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천 화재 이후의 성남 인력시장

2008. 1. 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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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근로자에게 안전교육은 '먼 얘기'

(성남=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무려 40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는 작업장 안전수칙과 작업 책임자 및 인부들의 안전의식 부재 등이 빚은 '전형적인 인재'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화재사고로 희생된 사망자들 중 일용직 근로자의 상당수가 인력시장을 통해 공사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이천 화재사고 이후 인력시장의 분위기와 일용직 근로자들의 안전의식을 살펴봤다.

"일거리가 없어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안전교육이 뭐 대수에요. 사고나면 그때 문제되는거죠"

11일 오전 4시20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1동 모란시장 인근 수도권 최대의 건설일용직 인력시장이 열리는 태평사거리 일대 한 상가 앞은 조금씩 술렁였다.

예년 겨울에 비해 포근한 날씨였지만 어둠이 채 가시지 않고 손발과 코 끝이 아릴 만큼 찬바람이 몰아친 이 시각 인력시장에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작업반장(십장.오야지)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7일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로 희생된 사망자들의 상당수가 인력시장에서 투입된 일용직 근로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말을 건네 보지만 "이 일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안전교육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손사래를 쳤다.

이곳 인력시장은 철근 일용직 근로자들이 주로 모이는 곳으로 진주, 마산, 원주, 춘천 등 전국 건설현장으로 일을 찾아 간다고 했다.

"안전교육이요? 제대로 하려면 매일 1시간씩 받아야하는데 대기업 (건설)현장에서조차 안하는 게 태반이에요"

30여년간 현장에서 철근 일로 잔뼈가 굵었다는 송모(53.서울) 씨는 "현장에 가면 첫날 한차례 안전교육을 받지만 그 다음날부턴 안해요. 회사에선 하라고 하지만 '시간이 돈'이라 작업시간이 줄어드는데 오야지가 그걸 받으라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오전 5시가 가까워지자 태평사거리 앞 이곳 인력시장은 `일용직 건설 근로자 세상'으로 탈바꿈했다.

근처에는 6~7명이 무리를 지어 자판기 커피로 얼어 붙은 몸을 녹이며 일감을 찾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면서 곳곳에서는 "헛탕치네. 벌써 며칠째야"라는 한탄과 푸념이 잇따랐다.

일거리를 못 찾은 이들은 작업복과 장비를 담아온 배낭과 가방을 깔고 앉아 담배 한대를 꺼내 물며 내일 일을 걱정하거나, 아예 아침 밥이라도 먹어야겠다며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이곳에 나온 사람은 140여명으로, 한창 일이 많을 때 하루 300-400명씩 모이는 것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했다.

전날 밤 강원도 원주에서 일하기로 작업반장과 얘기가 됐다는 30~40대 일용직 7∼8명은 "오늘은 '운좋은' 날"이라며 "요즘 이 곳에 나와도 30% 정도는 허탕을 친다"고 했다.

허탕을 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한데 모여 안주없는 강소주를 주고받았다.

97년말 IMF 사태로 실직해 17년째 건설 근로자로 일해온 이모(47) 씨는 "예전에는 봉고차가 여러 대 와서 한꺼번에 수십명씩 싣고 가곤 했는데 요즘은 일거리를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이날 이곳 인력시장에는 봉고차(12인승) 4~5대만 눈에 띄었고 오전 5시10분이 되기 전 근로자들을 가득 실은 봉고차는 안양, 원주 등 전국 건설현장으로 향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50대 건설 근로자는 "눈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지금보다 일이 더 줄면 아침부터 인근 역사나 지하상가로 허탕친 사람들이 몰려들어 왁자지껄해진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성남시 노사협력팀 관계자는 "1월은 일이 적어 요즘 하루 120-150여명만 이곳으로 나온다"며 "이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건설현장에 많이 늘어 일감을 찾기 더 어렵다며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주에 2일 밖에 일을 못했다는 박모(52) 씨는 "30년 넘게 (건설) 일을 했지만 목수의 경우 중국동포없으면 일이 안될 정도"라며 "우리 일감은 점점 줄어드는데 임금은 10년 전이나 차이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gaonnu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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