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시디자인 탐사](21)종합편② 장소성과 도심 재창조

2008. 1. 3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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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획일적 신도심보다 독특한 구도심을 디자인하자

# 앙굴렘 신화의 배경

매년 1월 말이면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도시 앙굴렘이 생각난다. 이즈음 앙굴렘은 전 세계 만화애호가들의 순례행렬로 북적이는 국제만화페스티벌이 열리는 유명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제35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이 지난 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성황리에 열렸다. 원래 앙굴렘은 중세 성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도심부를 에워싸고 있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도시다. 이 고색창연한 도시에서 매년 익살스러운 세계만화 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앙굴렘의 매력이 있다. 이 도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세계 만화의 흐름과 출판만화 시장의 현황을 알 수 있는 각종 전시와 기획이다. 하지만 이 성공의 배경에는 완벽한 무대가 되어준 도시공간이 있다.

예컨대 매년 다음해 조직위원장을 추대하는 '앙굴렘 대상' 수상식은 성채의 중심인 시청사 발코니에서 이뤄진다. 여기서 시청 발코니는 지켜보는 시민들과 세계 만화순례자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행사에 불어넣는 매우 중요한 상징적 장소의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주요 행사장들은 새 건물들이 아니라 옛 건물들을 재활용하고 있다. 특히 주로 국제만화의 동향을 소개하는 전시장 '시립극장'은 바로크식의 고풍스러운 석조건물로 외관은 그대로 보존하고 내부만 현대식으로 개조했다. 또한 매년 개별 작가들의 특별전이 열리는 '국립만화이미지센터'(CNBDI)는 옛 맥주공장을 개조한 것이다. 현대식 유리와 철재가 옛 공장의 석조구조와 매우 멋진 조화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거리의 낡은 건물 벽면에는 만화벽화들이 활기를 불어넣으며 웃음과 행복의 미학을 제공한다. 오늘날 앙굴렘이 프랑스의 5대 국제 문화행사지 중 하나이자 세계 최대 만화축제 도시로 자리매김한 것은 국제만화페스티벌이라는 프로그램과 더불어 시간의 켜가 중첩된 오래된 건물, 거리, 간판 등이 함께 빚어낸 독특한 장소의 아우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 도시미학으로서 장소성

이처럼 앙굴렘은 한 도시가 펼치는 새로움이 기존 도시경관과 맞물려 하나가 될 때 독창적인 새로움을 창출함을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독특한 도시미학으로서 '장소성의 힘'이다. 한 도시의 장소성은 타고난 지형과 그 위에 뿌리내린 역사문화의 켜가 독특한 당대 문화의 특색과 어우러져 형성된다. 따라서 세계의 매력적인 도시들은 그 도시만이 지닌 독특한 장소성에 기초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6대 광역시들에 대한 아쉬움이 생긴다. 우리의 광역시들에도 도시의 타고난 지형과 역사문화가 분명 존재했지만 여러 이유로 그 맥이 끊기고,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문화적 특색을 잃어 버렸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시역 확대로 도심기능이 외곽으로 확산되면서 그나마 구도심에 이어져왔던 장소의 특색마저 지워졌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 광역시들은 나름의 필요와 지역발전을 위해 신도시 건설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간직한 구도심을 갱신시켜 도시정체성을 형성하는 지혜를 모아야할 시점에 와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지자체들이 원도심에 관심을 갖고 이른바 '도심 재창조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종합2편에서는 각 도시마다 펼치고 있는 도심 재창조 계획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 부산, 인천, 대구의 노력

부산의 경우, 도심 재창조의 주 대상은 중구와 동구 일대다. 이곳은 근대역사에서 부산의 중심지로서 주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곳에 지속적인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도심활력 저하, 도시공간구조 왜곡, 건축물의 노후화 등 다양한 도시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나아가 도시 전체의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부산시는 '부산·부전 역세권 개발'을 비롯해 부산 시민공원 조성, 용두산공원 재정비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온천천과 동천과 같은 도시하천 환경개선사업으로 구도심 활성화를 꽤하고 있다.

한편 인천 시가지는 신도심이 건설된 다른 광역시들처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오래된 주거지역과 계획적으로 형성된 신시가지로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은 최근 인천경제자유특구 건설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인천시는 낙후된 구시가지를 주거지의 유형별로 설정하고 양호한 주거환경을 형성하고자 한다. 특히 중구 일대 내항 주변의 구도심 지역을 근대역사문화지구로 구분해 관광 여가 기능을 살려 침체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려 하고 있다. 대표적 예가 월미관광특구의 핵심전략인 소위 '박물관 도시화' 사업이다. 이는 구도심 지역에 풍부한 근대건축물을 활용해 전시 및 박물관을 확충하고 개항장 관련 역사문화를 자원화하는 것을 뜻한다. 세부적으론 '각국 공원 창조적 복원사업', '월미도 친수공간 확충사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에 인천시는 이와 연계해 차이나타운을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해 구도심을 한·중교류와 관광의 구심점으로 조성하고 있다.

대구는 중구 지역을 중심으로 기존 도심의 '시가지 리모델링'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신도심 건설로 시역을 확장시킨 다른 광역시와 달리 대구는 1도심 체제로 도시 기능을 외곽으로 확장시켜왔다. 따라서 대구는 기존의 도심지역에 행정, 업무, 유통, 교통, 정보의 중추관리 기능을 재구축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4가지 중점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첫째는 도심 내 쇼핑·녹지축의 설정이다. 이는 국채보상기념공원에서 경상감영공원과 수창공원을 잇는 도심 내 녹지·보행축을 조성하고, 중앙로를 따라 대구역에서 반월당 지하상가를 연결하는 쇼핑몰 조성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동성로, 남성로, 서성로, 북성로를 잇는 환상형 특화거리를 조성한다고 한다. 둘째는 도심 내 역사성을 지닌 근대건축물과 문화공간을 발굴 및 보전해 역사문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가로의 물리적 환경 개선을 통한 장소성의 확보다. 셋째는 대구약령시와 패션 및 보석 특구와 같은 전문상업의 특성화를 통해 도심 내 특화발전특구의 조성이다. 넷째는 도심 내 재래시장의 현대화 및 도심환경 정비를 골자로 하고 있다.

# 대전, 광주, 울산의 경우

대전시도 구도심 침체현상 해소와 경제 활성화에 역점을 둔 '원도심 활성화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그동안 대전시는 둔산지구 개발에 따른 공공기관 이전과 더불어 대규모 아파트 건립으로 인구와 각종 상권이 구도심권에서 빠져나갔다. 앞으로 충남도청까지 이전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될 전망에 있다. 따라서 대전시는 도심공동화를 막기 위해 중앙로-대전천변 일대와 대전역 역세권에 대한 도시경관의 전면적 정비 및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동구 중앙시장, 중구 으능정이 거리,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를 중심으로 한 테마거리 조성계획이 눈길을 끈다. 이는 대전천변의 목척교 살리기와 친수공간 재정비와 연계해 그동안 침체되었던 구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광주시의 구도심 활성화는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과 맞물려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설 구 전남도청 일대가 대상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도청 이전에 따른 도심공동화를 해소하기 위해 이른바 '금남로 프로젝트'와 기존 학생회관을 '청소년 복합문화센터'로 조성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금남로 프로젝트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금남로, 충장로, 예술의 거리 등 주변 가로환경을 개선해 대표적인 거리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금남로에 가로공원을 조성하고, 교육문화와 음식·쇼핑 등 테마가 있는 보행로를 조성하고, 충장로, 예술의 거리, 황금동, 서석로, 동구청 로터리를 '5대 특화거리'로 조성하는 것이다. 특화거리로 조성되는 충장로의 경우, 옥외광고물 정비와 가로포장 정비 등을 통해 광주의 정체성이 담긴 특색이 있고 아름다운 거리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예술의 거리는 창작, 전시, 공연예술의 활동공간과 문화기반시설을 확충해 특화지구로 확대하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울산시 역시 중구 일대에 구도심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정동, 북정동, 교동, 복산동 일대를 쾌적한 주거지로 재개발하고, 공공시설이 열악한 지구에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앞서 울산편에서 논의했던 이 지역의 역사문화적 장소성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되어야할 것이다. 성남동 일대의 경우, 울산시의 발전축인 태화강과 연관해 구도심 활성화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예컨대 태화강의 둔치시설과 기능을 다양화하고 이를 성남동 일대와 연결해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이른바 '태화강 마스터플랜'이 추진되고 있다. 이와 함께 상권 활성화를 위해 성남동 일대의 거리에 아케이드를 설치해 쇼핑공간을 조성하고, '차 없는 거리' 구간을 계속 늘려갈 예정이다. 이는 날씨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쇼핑환경뿐만 아니라 쾌적한 보행자 거리 조성으로 그동안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잠식당했던 재래시장의 활력을 부활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다.

# 특색과 표백사이

이상과 같은 노력들이 정책적으로 일관되게 지속된다면 각 지자체마다 구도심 활성화를 통해 도시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한데 문제는 이러한 노력이 각기 독특하고, 새롭고, 다양한 성격을 지닌 도시디자인과 맞물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살펴보았듯이, 6대 광역시들의 도시 형성 역사는 저마다 다른 유래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에 맞춰 도시디자인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각 지자체마다 도시디자인과 공공디자인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 즉, 획일적인 도시디자인 발상과 수법으로 오히려 그나마 남겨진 장소성마저 표백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쾌적한 보행자거리 조성'을 목적으로 각 지자체 구도심에 들어선 소위 '문화의 거리'를 보자. 부산 광복동과 서면 거리, 대구 동성로, 대전의 으능정이 거리, 인천 신포동 거리 등에서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이는 일차적으로 이동통신과 의류패션 상점, 유흥주점이 들어선 획일적인 거리풍경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저 그런 건물들과 특색 없는 옥외광고물, 가로시설물 등의 공공디자인도 한 몫을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광역 지자체마다 자신의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건물, 도로와 인도, 옥외광고물, 시설물, 야간조명에 이르기까지 도시경관의 각기 다른 표정으로 기억되는 장소성의 창출을 기대해 본다. 비록 도시 규모와 성격은 다르지만 앙굴렘처럼 타고난 지형과 역사문화의 켜를 배경으로 문화적 특색을 갖춘 장소성이 각 도시의 신화로 탄생될 날을 꿈꾸며….

〈 글 김민수/서울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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