있다. 작업이 끝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칸강 맑은 물에 몸을 식힌다. 흙탕물인 메콩강과는 달리 남칸강은 물이 깨끗하다. 이 강에서는 요즈음 말 뜯기가 한창이다. 한 모녀가 강기슭에서 작은 배를 밀고 다니며 말을 뜯어 올리고 있다. 건져 올린 말은 우리의 김부각처럼 찹쌀 풀에 말려 반찬으로 삼는다. 강변으로 이어진 채마밭에서는 물레방아처럼 생긴 커다란 수차가 돌아가며 물을 퍼올려 채소를 키우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라오스에 간다고 했을 때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했다. "거기 가면 볼 만한 게 뭐가 있느냐?"

나는 그때 마땅히 대답해 줄 말이 생각나지 않아 우물거리고 말았다. 미얀마의 파간이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같은 유적지도 없고, 중국의 구이린이나 베트남의 하롱베이 같은 절경도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감동을 받는 데는 기계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시장에서 촛불을 켠 채 장사하는 사람들, 이른 새벽 밥을 지어 승려를 기다리는 사람들. 비록 가난한 나라이지만 배고파 거리에서 헤매는 거지는 보지 못했다. 여행자를 따라다니며 손 벌리는 어린아이들도 이곳에는 없었다.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내게는 어릴 적 시간으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라오스 여행 내내 고향 친척집 아저씨처럼 친절하게 안내해 준 멧산, 라오스를 잊지 말라며 선하게 웃는 그를 뒤로하고 하노이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멀리 발 아래로 라오스의 젖줄인 메콩강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라오스는 11월에서 2월 사이 날씨가 시원해서 여행하기가 가장 좋다. 여행자 대부분은 태국의 국경도시 농카이를 거쳐 비엔티안으로 들어간 후 방비엔과 루앙프라방을 여행한다. 주변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항공노선이 많다.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은 국내선 비행기가 운항되고 메콩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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