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봉클럽에 '짬뽕추가'는 없지롱

2007. 12. 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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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국집에 심취한 만화광 소년이 만화전문지에 중국집 만화를 그리기까지

모든 것은 중국집에서 시작됐다. 서울시교육청 바른어린이상을 타기도 했던 착한 어린이는 미식가에 유난히 중국 음식을 좋아하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네 중국집에서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 중국인 거리의 오래된 중국집까지 섭렵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우주선 굴짬뽕3호'를 타는 팬더댄스

지독한 만화광이었던 소년은 공대를 중퇴하고 뉴욕으로 날아가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수업이 끝나면 뉴욕의 중국집을 찾아다니며 한국식 중국 음식과 미국식 중국 음식의 오묘하면서도 엄청난 차이를 깨닫게 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웹디자인, 일러스트, 동화책 삽화, 간판, 음반 디자인 등 모든 종류의 시각물 디자인을 섭렵하면서 취미 삼아, 돈 좀 벌어볼까 싶어서 캐릭터를 개발했다. 깜찍한 몸매에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귀여운 춤을 추는 '팬더 댄스'였다. 팬더(판다) 댄스는 우주선 굴짬뽕3호를 타고 태양-지구-달-찐계란-소라빵으로 구성된 태양계를 여행하면서 '잘무른/고기에/아삭한/샹차오/(…)/난몰라/난몰라/(…)/벌써다/먹었네'노래를 불렀다.(<반가워요, 팬더 댄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제안을 받았다. 중국 음식에 대한 만화를 그려보지 않겠냐고. 1년에 서너 번씩 중국과 대만, 홍콩, 일본을 여행하며 '왜 3박 4일 동안 열 끼밖에 먹을 수 없을까'를 안타까워하며 맛집을 찾아다닌 열정과 중국 음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의 창작적 재능이 불꽃을 튀며 만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맛난 음식을 찾아 먹으며 음식값을 취재비로 영수증 처리할 수 있다는 그 기쁨이란! 그렇게 해서 '전체적으로 보자면 초밥왕 쇼타 같은 느낌이지만 화풍이 계속 변해서 뭐가 진짜 얼굴인지 모르겠'는 소년과 엄청난 미모와 엄청난 재력을 지닌 소녀가 함께 맛있는 중국 음식을 찾아다니는 <차이니즈 봉봉클럽>이 시작된 것이다.

11월 초부터 만화 격주간지 <팝툰>에 실리는 <차이니즈 봉봉 클럽>은 다양한 장르의 디자이너이자 화가이며 시인인 조경규(33)의 첫 연재만화다. 디자이너가 그리는 만화라면 컴퓨터로 작업한 차갑고 간결한 그림이 떠오르지만 이 작품은 100% 손으로 그려 그 옛날 <소년중앙>이나 <보물섬>을 떠올리게 하는 정감 있는 명랑 만화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엄청 봤어요. 유학가기 전까지 미술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 기본기라면 만화를 그리면서 훈련한 거죠." 만화와 함께 음식은 어릴 때부터 그의 가장 큰 관심사이니 이번 연재는 그가 늘 꿈꾸는 대로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이 하나"가 된 행복한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사명감이라면 거창하지만 그가 중국 음식 만화를 그리게 된 데는 중국 음식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보자는 생각도 컸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음식하면 짜장면, 짬뽕, 그리고 배달 음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잖아요. 그냥 편하게 빨리 먹는 음식 정도죠. 하지만 중국 음식만큼 다양하고 맛도 깊은 음식이 없다고 생각해요. 보통 생각하는 중국집의 개념을 넓혀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어보자는 거죠" 개성 있고 실력 있는 중국집을 골라 음식에 대한 만화를 에피소드식으로 그리는 이 만화에서 그는 자장면·짬뽕을 주메뉴로 하는 식당은 제외한다는 생각이다. "인테리어가 너무 화려하거나 자릿값이 비싸서 음식값에 인테리어 비용, 자릿세까지 포함된" 식당들도 사절이다.

가만 보면 <차이니즈 봉봉 클럽>의 쇼타를 닮은 소년도, 팬더 댄스도 조경규를 꽤나 닮았다. 둥그런 얼굴도 그렇고 음식에 집착하는 것도 그렇다. "외국에 가면 동물원에 팬더 구경을 자주 갔는데 부럽더라구요. 뒹굴뒹굴하면서 하루 중 반은 자고 반은 먹고, 특별히 다른 동물들과 싸울 의지도 공격 방법도 없고, 누구나 팬더처럼 놀고 먹는 꿈을 꾸지 않나요?" 어릴 때부터 경쟁이니, 순위니 하는 말을 싫어해 좋아하는 중국 음식도 순위를 매길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게으르고 먹는 것 밝히는 팬더 댄스는 "어차피 열심히 살아도 세상이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맛있는 끼니를 챙겨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조경규의 페르소나라고 할 만하다.

전세계 맛집 순례를 원대한 프로젝트로

집 밖에 폼나는 작업실을 마련하는 대신 안방과 거실, 작은 방에 책상을 하나씩 두고 한 살, 세 살 난 아이들과 뒹굴뒹굴하면서 놀다가 작업하다가를 반복하는 그의 꿈은 3층짜리 집을 지어 한 층은 작업실로, 한 층은 집으로, 또 한 층은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과 사우나로 쓰는 것. 서울 일대를 배경으로 하는 <차이니즈 봉봉 클럽>이 성공해 후속편으로 전세계의 맛있는 식당을 순례해 만화로 그려내는 것도 그의 원대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팬더 댄스 (panda-dance.com)에 가면 여유작작한 팬더의 춤을, '블루닌자벤딩머쉰프로젝트'(blueninja.biz)에 가면 '화풍이 계속 변해서 뭐가 진짜 조경규 작품인지 모르겠'을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조경규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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