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간병요원 '값싼 파출부' 전락

2007. 6. 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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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흥순(48·경기 수원 화서동)씨는 치매나 중풍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요원'이다. 몸을 움직이기 힘든 노인의 집으로 찾아가 집안일을 돕고 목욕도 시켜준다. 하지만 방문요양을 받는 가족들은 요양요원을 파출부로 생각하는 일이 많다. 어르신의 식사나 빨래 등 일상생활을 돕는 것은 물론 김씨의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인의 옷과 다른 가족의 빨래를 섞어 담아 뒀다. 노인의 식사를 챙기려면 부엌 설거지를 한가득 해야 하는 일도 되풀이됐다. 김씨는 "월 90만원대 보수에 견줘 하는 일이 너무 고되고 실망이 커서 그만두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회투자를 통해 노인복지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나섰지만 '질 낮은 일자리'만을 쏟아낸다는 비판이 많다. 오는 29일 고령친화산업진흥법이 시행되는 등 고령화 시대 '실버산업' 키우기가 본격화됐지만, 실버산업의 첨병인 '노인 간병' 일자리의 질은 개선될 조짐이 없다.

새로 생겨나는 '노인 간병' 일자리로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요양요원(요양보호사 자격)과 노인돌보미가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간병 일자리로 내년까지 3만9천여명이 추가로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마련된 일자리는 시급 6천원 이하에 4대 보험 가입, 퇴직금 지급 등의 조건이 고작이다. 주 5일로 한 달에 20일을 일해도 90만원대 월급이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다니는 시간은 근무로 인정하지 않아, 월급이 60만원꼴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유급 연월차가 적용되지 않는 등 불법 논란마저 있다.

이러다 보니 전문 인력은 달아나고, 서비스 이용자들은 전문 서비스 대신 '파출부' 노릇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진다. 노인 환자에게 필요한 대화와 운동보다는 쌓여 있는 온갖 집안일을 해달라는 상황인 셈이다.

수원재가복지센터의 박희숙 팀장은 "월 130만원만 돼도 질 높은 인력이 올 텐데,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남자 인력은 찾기 힘들고, 심지어 재중동포나 이주노동자 중심의 인력시장이 될까 우려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수원 요양보험 시범사업에서 가정 안 수발서비스 인력은 74.6%가 저임금 여성이었다. 남자 노인의 목욕 인력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일은 흔한 풍경이다.

'노인 간병 일자리'의 미래와 가정봉사원을 겹쳐보는 시선이 많다. 1989년 도입된 가정봉사원은 서비스 대상이 빈곤층 중심이었을 뿐 현재의 방문요양과 비슷한 일을 했다. 월평균 소득은 47만원에 지나지 않았고 자원봉사자가 다수였다. 복지부는 기존 가정봉사원 인력도 2010년까지 요양요원으로 활용한다.

한편,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최근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기업' 심포지엄에서 "우리 사회서비스 부문 취업자 비중은 1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3.2%보다 훨씬 낮아 고용성장 잠재력이 높다"면서도 "노인장기요양 서비스 일자리를 사실상 일하고 싶지 않은 열악한 일자리로 만드는 것은 노동시장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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