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러 반잔 술이 한잔 되고"


육성 증언으로 본 조선기생의 애환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 철종 4년(1853), 홍문관 교리(校理) 김진형(金鎭衡.1801-1865)은 이조판서 서기순(徐箕淳)을 탄핵하다 그 해 6월 함경도 명천(明川) 유배를 명받고는 같은 해 7월12일 귀양길에 올라 한 달이 채 되지 못한 8월6일 귀양지에 도착한다.
이런 김진형을 위해 현지에서 준비한 것은 위리안치(圍籬安置)가 아니다. 열렬한 환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유배는 중앙의 문화가 지방으로 파급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
명천 고을을 다스리는 지방관은 언제건 다시 발탁되어 중앙정계 거물이 될 지도 모를 김진형 같은 인물에게 잘 보여야 했다. 나아가 학문이 뛰어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현지 선비들은 그에게 배우겠다고 몰려들었다.
그 환심 사기 일환으로 고을현감은 8월25일 김진형을 위한 칠보산 유람 행사를 주최하고 고을 기생들을 대거 동원했다. 이들 기생단에 군산월(君山月)이란 이가 있었고 그를 본 김진형은 이내 푹 빠져들고는 너를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쉰셋의 김진형을 만난 그 순간을 군산월은 이렇게 노래한다.
"전생에 연분 있어 임금님이 보내신가/ 칠보산 첫 대면에 언약 굳으시니/ 칠보산 행차 후에 본집에 돌아와 /나으리 모시기를 예의로 모셨다네"
비록 기생 신분이나 이젠 김진형을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고 맹세한 군산월의 일상에 더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를 모신 지 채 한 달이 되지 못한 9월21일, 김진형이 유배에서 풀렸다는 소식이 한양에서 날아든 것이다.
김진형은 군산월을 첩으로 데려가기로 하고는 남장(南裝)을 시켜 길을 나선다. 귀양살이에서 첩을 얻었다는 소문이 두려워 군산월에게 남자 옷을 입힌 것이다.
한양으로 향하는 노독에 지쳐갈 무렵, 어느 주막에서 하룻밤을 보낸 군산월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주막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조반 후에/ 행장을 수습하여 한 술 뜨고 일어서니/ 나으리 거동 보소 변색하고 하는 말이/(중략) '내 본래 잘못하여 너를 이제 속였으니 섭섭히 알지 말고 좋게 좋게 잘 가거라.'"
군산월은 이렇게 절규한다.
"이게 차마 웬 말이요 버릴 심사 계시거든/ 칠보산 행차 때에 아예 멀리 하지/ 무단히 언약 맺고/ 몇 번을 몸을 굽히던 그 정이 태산 같아/ 허다 사람 다 버리고 험코 험한 먼먼 길에/ 모시고 왔더니/ 그다지도 무정하고 그다지도 야속하오"
하지만 김진형은 매몰차게 군산월을 버리기로 작정하고는 이별주를 내어 놓는다.
"눈물이 흘러내려 반 잔 술이 한 잔 되고/ 한 잔 술이 넘쳤구나/ 다감다감 돌아서서 남북을 향해 설 제/ 또 다시 당부하되/ '잘 가거라' / '잘 가시오'"
이렇게 군산월은 그렇게 믿었던 남자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그에 비해 해주 감영 소속 명기 명선은 다행히 한양에서 내려온 낭군 잘 만나 한양둥이라는 아들 하나까지 낳고는 첩으로 들어갔다. 그런 일생을 명선은 시로써 남겨 놓았다.
젊을 때 한창 주가를 높이다가 이제는 늙어 아무도 찾지 않는 신세가 된 퇴기(退妓)의 한탄도 있다.
구한말-식민지시대 초기를 살다간 당대를 대표하는 '오입쟁이' 이용기(李用基)라는 사람은 기생집 풍경을 '악부'(樂府)라는 글로 남겨놓았다. 이를 보면 기생을 얼마나 천대했는지가 적나라하다.
기를 꺾는다면서 기생을 세워 놓고는 발가벗겨 수치심을 주는 '신고식'이 있었는가 하면, 대접이 시원치 않은 기생은 그 기둥서방과 함께 거의 알몸에 가까운 복장으로 거리로 내몰기도 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정병설(41) 교수가 최근 선보인 단행본 '나는 기생이다'(문학동네)는 기생의 육성으로 듣는 기생의 항변록이며 기생의 인권선언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기생들의 증언집인 '소수록'을 주요 얼개로 삼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이고 싶었고, 여자가 되고자 갈망하던 기생들의 절절한 애환이 시리도록 되살아난다. 39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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