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11) 독일 작센 알할트주(州)의 뮐베크

2007. 11. 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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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교차로에 멈춰 선 순례자

손에 손에 우산을 받쳐든 사람들이 한 건물 현관 앞에 모여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마침내 10주년을 맞은 책마을 행사를 찾은 사람들이다. 낡은 교회 주변의 집들은 이리저리 작은 정원으로 이어진다. 교회의 앞뜰에 조성된 공동묘지는 칙칙한 오후를 촛불시위대처럼 밝히는 보랏빛 붓꽃과 노랗고 붉은 화초로 짙게 타오르고 있다. 그 낮은 담장 곁에는 커다란 버드나무가지가 비바람에 우수수 빗방울을 뿌리쳤다. 즐거운 축제의 날치고는 다소 무거운 정경이다.

마을회관에서는 10주년을 회고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서점 '모든 책'의 주인 하이디 데네 부인이 당당한 제스처로 마을의 역사를 회고하는 일장연설을 펼쳤다. 옆 건물에서 라디오 방송의 생중계를 막 마치고 달려온 그녀는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냈다. 특별히 기념우표와 스탬프가 찍힌 엽서도 제작했고, 작가초청 낭독회와 음악회도 준비했다. 교회에서 열리는 기념연주를 위해 막데부르크 필하모니도 초청했다. 재개발이 한창인 인근의 대학도시 할레는 헨델의 고향이기도 해서 그의 음악도 빼놓지 않았다. 내방객들의 식사를 해결하도록 배려하는 뷔페의 준비까지 부인은 10주년의 감흥을 세심함으로 다독였다. 푹 삶은 양배추에서 우러나는 향긋한 백포도주 냄새와 오향족발보다 더 고슬고슬한 돼지수육이 유혹하는 이 마을의 촉촉한 저녁을 일정에 쫓기는 이 가엾은 사람은 즐길 여유는 없었다. 데네 부인은 자신의 책방 뒤로 넓은 정원에 맞닿은 건물 한 채('오아시스'라고 부르는 사랑방)와 책방 맞은편에 카페를 마련하는 등 10년을 하루 같이 달려왔다고 했다.

10주년을 기념하는 사흘간의 일정에서 백미는 마지막 날 저녁의 지역 문학의 밤이다. 이 자리에는 이 지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과의 대화와 '오토렌레중' 즉 저자낭송회가 마련되었다. 이 작가들은 과거 바로 이곳 동독 지역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이제는 거의 60줄을 넘나들지만 여전히 끈끈한 연대 속에서 지역 전통을 이어가며 환경과 청소년, 여성 문제를 주제로 삼은 작품활동을 하고 지역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참여파들이다.

도로테아 이저는 '옛 사랑'과 '물은 여전히 파랗다' 같은 주목받는 시집을 내놓은 시인이다. '물은 여전히 파랗다'는 제목은 크리스 마커의 '대기 속은 여전히 붉다'는 시나리오 제목과 선뜻 대비된다. 최근에는 자신이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짧은 서정시와 사진을 결합한 책을 펴내기 위해서다. 여행기를 시로 옮기고 거기에 현장 사진을 곁들이는 방식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런 발상은 일찍이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전위작가들의 장르를 넘나드는 방식에서 나왔다. 역사책 속에서는 지난 세기 초에 문단을 석권하기라도 한 듯이 회자되곤 하지만 아직까지도 독자들이 즐기거나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실험기가 아닌 정말로 독자대중이 즐길 수 있는 형식과 소재를 개발하자면 출판을 제2의 전위운동으로라도 삼아야 한다. 이런 작가들은 여행을 투박하고 거친 민중의 삶의 건강성을 배우고 노래하는 기회로 삼았다. 런던 브래들리 출판사에서 1939년에 펴낸 피카소의 전기를 쓴 작가로 더 유명한 롤랜드 펜로즈 경의 '길은 멀기보다 넓다'도 그런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마케도니아의 한 시골에서 '폭우가 그친 뒤 곰들과 어울려 춤추는 농부'를 사진으로 찍고 시로 읊었다.

롤란트 리티그는 지역 바로크 문화에 대한 저서를 내놓은 평론가다. 크리스티나 자이델은 지역사 전문가로서 향토인물을 따라 지역 마을의 역사를 쓰고 있다. 그녀는 18세기 초에 활약했던 목사이자 신학자인 헤르만 프랑케의 족적을 추적하는 책을 내놓았다. 프랑케는 극빈아동구제를 위해 힘썼다. 고아원을 설립한 그는 성경을 민중에게 보급하고자 값싼 인쇄소를 차리고 1717년부터 1795년까지 150만부에 달하는 판매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인세가 구빈사업으로 이어진 훌륭한 선례였다. '문학의 밤'에는 작가이면서 칸타타 가수인 도리스 만델이 가세했다. 그녀가 육성으로 들려줄 문학은 눈으로만 읽을 때와는 판이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다시 하이네 데네 부인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마을의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 같은 것은 전무한 편이다. 동네사람들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호응하지는 않는다. 쾰른에서 이주해온 그녀는 이곳 주민들이 옛 동독의 생활방식에 매여 거의 꿈쩍도 하지 않는다며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의욕적으로 투자했다. 서점의 외벽까지 튼튼한 철제선반으로 마감하고서 책으로 도배했다. 부인은 통일된 지 어언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체제의 변화야 어떻든 여전히 보장받은 땅에서 농사지으며 '안빈낙도'하는 주민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런데 하필 왜 이 마을을 책마을로 선택했냐고? 마을 앞은 거대한 고이체 호수가, 그 뒤로는 뒤베너 하이데 자연공원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런 환경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지적 인프라의 교차로에 위치했다는 점이다. 북쪽에는 루터의 고향인 루터슈타츠 비텐베르크, 서쪽에는 할레, 남쪽에는 라이프치히, 게다가 바로 곁에는 현대디자인 혁명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데사우가 버티고 있다. 사방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둘러싸인 형국이다. 독일은 유난히 이런 유네스코 문화정책의 혜택을 많이 누리고 있다. 지방색이 가지각색이었던 덕이다.

이 고장은 개혁과 혁명과 통일로 다져진 땅이기도 하지만, 진작부터 많은 인사들이 알프스와 라인 강을 넘나들면서 라틴과 가톨릭 문화를 열심히 탐구하고 이해하려고 애썼던 엘리트의 발걸음으로 다져진 땅이다. 그 엘리트들은 역대로 혁명을 사랑하고 거역하기를 좋아하던 사람들 아니던가? 그래서 전세계 도시를 상자처럼 썰렁한 콘크리트 건물로 채워나가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만든 장본인,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도 그런 거역의 몸짓으로 모든 장식과 군더더기를 뿌리쳤다. 그 원형이 데사우에 있는 '바우하우스' 건축학교 건물이다. 하지만 장식을 거세한 건물의 빈자리가 지금처럼 추잡한 간판의 누더기로 덮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심지어 요즘 국내 도시에서 성업 중인 예식장들은 서구의 묘비 장식을 뻥튀긴 형태 아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아무리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웨딩마치를 울리며 딸의 손을 잡고 장례의 건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빠의 교양을 어쩌란 말인가? 어떻게 세상에서 제일 세련된 유교문화를 뽐내던 사람들이 이렇게 까막눈이 되었을까? 각박한 성장의 사다리에 매달려 잿밥에만 눈이 어두웠기 때문인가? 아니면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며, 초연하고 냉소적인 표현에 이를 만큼 우리 건축가들은 세상의 이치에 통달한 수사학적 경지에 이르기라도 했단 말인가? 공부 잘하는 기계들에게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지식과 이해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무지한, 똑똑한 사람들이 만든 제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기야 천만금을 들인 성당도 울퉁불퉁 총안(銃眼)을 올려 지은 것이 심심치 않으니, 이 또한 '성전에서 장사아치를 추방하던 하느님의 뜻을 따라 돈벌이에 눈이 먼 세태를 비유하며 성소를 단단히 수호하려는 뜻인가 보다'라고 박수라도 쳐야 할까?

'옛 대장간' 서점 주인, 하이케 리트케의 입장도 데네 부인과 대동소이했다. 동네사람들의 시큰둥한 태도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소수의 알짜배기 고객이 있기 때문이다. 할레와 비텐베르크의 지적인 토양에서 성장한 엘리트가 종종 드나들고 베를린, 더 멀리는 함부르크에서, 라인 강안의 마인츠에서, 바바리아와 오스트리아에서도 한 번에 한 짐씩 챙겨가는 소수의 '영양가 높은' 고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 서가에 다뉴브의 강물에 실려온 듯이 동유럽에 대한 야릇한 설렘을 북돋는 책들은 얼마나 많은지!

창가에 굳이 은접시 장식을 곁들이지 않았더라도, 동서의 교차로에 있던 다뉴브 연안의 도시들이 꽃 피웠던 문화를 담은 책자들과 사진집들을 보면 어느새 동유럽 대륙의 관문에 와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저자와 서점상이 어디 다뉴브와 엘베 강만 드나들었던가. 멀리 레겐스부르크와 아우구스부르크를 거쳐 콘스탄츠 호수를 건너 바젤에 이르는 순례로를 따라 남하하거나, '가장 아름다운 다뉴브 강상의 도시'라지만 사실 어느 대도시나 다름없이 부패에 취약한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의 언덕을 넘고 넘어 빈으로, 베네치아로 건너가 눈부신 이탈리아의 고전과 문명을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하지 않았던가!

동구권 출신의 게오르그 루카치의 저서들은 물론이고, 정말이지 아깝게 요절한 그의 벗 레오 포퍼의 사후 반세기도 더 지나서 출간된 저작, 게오르그 짐멜과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등의 분분한 논쟁 속에 사유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 미학저서들도 줄을 잇는다. 낱장으로 분해된 동판화와 기도서에서 뜯어낸 동판화들, 신문지 쪽도 수북하다. 어디에서 뜯어내고 오려냈는지 그 출처를 확인할 수 없지만 목판화를 복제한 동판화, 기념비적 건물과 거장들의 걸작 유화의 복제판화 가운데는 복제인데도 원작의 값에 육박할 만큼 중요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사실 이런 낱장 도판은 책을 서슴없이 훼손하는 야만적인 행동이다. 반사분해한 도판을 이용하던 최근까지 우리의 출판계에서도 이런 '반달리즘'이 만연했다. 지도책과 도판을 본문과 별쇄로 인쇄하던 17세기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이런 야비한 관행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미국 박물관 관계자들 가운데 낱장만을 모아 오동나무 상자에 넣은 수집본 일습을 제작해서 고가로 유통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영어로 쓴 미술에세이로 대단히 주목받은 존 러스킨도 애서가들에게 큰 흉을 잡혔다. 그래도 그 안목으로 치자면 월터 페이터 같은 문인보다는 한결 나은 편이지만 그의 유명한 판화 컬렉션 역시 대부분 소중한 고서(古書)를 낱장으로 찢어발기는 만행을 두려워하지 않은 결과였다.

아무튼 한때 부패의 온상이던 로마 교황청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현장으로, 또 아름다운 색채의 매혹을 좇아 베네치아로 여행하면서 독일의 종교인, 지식인, 문인들은 귀향길에 주옥 같은 문집들을 남겼는데 그 여러 이본들도 이 마을에 흘러넘친다. 호프만슈탈은 반 고흐의 그림에 대한 가장 뛰어난 대목을 남겼고, 시인 횔덜린도 대혁명을 선망하며 찾아갔던 프랑스에서 돌아올 때 최상의 걸작을 남기지 않았던가. 횔덜린은 1799년에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독일 땅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음미되는 구절이다.

"오직 좋은 날씨와 밝은 햇살과 초록만이 기쁨이라는 것을"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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