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놀라운 선구안 '역사드라마'

2007. 11. 25. 08: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

사극 열풍이 드디어 케이블 TV로까지 확산됐다.

17일 첫 방송된 채널CGV의 미스터리 사극 '정조암살미스터리-8일'은 첫 회부터 3%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뒤이은 OCN의 신개념 성·의학 사극 '메디컬 기방 영화관'도 20일 첫 방영시 이에 근사한 시청률을 보였다. 지난해 MBC에서 무관심 속에 조기종영 됐던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역시 MBC드라마넷에서 부활, 케이블 시청률 '마의 벽'이라는 4%대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

물론 전반적 사극 열풍을 주도하는 4편의 공중파 사극-'왕과 나', '이산', '대조영', '태왕사신기'-도 순항 중이다. 모두 20~30%대의 안정적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시청률 순위 10위 내에 일제히 포진돼 있다. 한 장르가 이토록 TV를 독점한 때는 일찍이 없었다.

이처럼 대세를 이루는 사극 열풍 원인은 그간 다각도로 분석돼 왔다. 그 중 가장 널리 인식된 것이 대선정국과의 연관성이다. 대다수 미디어가 이 분석을 통해 사극 열풍을 이해하고, 보도했다. 대표적 예로 '주간한국'의 기사 <[방송·연예가 핫라인] 찬바람 불면 '사극 열풍'>이 있다.

기사는 "가을과 겨울에 사극이 호응을 얻는다는 계절적인 요인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적인 관심이 정치에 모아지는 점이 사극 열풍을 불러오는 것"이라 분석하고, "과거를 돌아보면 대선이 열리는 해엔 유난히 사극이 인기를 모았다" 주장하고 있다. "1997년 KBS 1TV '용의 눈물', 2002년 KBS 1TV '태조 왕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얼핏 그럴싸해 보인다. 간편한 발상이고, 직접대입이 용이해 이해하기도 수월하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사실 근거자료 제시부터가 틀렸다. 2002년은 어떤 의미에서건 사극 열풍의 해가 아니었다. 위 기사가 제시한 '태조 왕건'은 2000년 4월부터 2002년 2월까지 방영된 드라마다. '태조 왕건'에 이어 KBS가 3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방영한 고려사 드라마 '제국의 아침'은 시청률 확보에 참패했다.

2002년은 오히려 트렌디 드라마의 전성기였다. '로망스', '유리구두', '명랑소녀 성공기' 등이 안방 시청자층을 차례로 공략했고, 사극이 유리하다는 겨울 시즌에는 한류 빅뱅을 일으킨 '겨울연가'가 도착했다.

1997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용의 눈물'이 히트한 것은 맞지만, 1997년의 진정한 승자는 시청률 65.8%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트렌디 드라마 '첫사랑'이었다. 중국 한류의 시발점이 된 '별은 내 가슴에'가 방영된 해이기도 하며, '파랑새는 있다', '의가형제'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땐 역시 트렌디 대세였다.

과거 예를 드는 것이 오류일 뿐이며, 2007년 대선은 뭔가 남다르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2007년은 '대선정국 연관설'을 성립시키는 데 있어 오히려 문제가 더 크다. 불과 10월 초까지만 해도 국민의 대선관심도는 40% 이하로 추락한 상태였다. 대선 투표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리라는 예상도 등장했다. 사실상 대통령 직선제가 시작된 이래 가장 인기 없는 대선이었던 셈이다.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높았던 1997년, 2002년에도 딱히 연관을 말할 수 없는 마당에, 2007년의 '대선정국 등에 업은 사극 열풍' 주장은 끼워맞추기식 논리로도 부적절한 상황이다. 그저 대중문화 현상을 어떻게든 정치·사회 이슈와 연결 지으려는 습관적 거대담론화 시도로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과연 2007년의 사극 열풍은 그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를 위해선, 먼저 현상을 새롭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2007년의 사극 열풍' 자체가 잘못된 명제다. 사극은 꾸준히 고정적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초대박'을 여러 번 탄생시켜 왔다. 근래 들어서도 '해신', '대장금', '다모', '불멸의 이순신', '주몽', '황진이' 등이 계속 이어져왔다.

그럼에도 난데없이 사극이 '열풍'으로 비화되는 까닭은, 사극 인기가 남달리 높아져서가 아니다. 사극이 유일하게 예전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청률의 중심을 잡고 있던 트렌디 드라마가 약세에 약세를 거듭, 이제는 20%만 넘어도 대박 소리를 들을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틈새시장을 차지하던 시트콤 인기도 이제 시들하다.

결국 '2007년 사극 열풍' 핵심은 사극의 안정적 시청률에 고무된 방송사가 그라도 붙잡으려고 일제히 사극을 제작, 단번에 많은 사극이 등장한 상황에 불과하다. 수적으로 늘어나니 눈에 띌 뿐이라는 이야기다. 사극 인기가 딱히 올라가지 않았다는 방증으로, 현재 방영 중인 사극들 중 지난해 방영된 '주몽' 시청률 52.7%에 근접하는 것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고정된 시장을 4편의 사극이 나눠 갖고 있어 집중도가 떨어지는 탓이다.

애초 이 '열풍 아닌 열풍'을 일으킨 타 장르 시청률 저하와 사극의 시청률 유지도 원인은 단순하다. 시청률 집계의 문제 탓이다. 현재 젊은 시청자 층은 공중파 시청률 집계에서 상당부분 빠져나가 있다. 온라인 다시보기나 DMB폰 등으로 공중파 콘텐츠를 소화한다. 현 시청률 집계는 오직 '제 시간'에 '안방'에서 'TV'를 켜고 있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젊은층 선호 프로그램 시청률이 떨어지고,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프로그램 시청률이 유지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정작 현상적 인기를 누린 '하얀 거탑', '고맙습니다', '커피프린스1호점' 등의 시청률이 생각보다 적게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내년 상반기부터 시작되는 'VOD 클릭수 조사'전까지 이런 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거창한 공중파 사극 열풍이 아니라, 그 틈바구니에서 '대세에 편승했다'고 보여진 케이블 사극의 작은 성과다. 케이블 사극의 인기는 시청자 집계의 문제점 탓에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어차피 케이블 드라마 시청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포진돼 있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잔뜩 쪼개진 사극 시장 틈바구니에서 케이블이라는 마이너리티 요소를 안고 얻어낸 성과다. 따라서 케이블 사극의 성공요인이야말로 그대로 미래시장 방향성 제시로 받아들여봄직하다.

보이는 것과 달리, 케이블 사극은 사극 열풍 편승의 정반대편, 즉 사극 열풍으로 규정돼버려 주목받고 있는 현상을 이용한 측면이 강하다. '사극 열풍 가세'라는 타이틀로 미디어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진짜 의도는 사극의 익숙한 형식을 바탕에 깐 상태에서 안전하게 장르 드라마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 시장 위협요소로 떠오른 '미드'의 주된 요인을 사극에 접목시켜 시장 탈환을 노린다는 것이다. 유지되는 안정 시장은 공중파에 넘겨주는 대신, 케이블은 빼앗겼던 시장을 되찾아 온다는 발상이다. 이것이 먹혀 들어갔다 봐야 한다. 방점은 '장르' 또는 '미드'에 찍혀있지, '사극'에 찍혀 있지 않다.

대중문화 시장은 결코 퇴보하는 일이 없다. 복고열풍조차도 기본적으로는 상향적 변화의 추구 속에서 벌어진다. 정치사회적 환경 변화가 일어났다 해서 이것이 대중문화 산업에 영향을 끼쳐 오랜 장르 인기를 확장시킨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대중문화 시장에의 이해부족을 의미한다.

이런 개념을 드라마 장르로 귀속시켜 생각해보자면, 현재 시장이 한국 드라마 시장에 요구하는 것은 끊임없이 드라마 장르 다양화다. 여기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시청률 집계가 어찌됐건 시대상황이 어찌됐건 간에, 이에 준하는 발상으로 나아가는 쪽이 미래시장 선점의 이득을 얻게 된다.

변화의 큰 맥락은 언제나 하나다.

<관련사진 있음>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