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기' 동아시아 패자 자처했던 광개토태왕 VS 아신왕

2007. 11. 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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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조은영 기자]

MBC 판타지 서사극 '태왕사신기'(이하 태사기)는 기획단계에서 캐스팅 난항, 내부 이견 등에 밀려 중국 요서 지방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며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동북아시아의 패자를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백제 아신왕 카드를 버려야 했다.

때문에 극의 2/3 분량을 넘어서기까지 광개토태왕 담덕(배용준)과 연호개(윤태영)를 중심으로 한 고구려 내부 갈등에 치중하며 광개토태왕 제위 원년부터 시작된 눈부신 영토 확장 과정이 후반 5-6회 분량에 집중되게 됐다. 특히 광개토태왕의 백제 관미성 정복과 거란 원정 이후의 방대한 영토 확장 과정은 중국 후연과의 일전만을 남겨둔 채 이번주 22회,23회 방송분에서 초스피드로 압축돼 그려졌다.

백제 아신왕 역시 29일 23회 방송분에서 고구려군에 대패한 후 광개토태왕을 찾아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백제란 국명만은 보전해 줄 것을 부탁하는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실제 역사기록을 보면 광개토태왕과 아신왕은 한반도를 넘어 중국대륙과 왜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동북아시아의 패자를 자처하며 치열한 다툼을 벌였던 라이벌관계에 있었다.

아신왕과 광개토왕은 둘 다 391년에 정권을 장악하고 392년에 왕위에 올랐는데 당시 광개토태왕은 18세, 아신왕은 20대 중반의 나이로 모두 혈기 왕성한 때였다. 이들은 젊은 혈기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패자를 자처했고, 그것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선제공격을 가한 쪽은 광개토태왕이었는데 백제가 왕위 계승문제로 내분을 겪는 사이 백제의 북쪽 요충지인 '관미성'과 주변 10개 성을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그 무렵 아신왕은 숙부 진사왕을 내쫓고 백제왕에 올랐고 그 뒤 광개토태왕에세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숱한 전쟁을 치른다.

아신왕이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역시 관미성 수복전쟁이었는데 고구려군이 성을 둘러싸고 굳게 방비하는 바람에 군량의 수송로를 확보하지 못해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야 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영토회복 기회를 엿보던 아신왕은 395년 국운을 걸고 벌인 패수 싸움에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선다. 패수는 고구려 평양의 목줄로 백제의 예사롭지 않았던 공격에 간담이 서늘해진 광개토태왕은 직할부대를 직접 거느리고 대항했을 정도다.

공격 초기엔 백제군이 승기를 잡았으나 이후 광개토태왕이 이끄는 정예병 7천에게 패한 백제 대군이 몰살당했다. 거기에 포로,부상자까지 합친다면 백제의 피해는 대단한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아신왕은 그야말로 복수의 화신이 되어 이를 갈며 전쟁만을 준비했다.

아신왕은 397년 6월, 백제의 영향권 아래 있던 홰국에 태자를 보내 군사를 요청했고 신라 세력 확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가야까지 끌여들여 삼국 연맹을 형성했으며 중국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에게 패하긴 했으나 백제는 지금도 당당한 대국이라는 것을 알렸다.

399년 8월 다시 고구려를 치기 위해 군사와 말을 대대적으로 징발한 아신왕은 미친듯이 전쟁준비에만 매달렸고 급기야 백성들이 신라로 도망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신라는 본래 고구려와 백제가 전쟁을 치를 때 고구려를 지원했기에 백제측의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백성들이 신라로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자 감정이 격해진 아신왕은 신라를 공략하기로 마음먹는다.

29일 방영분 말미에도 비슷한 내용이 방영됐던 것처럼 백제는 왜, 가야와 함께 한 삼국연합군을 끌고 신라를 휩쓸며 전역을 장악했다. 그러나 아신왕이 쾌재를 부르기도 전 광개토태왕이 단숨에 5만의 고구려 대군을 밀고 내려왔다.

고구려군이 밀려오자 뿔뿔이 흩어진 신라 잔병들이 하나 둘 모여 합세하였고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됐다. 고구려군에 밀린 왜군은 해안으로 밀려났고 가야군은 종발성을 빼앗기는 손실을 입었다. 백제 정예군 3만이 질세라 공격을 퍼부었지만 고구려군의 위세를 이기지 못했다.

결국 백제 아신왕은 신라 병합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광개토태왕에게 패해 또 다시 퇴각해야 했다. 그후 패전의 분을 삭이지 못한 아신왕은 광개토태왕을 두고 "얼마나 강한 왕이기에 싸울대 마다 패한단 말인가" 라는 탄식을 남긴 채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조은영 helloey@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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