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부정선거' 주민 40명 자수 "말 못하고 잠 못자고 속앓이만.."

2008. 1. 2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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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심 좋고 살기 좋은 청도가 부정선거의 온상으로 전국에 알려지는 바람에 이제 어디 가서 청도 산다는 얘기도 못 하겠다."(금천면의 60대 주민)

"말도 못 하고 밤잠도 못 자고 속앓이만 했다. 아는 사람이 주기에 얼결에 받았는데 다시는 안 받겠다."(운문면의 50대 주민)

28일 오후 1시 청도는 간간이 눈발이 흩날리는 찌푸린 날씨였다. 돈 선거에 연루돼 이날 경북 청도경찰서에 자수하러 오는 주민들의 표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45인승 대형버스를 타고 온 주민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곧바로 3층 조사실로 향했다. 이날 자수한 주민은 금천면 23명, 운문면 15명, 청도읍 2명 등 모두 40명이다. 이들은 지난달 19일 경북 청도군수 재선거 때 정한태(구속) 군수 선거운동원들에게 돈을 받았거나 유권자들한테 돈을 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실 앞에서 만난 김아무개(62·운문면)씨는 "돈 받았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그동안 고민만 했다.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주니 (안 받으면) 다른 후보 민다고 할까봐 안 받기도 어려웠다"며 한숨을 쉬었다. 금천면에서 왔다는 60대 남자는 "생전에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시는 절대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오던 박아무개(58·금천면)씨는 "선거 때 동책을 맡아 유권자 한 사람당 5만원씩 돌렸는데 수사가 시작되고 나서는 잠도 제대로 잔 적이 없다. 이렇게 사느니 자수해 죄를 털고 발이나 뻗고 사는 게 낫겠다 싶어 자수하러 왔다"고 말했다.

자수한 주민들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이날 오후 4~5시께 삼삼오오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자수 행렬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김수희 경북경찰청 수사과장은 "오늘 오전에도 청도 이서지역 주민 5∼6명이 자수 의사를 밝혀왔고, 하루에 자수에 대한 문의전화가 15~20통씩 오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자수하면 단순히 돈을 받은 사람은 형을 깎아주고, 돈을 전달한 이들은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선처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근 화양읍의 한 부동산에서 만난 박아무개(53)씨는 "주민들 사이에 돈선거가 된 게 모두 우리 책임이다. 돈 받아 먹고 많이 주는 사람을 찍으니 이런 험한 일이 생겼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같이 있던 강아무개(52)씨도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제 청도에서 돈 선거만큼은 확실히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지난달 청도군수 재선거는 무소속 후보 세 명이 백중세를 보이면서 '돈선거 바람'이 불었다. 20억원은 써야 당선된다는 얘기가 돌았을 정도다.

유권자 3만9천여명인 청도는 전형적인 농촌으로 고령자들이 많고 지연, 학연, 혈연으로 얽혀 있다. 바로 이것이 돈선거를 부추긴 '주범'이다.

경찰의 조사 결과, 정 군수 쪽에선 돈을 뿌릴 대상자 명단(5700여명)을 작성해 놓고 돈을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청도군수 부정선거 여파로 이날까지 정 군수를 비롯해 22명이 구속됐고, 66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주민 2명은 목숨을 끊기도 했다.

청도/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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