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365]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 둘은 같은 사람이다. 로맹 가리의 이름으로 나온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으며 그 생의 쓸쓸함에 질려 등이 시렸다.
같은 이름으로 나온 '유럽의 교육'을 읽으며 나는 도저히 그런 소설을 쓰지 못할 거라는 자괴심에 배가 아팠다.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나온 '자기 앞의 생'을 읽다가 흐른 눈물은 참 지독히도 짰다. 세로쓰기판이었던 '자기 앞의 생'은 집에 없다. 누가 빌려갔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친구가 새로 나온 가로쓰기판 '자기 앞의 생'(문학동네)을 내밀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지만 다시 읽고 싶었다. 그래서 덥석 책을 받았다. 읽었다.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단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수 김만준의 아주 오래된 노래. 얼마 전 '자전거 탄 풍경'이 리메이크했던 노래 '모모'의 주인공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아니라, 에밀 아자르의 모모였다. 자탄풍의 노래를 듣는 젊은 독자들은 그것을 알까. 책에도 타고난 팔자가 있는 걸까. 그렇게 친구가 준 책이 또 사라졌다. 그러다 어느 헌 책방에서 '세로쓰기판'을 발견했다. 물론 샀다. 돌고 도는 책의 생.
20대 시절의 어느 날, 에밀 아자르가 내게 왔다. 누구의 생이든, 자기 앞의 생은 슬프다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어린 아랍인 꼬마 모모의 입을 빌려 내게 말했다. 그래놓고선 정작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는 권총으로 자기 앞의 생을 끝냈다. 지독한 생의 아이러니.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았던 작가.
〈조병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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