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엔 정답이 없어요

2007. 7. 5. 21: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아이랑 부모랑/

"아이가 방문 미술 수업을 받고 있는데, 선생님과 함께 할 때는 제법 잘 그리는 것 같으면서도 혼자 그릴 때는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와서 답답해요. 미술학원을 1년 넘게 보냈는데도 그림 그리는 실력이 늘지 않아 고심 끝에 방문 지도로 바꿨는데 차이가 없네요."

한 학부모가 미술교육 관련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이 학부모의 하소연처럼,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기를 바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렇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꾸 '잘' 그리기를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한테서 미술에 대한 흥미를 빼앗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초등 미술교육 사이트인 '이부영의 초등교실'(eboo0.com)을 운영하는 이부영 서울 고덕초등학교 교사는 "어렸을 때는 편하게 그림을 그리던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미술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 '난 미술에 소질이 없다'고 규정하며 그림 그리기를 포기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아이들이 이처럼 미술을 배우면 배울수록 흥미를 잃는 이유는 어른들이 아이들 삶의 표현이어야 할 미술에서까지 '정답'을 강요하고 '번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유로운 표현 중심의 대안적인 미술교육을 연구하고 있는 바탕소미술교육연구소 이광서(38) 대표는 "선을 똑바로 그어야 한다거나 색을 빼곡히 고르게 채워야 한다는 식의 '정답'이 아이들을 숨막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의 미술에 대한 거부감은 그림 그리기가 '의무'로 주어지고, 어른들이 제시한 획일적인 평가 기준에 따라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 본 경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어떻게 미술을 지도해야 할까?

이 대표는 어른들이 미술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술은 단순히 도화지 한 장에 성실함이나 지적 수준을 드러내기 위한 것도 아니고 기법을 연습하기 위한 과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학교에서 '삶을 가꾸는 미술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이부영 교사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교사는 '좋은 그림'이란 색을 꼼꼼하게 잘 칠했거나 기법이 뛰어난 그림이 아니라, 그림 속에 그림을 그린 아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미술지도는 아이들이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끄집어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표현 욕구를 북돋워 주는 것이다. 이 교사는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학원에서 '잘' 그리는 방법을 배우기보다 △땀 흘려 몸을 움직이는 일을 많이 해 보고 △자연과 세상의 모든 일을 건성으로 보지 말고 자세히 살펴봐야 하며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를 다른 사람을 흉내내거나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방법대로 자세하게 그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학교 미술수업도 바뀔 필요가 있다. 수업시간에 전통 문양이 그려진 활동지를 나눠주고 색깔을 채워 넣으라고 하는 등 아이들의 표현 욕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과제를 내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지겨운 노동일 뿐이다. 표현과정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완성품과 결과를 중시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화가이기도 한 기진호 서울 계남초등학교 교사는 "학교에서 결과물 중심의 평가가 이뤄지다 보니 부모들이 기능 위주로 가르치는 미술학원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학원에선 부모 요구에 맞춰 그림 잘 그리는 기술을 가르치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며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 욕구, 창의력 등 미술교육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미술 좋아하게 하려면

낙서 맘껏 하게 하자

유아·초등학생 시기는 감성이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다. 어린이에게 미술 활동이 중요한 이유다. 바탕소미술교육연구소의 도움말로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몇 가지 방법을 알아봤다.

낙서를 허락하자=네살 무렵이 되면 아이들은 집안 여기저기에 낙서를 하기 시작한다. 미술교육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난화기'라고 부른다. 이때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못 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낙서는 아주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표현활동이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벽의 일부에 큰 도화지를 붙여 줘 맘껏 낙서를 할 수 있도록 하자.

생각을 끌어내는 대화를=완성된 결과만 보고 잘 그렸느니, 못 그렸느니 평가할 게 아니라, 아이의 표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아이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질문을 던져 보자. 아이가 자동차를 그리고 있다면, "자동차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자동차는 지금 어딜 가고 있는 거야?" 하고 묻는 식이다.

동화책을 그림으로=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읽어 주는 동화책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여러 번 읽어 줘도 재미있어하는 동화책이 있다면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게 해 보자. 동화 속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보면 동화 속의 주인공이 아이의 생각 속에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어, 그리기에 대한 재미와 함께 생각하는 힘을 길러 준다.

그리기를 어려워한다면=눈과 손의 협응이 원활하지 않아서 원하는 대로 모양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아이에게는 가위질, 블록놀이, 선긋기 등 소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는 활동을 하면 도움이 된다. 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하는 놀이를 해보는 것도 좋다. 삼각형, 사각형 모양으로 점을 찍고 선으로 연결하는 연습을 한 뒤 점이 없이도 삼각형과 사각형을 그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잡동사니도 훌륭한 재료=평소에 병뚜껑, 단추, 나뭇가지, 포장지 등 다양한 재질감을 가진 재료들을 모양이나 특징별로 모아놓으면 이를 활용해 콜라주 기법의 표현활동을 해볼 수 있다. 눈과 손의 협응 능력이 좋지 않고 그림 그리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도 콜라주를 이용한 표현은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

이종규 기자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