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왜곡된 한·일 역사 '바로세우기'

2007. 8. 9. 13: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30일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로 젊은이들조차 걷기 힘든 날씨에도 일본 구마모토현의 노인들이 서울 경복궁을 찾았다. 얼핏 보면 관광객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의 멤버들이다. 이 모임은 방문단장 오가사키 와조(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장), 사무국장 가이 도시오(전 회장), 현직교사 야마노 고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방문에는 20여 명의 멤버 중 13명이 왔는데, 대부분 60~70대 노인으로 일본 구마모토현의 전·현직 교사들이다. 이들이 경복궁을 찾은 이유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건청궁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현직교사 "한국으로 수학여행 계획"

이들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중심으로 왜곡된 한·일 역사를 바로잡고, 일본인에게 올바른 역사 교육을 촉구하고 있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2004년 11월 설립했고, 현재 모임에 참여하는 인원은 20여 명 정도다. 이들은 왜곡된 역사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연구를 하고, 그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모임에서 명성황후 시해범의 후손 20여 명과 시해 사건에 사용된 칼 두 자루를 찾아내는 결실을 얻었다.

이들은 2005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에는 명성황후 시해범의 후손인 가와노 다쓰미씨와 이에이리 게이코씨가 직접 찾아와 큰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명성황후의 무덤에 절을 하면서 조부 대신 용서를 구했고, 명성황후가 사용한 열쇠 꾸러미와 향낭(향을 넣는 주머니) 모형을 반납하고 돌아갔다. 열쇠 꾸러미와 향낭은 명성황후 시해범 중 한 명인 구니토모 시게아키가 증거물로 가져온 것으로 외손자 가와노 다쓰미씨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물건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물건이 사라졌고, 사죄의 뜻으로 그와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반납한 것이다.

이번 방문단에는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9명의 전·현직 교사가 포함됐다. 오가사키 단장은 "시해에 가담한 48명 중 21명이 구마모토현 출신이었다"면서 "교사로서 그런 역사를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또 모임의 전 회장인 가이 도시오씨는 "한국 방문 전에 가와노씨를 모임에 초대했다"면서 "가와노 선생은 80이 넘어서 잘 걷지도 못하지만, 한국에 잘 다녀오라는 이야기를 전했다"라고 말했다.

현직 교사로 유일하게 한국을 방문한 야마노 고지씨(가와치노 초등학교)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산 역사를 가르쳐주고 싶었다"면서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올 생각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또 "일본 교과서 출판사 8곳 중 시해 사건을 다룬 곳은 한 군데밖에 없고 내용도 정확하지가 않다"고 덧붙였다.

명성황후 홍능묘 찾아 참배

이들은 무더운 한국 날씨 때문에 경복궁을 돌아보는 것을 힘들어했다. 특히 오가사키 단장은 지병 때문에 걷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정도였다.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한 가이 도시오씨는 이번 방문을 위해 특별한 것을 준비했다. 직접 조각한 목각 탑과 일본의 전통 가오리연으로, 명성황후의 홍능을 참배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한국 방문 이튿날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오전 10시 명성황후 홍능묘를 방문했다. 이들은 명성황후 무덤 앞에 준비해온 가오리연과 목각 탑을 놓고 참배했다. 이들은 준비해온 '일본 구마모토 현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서 "명성황후가 시해된 지 112년이 지났지만 일본인들은 일본 정부의 외교정책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서 "명성황후는 조선의 궁에서 일본 암살자 집단이 살해한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또 "시해 가담자 48명 중 21명이 구마모토 현 출신인 만큼 후손들이 앞장서 역사를 바로 알릴 것이다"며 "역사를 바로잡는 데 관심을 가져달라"고 발표했다. 또 오가사키 단장은 "일본인의 사죄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면서 "하지만 진정한 한·일 우호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8월 1일 안중근기념관, 김구기념관, 판문점 등을 방문하고 8월 2일 출국했다. 이들의 한국 방문은 한·일간 역사 바로잡기에 작은 징검다리 구실을 했다.

인터뷰 | 한국 방문단 단장 오가사키 와조(關崎和三)

"일본 학생에게 정확한 사실 가르쳐야"

-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인데, 방문한 이유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명성황후 시해범의 후손인 가와노 다쓰니씨랑 같이 왔다. 한국을 다시 찾은 이유는 전직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이 사이좋게 지낸다고 해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다시 방문했다."

-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내가 교직에 있을 때 한국 여학생이 있었다. 적십자 활동도 활발하게 하는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명성황후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라고 물어봤다. 부끄럽게도 그 사건에 대해 잘 몰랐다. 교과서나 역사 사전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동료 교사에게 물어봐도 다들 잘 모르더라. 그때부터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 이번 방문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나.

"홍능에서 참배를 해도 쉽게 용서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알게 된 이후에는 진실한 마음으로 사죄하고 있다고 알아주면 좋겠다. 홍능에 참배할 때 사용하려고 직접 민속 연과 목조탑, 그리고 일본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준비했다."

-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전·현직 교사를 중심으로 약 20여 명 정도 활동하고 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연구하고, 연구 결과를 자료로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발송하고 있다. 그리고 숨어 있는 시해범 후손들을 계속 찾고 있다. 현재 20여 명 정도를 찾았는데, 명단을 공개하지는 못한다. 그분들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임은 일본인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