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속 수학이야기](32)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2007. 9. 1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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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국 사람보다 12배 크면 몇인분을 먹을까-

심형래 감독의 디워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에는 길이가 200m, 높이가 9m인 이무기 부라퀴가 등장한다. 왜 브라퀴의 길이가 200m, 높이가 9m일까? 심형래 감독은 이 이무기의 크기를 아무렇게나 만들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려면 나름대로 이런저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한 고민이 '걸리버 여행기'에서 잘 나타난다.

여러분은 영국의 소설가인 조너선 스위프트(Swift, 1667-1745)가 쓴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 보았는가? 요즈음에는 소인국 편과 대인국 편이 아동 작품으로 꾸며져서 널리 읽히고 있으나 이 소설은 원래는 인간 매도의 풍자소설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뒷부분인 '말들의 나라'에서는 그 풍자내용이 두드러지며 적어도 인간인 이상은 모두 혐오해야 하는 동물이라는 부정적 시각으로 인간의 상징인 야후라는 동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아주 비열하고 추악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인간 증오의 정신이 드러나 있어 금서로 취급받기도 하고 신성 모독적이라고까지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지금에 와서라도 그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의 전반부인 1부와 2부에서는 끊임없이 숫자가 등장하면서 소인국과 대인국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숫자들을 단순히 읽어 내려가기보다는 수학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읽는다면 또 다른 재미를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스위프트가 어린아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익숙한 소인국과 대인국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자. 일단, 소인과 거인을 어느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내었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

소인국의 황제는 '산더미같이 거대한 사람'에게 몇가지 의무를 준수하도록 요구하면서, 소인 1728명의 하루 식량에 해당하는 고기와 술을 매일 제공한다고 하였는데, 뒷부분에서 걸리버는 "독자들은 나의 자유 회복에 관한 문서의 마지막 조항에서 황제가 릴리퍼트 사람들 1728명의 하루 식량에 해당하는 분량의 고기와 술을 내게 매일 주겠다는 구절에 주목하기 바란다. 나중에 내가 그곳의 한 친구에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구체적인 숫자를 알아냈는지 물었더니, 그는 황제의 수학자들이 각도를 재는 기구로 내 키를 재어본 결과, 그들보다 12배가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몸의 형태가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내 몸 전체는 그들 1728명을 합한 것과 같기 때문에, 같은 수의 릴리퍼트 사람들의 하루 식량이 내게 매일 필요할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는 것이다"(이동진 옮김, 해누리기획, 2003)라고 친절한 설명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왜 스위프트는 릴리퍼트 사람들을 걸리버의 1/12로 상상했던 것일까? 이는 아마도 그 당시에 영국에서 사용하고 있던 단위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똑 닮은 작은 인형을 만든다고 해보자. 어느 정도 크기의 인형을 만들겠는가? 10cm, 1cm, 아니면 그냥 적당히 25cm 크기의 인형? 아마도 자신의 키의 1/10정도 되는 인형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아니면 자신의 키가 150cm라면 인형의 크기는 150mm와 같이, 같은 수치를 사용하되 보다 작은 단위를 사용할 것이다. 스위프트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걸리버의 키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의 내용으로 봐서 6피트(약 180cm)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소인은 6인치이다. 대부분의 번역서에서는 모든 길이를 미터법으로 고쳐서 릴리퍼트 사람들의 키를 6×2.5=15cm라고 번역하여, 이러한 미묘한 느낌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걸리버는 릴리퍼트 사람들을 보고 "the man was six inches tall"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거인의 키는 다른 단위를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60피트로 정하였다.

그런데, 1피트는 12인치이다. 그러므로 걸리버는 소인보다 12배 더 큰 것이다. 12배 큰 걸리버는 몇 인분을 먹어야 할 것인가? 다음 두 개의 정육면체를 생각해 보자. 한 모서리의 길이가 두 배가 되는 정육면체는 작은 정육면체 8개를 모아 놓은 것과 같다. 즉, 큰 정육면체의 부피는 작은 정육면체의 2×2×2=8(배)가 되는 것이다.

이제 걸리버와 릴리퍼트 사람들은 닮은 모양이고 12배 크기 때문에, 릴리퍼트의 수학자들은 걸리버의 몸집이 소인 몸집의 12×12×12=1728(배)가 됨을 계산해 냈던 것이다. 따라서 식사량도 1728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릴리퍼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중에 "풀과 나무는 물론 동물도 이와 똑같은 비율로 작았다. 가장 덩치가 큰 말과 황소의 키는 10 내지 12.5cm이고, 양은 3.8cm 전후였으며, … 가장 큰 나무들은 그 높이가 약 210cm"라고 쓰고 있다. 릴리퍼트 사람들과 걸리버의 키의 닮음비가 1:12이므로, 영국의 실제 말이나 소는 120cm 또는 156cm, 양은 48cm정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더운 여름 날 시장에서 약간 더 큰 수박의 값이 작은 것보다 더(크기에 비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싼 이유도 바로 이 부피의 닮음에 있는 것이다. 크기가 약간 더 커서 1:1.2라고 하자. 그러면 수박의 부피는 1³:1.2³이 되므로 1.7배, 즉 거의 두 배의 값을 받게 되는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로빈슨 크루소'보다 더 사실적이며 자세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만약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인국의 황제가 1000명분의 식량을 제공하겠다거나 아니면 단순히 '많은' 양을 제공하겠다고 했다면, 이 소설은 사실성과 구체성이 떨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수학은 소설을 좀더 사실답고 흥미 있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수학은 수학책 안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수학책을 벗어나서 우리 주변에 널리 숨어 있어서 삶을 윤택하게 해 준다. 그런 점에서 고다이라 구니히코가 쓴 '수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경문사)는 책의 제목은 참으로 경청해야 할 구호인 것 같다.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이들에게는 모험담과 상상의 꿈을 주고, 어른들에게는 인간 본성에 대한 풍자와 문명에 대한 비판을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 어린이와 어른 모두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아쉬운 점은, 이 책에 숨어 있는 수학적 아이디어들이 12진법이 아닌 10진법을 사용하는 우리에게는 번역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경인교대 수학교육과

〈자료제공|김정하·인천 건지초등학교 교사〉

〈예문·삽화발췌|걸리버여행기(이동진 역·해누리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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