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8) 프랑스 오드의 몽톨리외

2007. 10. 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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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중세 순례자가 된다-

새벽 5시. 이 마을 뒤쪽 나들목 다리 위에 걸터앉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중세의 순례자가 된 기분이다. 회반죽에 돌로 쌓은 인기척 없는 집의 담벼락을 어루만지고 이따금 불쑥 튀어나오는 고양이에 놀라기도 하면서…. 샤를마뉴 대왕 시절부터 터를 닦아온 마을이니 그 역사가 1000년도 더 되었지만, 새벽 산책을 나온 노부부와 인사를 나누다보면 다시 우리 시대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마을의 남쪽으로 한걸음에 지중해까지 내달을 수 있을 것처럼 굽이치는 구릉들의 풍경이 밀려든다. 오크어 방언을 사용하던 옛날에 '몽톨리우'는 원래 올리브 산이라는 뜻이었지만 올리브 나무를 쉽게 찾아보려면 뒷산까지 올라가야 한다.

제일 먼저 문을 여는 빵집부터 공방 대여섯 곳과 서점 열일곱 집을 모두 둘러보는 동안 점심때가 되었다. 이 작은 마을에 호텔과 민박집은 모두 열 곳이나 된다. 카르카손이라는 유명한 요새도시 곁에 자리 잡은 입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로마네스크'한 중세의 낭만을 기대하며 촬영장처럼 고즈넉한 이 고장을 찾는 일본 할머니들도 쉽게 마주친다.

1990년에 '책과 그래픽 아트의 마을'로 출범한 몽톨리외는 다른 책마을에 비해 여러모로 차별화가 돋보인다. 일급관광지의 지원을 받는 셈이지만 마을 자체는 왕립 나사(羅絲)공방이 대혁명 때 몰락한 뒤로 쇠퇴일로였다. 한때는 4000명이 동시에 미사를 드릴 만큼 대단했던 생 탕드레 성당과 라 뒤르 강변의 산록, 카르카손 시를 이어주는 목이 좋은 위치만 제외하면 이렇다 할 유적도 없다.

이 지역에는 멀리서 이주해온 외국인들이 다수 정착했다. 특히 영국인이 많이 찾아온다. 유럽연합의 실질적 효과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수세기 전 이 지역에 진출했던 영국인들은 향수에 떼밀려 자주 찾는 곳이지만 유럽이 통합하면서 아예 노후를 이곳에서 보내려는 북유럽인들도 늘고 있다. 호텔이나 기타 관광업소에서 영어를 하는 사람도 늘었다. 물론 파리와 그 이북 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많다.

'모음(母音)' 서점 주인 다니엘 자크 오드베르도 파리에서 내려왔다. 브레방 박물관 학예관도 파리에서 전공을 마치고 이곳에 취업했다. 서점 '수집가의 창고'의 주인은 북해 연안의 되커르크 생활을 접고, 이곳에서 새 삶을 시험 중이다. 이제 3년째. 아직 대단한 벌이는 못되고 기름값에, 세금에, 누구나 하는 걱정을 안고 근근이 생활하고 있지만 북쪽의 고향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술취한 배'라든가, '모음'처럼 대시인들의 시에서 따온 서점 이름이 어떻든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우크라이나, 알제리 사람까지 이 마을에 속속 서점을 열고 있다. 네덜란드 사람이 운영하는 서점은 세 곳이나 된다. 이들이 몽톨리외로 이주해오는 으뜸가는 이유는 물론 타지역에 비해 지대와 임대료가 현저하게 저렴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부인과 함께 집을 구하러 더블린에서 날아온 네덜란드인 웹디자이너 롭 보겔은 이곳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또 책마을이 갖고 있는 잠재력에도 끌렸다. 동포도 적지 않아 객지에서 예상되는 외로움 같은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구나 부인은 영어를 하니까 은퇴 후이지만 언제라도 일감을 찾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런 보겔의 사업 감각은 과연 사업수완이 뛰어난 자기 조상의 평판에 먹칠하지는 않을 모양이다. 아무튼 그는 골목에 상을 펴고 밤늦도록 계속된 흥겨운 술자리에서 이곳을 택한 가장 큰 이유로 날씨를 꼽았다.

'모음' 서점주인, 오드베르는 '파타 모르가나' 총서를 차곡차곡 수집해 두었다. 문학애호가나 유난스러운 애장가가 아니더라도 군침을 삼킬 만큼 기막힌 컬렉션이다. '파타 모르가나'는 소위 조제 코르티 출판사처럼 제한된 필자와 공들인 한정판을 고집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또 오리지널 프린트로 사진과 글을 한데 묶은 책으로 화제를 뿌렸다. 단 25권만 제작하는 이 시리즈의 권당 평균 정가는 약 300만원이다. 앙드레 브르통처럼 공인된 거장의 것은 800만원이 넘는다. 저렴한 산문집이나 시집도 있다. 하지만 절판된 중고본이 신간보다 고가로 유통되는 일이 허다하다. 좋은 책은 분명 갈수록 가치가 오른다. 이 출판사는 '단번에 팔아치우고 마는' 책에 승부를 거는 풍토에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책값은 얼마던가? 아니, 수박 한통은 얼마더라? 등심 1인분이 얼마인가? 운동화 한짝에도 칠팔만원은 된다. 아직도 끄떡 없는 염천교에서 인두로 지지던 식의 중고 구두라도 몇만원은 한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에서 책은 헌신발짝 값만도 못한 것이다. 중고서적은 대체로 무게로 저울에 달아 유통된다. 출판인이나 저자 편에서는 국민 수준이 낮다고 하고, 국민은 책이 제값을 못한다고 의심한다. 아무튼 도서의 하향평준화는 분명하다. 수많은 시간과 지성을 쏟은 저자나 역자의 책이든, 시정잡배가 대필시켜 쓴 책이든 종이값이나 쪽수로서 정가를 맞춘다. 지성과 정신노동의 가치를 이렇게 경시하고 저평가하는 사회에서 사상의 향기는커녕 타인의 생각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도야하며, 바람직한 인내심 같은 것을 키울 여지란 기대하기 어렵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니, 시적인 표현을 제외하면 아예 상스러운 고함조차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읽어야 하는 소리 없는 대화로서의 독서의 미덕을 누가 옹호할 것인가.

책방 주인이 반드시 독서광은 아니지만 오드베르는 분명 독서광이다. 그는 글을 써볼까 하는 욕심이 없지도 않다. 파리 생활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욕심이다. 하지만 이곳은 자연을 좋아해서 산보를 즐기지 않는 한 무료하리만치 생활 리듬이 느린 것도 사실이다. 그의 꿈처럼 서점 주인이 아마추어 작가인 경우는 적지 않다. 정말 책을 사랑하다 보면 글에 연정을 품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피에르 로잔스키는 '한 가운데 불' 서점을 개장하고 최근에 정착했다. 한권 한권을 반투명지로 포장해둔 꼼꼼한 이 사장님은 비교적 고가의 초현실주의 문학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1930년대 8절판(또는 국배판이라고 부르는 판형)에 앉힌, 1920~30년대의 판형으로 한 연대기를 기록한 화가들의 작품집 겸 전기물 가운데 로마와 스폴레토 등 이탈리아에서 인쇄하고 제작해온 불어책 중 하나를 골랐다. 이렇게 이탈리아에서 제작해온 책에는 매권마다 고유번호를 붙이는 관행이 있다. 이런 책들은 대형판과 동시에, 또는 나중에 소형 보급판으로 다시 제작하기도 했다. 쿠르베 마네 등 대가들의 원작을 이런 복제판형으로 보는 재미는 각별하다. 잘 알려진 앙드레 브르통의 약간 과장된 가격의 작품집들은 대처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책장정 최고의 걸작인 피에르 포세르 장정의 변형판으로,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마르셀 장의 '초현실주의 회화사' 1967년 쇠유 판도 보였다.

'딜레당트' 서점은 파리에 지사를 두고 일찌감치 이곳에 자리잡았다. 딜레당트는 절판된 걸작을 소량으로(500부 이내) 되살려내거나 신예를 발굴하는 데 주력해왔다. 특히 중단편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데 한몫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 출판계의 뒷이야기를 그린 '저자'의 작가 뱅상 라발레크는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딜레당트사 사주 도미니크 고티에는 파리에 올라가 있는 중이어서 만나지 못했다. 친구들의 책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없어 대단히 아쉬웠다.

몽톨리외 책마을의 출범은 철저하게 한 개인의 노력과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 주역은 미셸 브레방이다. 그는 몇해 전 작고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박물관을 남겼다. 원래 고급 인쇄와 제본에 종사하던 이 사람은 굉장한 애서가였다. 마침 박물관에서는 과거 그가 인쇄하고 장정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미셀 뷔토르의 시화집(詩畵集)을 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책과 인쇄술의 역사를 증언하는 패널과 석판. 컴퓨터에 곧바로 밀려난 사식기(寫植機)와 수백년 묵은 활판인쇄기도 진열돼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고활자 인쇄에 대한 소개는 누락되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세계사는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구 중심적 근시안을 못 벗어났다. 그러니 '직지심경'을 알 리 없다.

브레방의 열의 덕에 공예공방들은 수십 쪽에 불과하지만 활판에 원작 판화나 사진을 곁들인 소책자를 활발히 펴내고 있다. 몽톨리외의 활기는 물론 주변 관광자원에 큰 힘을 얻고 있고, 이방인이 많은 것도 영국인을 필두도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동인이다. 하지만 서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동산 복덕방의 활약을 중요한 요인이라며 흐뭇해했다. 그들의 고국에서 부동산 시세와 세금을 못이긴 많은 북유럽인을 유치하면서 마을의 활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서점들을 윗동네라고 한다면 200여m 떨어진 아랫마을에도 한 덩어리 책방이 모여 있다. 뒤뜰의 거대한 너도밤나무에 꿀릴 것 없는 커다란 건물이 몇동 서 있다. 깨진 유리창이나 떨어져 나간 벽체가 유적의 운치를 자아낸다. 하지만 마당에 주차해 있는 노란색 맹꽁이차가 일순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1740년대부터 중국에까지 수출했던 왕립나사공방 건물이다. 지금은 유리공방과 호텔과 서점으로 각 동을 나누어 사용한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아래층에서 꼬마가 세발자건거를 타고 까불어대는 재롱을 받아주다보면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흥분도, 고역도 가벼워진다.

이 집에서도 귀중한 한권을 찾았다. 잊혀진 미켈란젤로의 초상을 찾아 방랑했지만 그 자신 또한 후속편을 미완으로 남긴 채 종적을 감추고 실종된 미술사학자 폴 가르노가 지은 '미켈란젤로의 초상'이다. 1913년판. 폴 가르노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부인'에게 헌정하기 위해 이탈리아 전역의 고문서보관소와 도서관, 박물관, 서적상, 벼룩시장을 뒤지면서 미켈란젤로에 대한 열정과 부인에 대한 사랑을 하나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그 야심적인 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수수께끼처럼 사라졌다. 이런 미술사의 혜성이 남긴 운석조각처럼 누렇게 바랜 그의 책을 바로 이곳에서 만났다. 인터넷에서 수배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아마 1차대전이 가르노를 집어삼킨 듯하다. 하지만 이런 발견보다 즐거운 것은 책갈피에 끼어있던 독자의 메모나 신문기사 등이 꼬깃꼬깃 접혀 있다가 손 안으로 굴러 떨어질 때이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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