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너, 이래도 안 뜨냐!"

2007. 6. 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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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미소는 하회탈을 닮았습니다.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덩달아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해지죠.

그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즐겁고 재미있는 얘기를 들으면 꼼꼼하게 적어두었다가 혼자 몇 번이고 연습한 후에, 사람들에게 들려주었고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박수 치며 웃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

학교 수업까지 빼먹어가며 웃음 찾기에 몰두했던 그는 결국 개그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꿈을 안고 방송피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송사상 첫 개그프로그램인 '살짜기 웃어예'를 비롯해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등 30여 년 동안 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출해 왔습니다.

정년퇴임 후에도 학교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웃음을 전하고, 소극장을 열어 관객을 찾아가며, 웃음 전도사의 역할을 활발히 하고 있는 웃음학 박사, 인덕 대학교 김웅래 교수를 6월 23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일단 무대에 오르면 10초 내로 웃겨야 승산이 있다

▶ 웃음학 박사도 있나요?

박사학위는 없고 길거리에서 '사장님' 하면 절반 이상이 뒤돌아본다고 하는데 그냥 웃음을 좋아하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지요. (웃음)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으면 학위를 따보고도 싶지만 웃음학이라는 학위는 사실 없는 학문입니다. 인문학 쪽에서 코미디나 희극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혹시나 그런 학위를 줄는지는 모르죠.

▶ 겉모습은 전혀 안 웃기게 심각하게 생기셨거든요. (웃음)

그래서 제가 연기자가 아닌 프로듀서가 됐는지는 모르죠. (웃음)

▶ 소리 내서 막 웃기도 하시나요?

많이 웃죠. 연기자들과 같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거나 연습할 때 제가 제일 많이 웃어줘요. 작가나 연기자들이 냈던 아이디어들에 대해 많이 웃어주고, 감각적으로 재미난 이야기라고 웃어주면 신이 나서 얘기가 좀 더 발전이 되고, 그것이 작품이 되고, 작가가 원고를 써서 방송이 되고.... 그럴 수는 있죠.

▶ 특히 개그프로그램은 관객들의 반응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옛날에 고(故) 이주일 씨로부터 지방공연 갔는데 안 웃어줘서 아주 몸살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웃음)

일단 무대에 올라가서 5초나 10초 내에 가급적 빨리 객석을 웃겨야 마음이 안정이 되서 그다음 이야기가 잘 풀리게 돼요. 학교에서 강의할 때도 그런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던졌을 때 반응이 빨리 오면 그날 강의는 쉽게 풀려나가요.

지금은 덜한 것 같은데 사실은 영국 사람들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이 '당신은 참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이요.' 라고 해요. 외국 사람들은 그만큼 유모를 필수적인 감각이라고 생각을 하죠. 또, 옛날 말에 어느 마을에 약품을 가득 실은 트럭이 3대가 들어오는 것보다는 광대가 들어와서 마을을 웃겨주는 것이 더 마을을 건강하게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웃음이야말로 온 마을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 저는 개그 하는 분들하고의 관계가 참 좋은 것 같아요. 정말 잘 웃거든요. (웃음) 사실은 너무 잘 웃어서 가끔 혼날 때도 있어요.

어린 아이들의 머리에 부스럼이나 얼굴에 흉터가 가시지 않는 집안은 부모들이 늘 싸운답니다. 싸우는 부모들의 입에서 나온 독소적인 것들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들어가서 머리에 부스럼이 늘 있다고 해요. 반대로 행복한 가정의 아이들은 늘 부스럼이 없고 머리에 이도 없고 뭐 그런 이야기가 있거든요. 부모가 가정에서 즐겁게 하는 것이 온 집안을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하는 단초가 되지 않나 싶네요.

▶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 그것은 타고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저는 천부적으로 타고 난다기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82년에 심형래 씨 이후로 금년에도 죽 개그맨을 뽑는데 관여했습니다. 십 수 년 동안 개그맨들을 뽑아서 그들이 신인과정을 거치고 인기를 얻어서 훌륭한 연기자가 되는 과정을 늘 보아왔거든요.

공채를 통해 들어온 그들의 맨 처음 사고라든가 사고방식, 또는 감각, 끼 그런 것은 거의 보잘것없는 것이에요. 담당자들이라든가 심사위원들이 장래성, 사실 어느 실마리만 보고 뽑는 것이거든요. 그럼 그 사람들이 감각, 끼, 코미디에 대한 자질을 완성시키기 위해 정말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요. 앉거나, 서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버스를 타거나, 아마 잠잘 때 잠꼬대에서라도 늘 생각하고 그럴 겁니다.

◇ 유머는 절대 후천적인 것! 피나는 노력만이 살길

▶ 여러 사람이 있어도 그중에 유난히 얘기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그 사람이 하면 웃기고 재미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조금은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아마도 그 사람은 그 이야기를 한 번 정도는 연습을 했을 겁니다. 지난번에 집에서나 아니면 가까운 친구들한테 그런 상황을 한번 얘기를 해봐서 웃겼다든가 자기가 뜻한 바대로 상대방이 웃어주지 않으면 끝나고 나서 왜 내 이야기에 사람들이 웃어주지 않았는가.... 미리 결론을 얘기해 줬구나... 혹은 결정적인 앞의 상황을 설명해 줬어야 하는데... 하며 아마도 반성의 시간을 가졌을 겁니다.

이건 농촌이다, 빌딩이다, 하는 공간적 배경이나, 계절적으로 수박이 막 나는 요즘같이 더운 6월의 하순쯤이라든가, 그런 상황을 얘길 안 했다든가, 결정적인 단어, 아버지의 원수 혹은 옛날 애인 같은 결정적인 단어가 있는데 그걸 빼먹었다든가 하면 웃음의 폭발력이 약해지죠.

그렇게 가만히 반성해 보면서 빼먹은 부분을 찾아내고 다음엔 그 이야기를 꼭 넣어야겠구나... 하는 그런 정도의 마음을 한 사람이 아마 다음번에 이야기할 때 결정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봅니다.

▶ 똑같은 얘기라도 그 순간의 어떤 리듬이라든가 기회를 포착한다든가 하는 것에서 달라지잖아요.

물론 즉흥적인 애드립(Ad-Lib)같은 것이 중요한 것인데 그것도 수많은 반복과 연습, 평소에 그런 상황이었을 때 자기가 가늠을 했었던 것이 늘 기억에 경험적으로 축적이 돼서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그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했더니 재미있었구나 하는 경험과 이 상황에서 지난 번에는 경찰로 얘기했지만 지금은 군인들 앞이니까 경찰을 군인으로 바꾸면 된다 하는 애드립을 쳤을 때 재미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고... 제가 계속 주장하는 것은 천성적인 것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 연극을 해보면 어떤 장면, 어떤 대사는 관객이 꼭 웃어줘요. 우리가 연습을 할 때는 잘 모르는데 생각지 않았던 어떤 장면이나 대사에서 웃어주면 그 장면은 배우들이 기다리거나 오버를 하게 되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지역과 관객에 따라서 안 웃어 줄 때도 있더라고요. 그러면 배우들이 당황하죠. (웃음)

예를 들어 A라는 유머상황을 하나 알고 있다면 그것을 언제나 그 상황으로 쓰면 우습지가 않죠. 그러면 그 상황과 때와 장소에 따라서 내용을 좀 바꿔서 얘기를 하는 센스를 가져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목사님과 장로님이 같은 날 같은 시에 돌아가셔서 천국을 가게 됐대요.천국 문에서 베드로 선생을 만났는데 장로는 본체만체하고 목사님만 붙잡고 껑충껑충 뛰면서 너무 반가워하니까 장로님이 화가 난 거예요. 나도 세상살 때 어느 정도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목사님도 잘 보필하고, 교회를 위해서 봉사활동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베드로 선생은 내가 장로라고 이렇게 본체만체하나... 너무 서운해서 베드로에게 '목사님만 너무 그렇게 반가워하면 어떡합니까? 저도 할 만큼 했는데...' 그랬더니 베드로 선생이 '장로님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천국에는 깔린 게 장로님들입니다. 오늘 목사님 오신 것이 처음이라서 내가 이렇게 반가워하는 겁니다.'

이 얘기를 목사님 앞에서라면 '아 이거 깔린 게 목사님인데 오늘 장로님이 처음이라서 반가워합니다...'이렇게 얘기를 순간적으로 바꿔서 할 정도라야 '저 사람은 재미난 이야기를 한다.' 그러죠. 그건 목사님이 싫어하는 얘긴데... 목사님 약간 긁는 얘긴데... (웃음) 그걸 어제 들었다고 그대로 하면 안 되죠.

▶ 김웅래 교수님은 본인이 생각하실 때 평소에 사람을 좀 웃기는 편인가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생활을 오래 해왔는데 교회에서 예배가 끝나면 꼭 2부에 학생회활동시간에 모여서 회의도 하지만 레크리에이션도 했어요. 게임이나 레크리에이션을 하려면 재미있게 얘기도 하고 청중을 웃겨야 하잖아요. 과거 우리 때는 포크 댄스 같은 게 유행이어서 포크 댄스도 배우고 그랬는데 분위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는 짤막짤막한 재미난 얘기들을 외워두는 것도 필요했죠.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정음사에서 나오는 5권짜리 '세계 해학전집'을 읽었어요. 그 책을 읽은 것이 코미디로 빠져들게 된 결정적인 동기인 것 같아요.

▶ 저도 '세계문학전집'은 읽었는데 '세계 해학전집'을 읽고 어떻게 코미디에 빠져들게 됐죠?

희극만 모아 놓은 5권의 책이 있었는데 1권은 미국, 2권은 프랑스, 3권은 영국... 그런 것을 간추렸던 전집이었는데 거의 외웠었어요. 수백 개를 학생 때부터 머릿속에 외웠죠.

◇ '세계 해학전집'을 달달 외우며 입문한 유머의 세계

▶ 친구들이 재미있어 해요?

친구들이 재미있어 하고, 회사에 들어와서 '유머개그 야사'에서부터 '한국을 웃긴 250가지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유머관련 책을 꽤 여러 권 냈어요. 최근엔 안 팔려서 내지 않죠. (웃음)인터넷에 여러 가지로 모든 유머사이트가 있어서 책을 낼 필요성은 별로 없더라고요.과거에 조크-북(Joke-Book)을 냈을 때 성인유머가 많았죠.

우리 아이들 중고등학교 때 책꽂이에 아버지가 지은 책이라서 보다는 읽으라고 꽂아두거든요.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써먹으라고요. 한참 이야기하다가 화제가 딱 끊어지면 그때부터 주로 친구들 뒷담화를 하잖아요. 제발 친구들 씹지 말고 그럴 때 유머를 쓰라고 했어요. (웃음)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소재가 끊어지면 '그놈이 있잖아~' 그러면서 씹어대고 그것이 부메랑처럼 돌아서 자기한테 또 오거든요.

사실은 조크가 남을 해하지 않고 그럴 때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대학 다닐 때도 조크를 많이 해서 남의 얘기 씹지를 않았죠.그래서 제가 소화력이 강합니다. (웃음) 씹지 않고 생겨도 소화 잘되고, 남을 안 씹은 것이 교우관계라든가 그런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 80년도에 군사정권이 통폐합하는 바람에 TBC와 KBS가 합쳐졌지만 그전에 동양TV라는 TBC가 있었어요. TBC에 시험 봐서 입사하셨죠?

대학 졸업하면서 시험을 봐서 TBC예능국에 들어갔죠.

▶ 그때는 개그프로그램이 인기 있던 때도 아니었는데 왜 개그프로그램에 들어가셨어요?

그때는 주로 드라마PD나 가요PD를 선호했었지요. 코미디 PD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죠. 그런데 저는 대학교 다닐 때도 MBC 에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코미디언 구봉서, 배삼룡, 고(故) 박시명 선생님... 이런 분들을 굉장히 좋아했었어요. 내일이 시험이지만 책을 딱 접고, 빵점을 맞더라도 코미디 방송은 꼭 보고 시험공부 했어요. 그런 식으로 보고 메모하고 그랬죠.

그래서 TBC에 가서 인터뷰할 때 코미디를 하겠다고 했더니 국장급 되시는 분이 왜 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그래서 코미디 프로그램은 작가와 연기자와 프로듀서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연기자들이 없다, 지금 MBC에서 활동하고 있는 누구누구~ 이런 분들을 우리가 TBC로 모시고 와야 한다, 그래서 젊은 패기로 프로듀싱은 제가 한번 배워보고, 그러면서 삼위일체가 되는 프로그램을 위해 TBC에서 코미디를 꽃피워보고 싶으니 저를 뽑아달라고 했어요.

▶ 1차 면접에서요? (웃음)

1차 필기시험 보고 2차 면접 때요. 발표를 보니까 딱 합격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코미디 AD로, 그야말로 졸병으로 들어가자마자 코미디를 했는데 녹화장에 가서 의자 나르고 청소하고 그럴 때 저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TV로만 보던 분들하고 같은 세트에서, 그것도 내 앞에서 저분들이 연기를 하고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이 너무 뿌듯해서 신입사원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녹화 날은 새벽같이 나와서 제가 세트에서 대본을 들고 연기자처럼 혼자 해보고 그랬어요.

문 열고 나와도 보고, 여기도 서서 보고, 저기도 서보고, 문짝도 흔들어 보면서 덧문이 흔들리면 세트맨에게 얘기도 하고, 숨어야 하는 곳엔 조명을 너무 비취면 안 되겠구나 해서 조명에게 이야기해야겠구나.... 그때 그 신입사원 때 코미디프로가 너무 즐거워서 막 그랬던 생각이 나요.

▶ 저는 개인적으로 서영춘 선생님을 제일 좋아했어요. 그분은 정말 타고나신 분인 것 같아요.

저도 너무 좋아하는데 그때 제가 신입사원으로 '둥글벙글'이라는 일일 홈 코미디의 AD로 한 1년 정도 선생님과 같이 일을 했거든요.그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20분짜리 대본을 다섯 개를 했는데 한번은 대본이 네 개밖에 안 나왔어요. 그래서 우선 녹화를 들어가고 작가가 거의 녹화 끝날 때쯤 다섯 번째 대본을 써서 프린트해 부랴부랴 올라왔죠.

네 번째 녹화를 끝내고 연습실에서 연기자들이 죽 둘러서 다섯 번째 것을 읽는데 그때 서영춘 선생님이 주인공이었고, 아마 유하나 씨가 여자주인공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최경자 씨, 돌아가신 '홀쭉이와 뚱뚱이'의 양훈, 양석천 선생님, 이대성, 심철호, 임희춘 씨... 이런 분들이 나왔었죠. 20분짜리지만 대본이 20여 페이지 됐는데 그것을 한 번 읽더니 서영춘 선생님이 대본을 딱 놓고 가자고 하는 거예요.저는 선생님이 하시다가 씬 바이 씬(Scene-By-Scene)으로 다음 대사가 뭔지 보고하고, 또 보고하려고 그러나 보다 했는데 깜짝 놀란 것이 머릿속에 싹 다 외운 거예요.그래서 저는 이분이 천재적인 분이구나, 연기도 연기지만 머리가 비상하구나... 느꼈죠.

◇ 한번 읽고 다 외워버리는 천재적인 희극인 '故서영춘'

▶ 애드립이 아니라 대본대로 다 외워서 하신 거예요?

네, 대본대로 죽 가시는데 정말 놀랐어요.

▶ 대학 때는 영문학을 전공하셨죠?

영문학을 했었고 영문과에서도 연극부가 있어서 제가 기획을 맡아서 영어연극도 하고, 손턴 와일더(Thornton Niven Wilder)의 '아워 타운(Our Town)' 같은 것도 했었어요. 그리고 고려대 연극부에 적을 두고 안톤 체호프 (Anton Pavlovich Chekhov)에서 이오네스코(Ionesco, Eugene)까지... 특강 같은 것도 고려대 극회에서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러니까 관심은 늘 가졌죠.

그때 영문과에서 여섯 분의 교수님이 셰익스피어 (William Shakcspeare) 강의를 했었는데 제가 다른 과목은 하기 싫은데 셰익스피어만은 좋아했어요.그래서 질문을 하면 여석기[呂石基]선생님이 다른 학생이 질문하면 그렇게 질문하는 거 아니라며 공부는 했느냐며 바로 핀잔을 주시는데 제가 질문하면 질문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연극 같은데 관심을 많이 가졌었죠.

▶ 그러다 결국 PD가 되셨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하셨는데 김웅래 PD가 TBC코미디 프로그램 맡으시면서 인기를 좀 얻기 시작했습니까?

그때 기념비적인 김경태 PD 바로 밑에 졸병이 됐었죠. 그분 밑에서 제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거의 어깨 넘어 공부죠. 저런 상황에선 저렇게 하는구나, 저렇게 하니까 더 웃기는구나, 저렇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러면서 김경태 PD에게 배웠어요. 그분은 코미디의 소대장이고. 저는 그때 고(故) 박성원, 고영수, 임성훈 씨, 이런 친구들이 대학축제에 가서 웃기고 그랬는데 대학교에서 많은 인물들을 모았어요. 코미디 쪽에 김경태라는 큰 PD가 있으니까 저는 새로운 콘셉트로 새로운 코미디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구나 해서 '살짜기 웃어예'라는 개그프로그램을 만들었죠. 그때 을지로나 무교동 같은 무대에서 사회를 봤던 임하룡, 김학래, 손철, 김병조... 이런 친구들이 무대에서 뽑히게 된 거죠. 제가 그 친구들 일하는데 가서 칼피스나 홍차에 위스키 한 방울 집어넣은 위스키 티 먹으면서 재주꾼이 있나 보고 뽑아서 그런 새로 시작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개그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 '살짜기 웃어예'를 시작으로 생각나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었나요?

'젊은이의 토요일', '즐거운 토요일',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머 1번지'에서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죠. 한 십년동안 유지했던 것이 '유머 1번지'였어요.

▶ 그때 '유머 1번지' 많이들 보고 굉장히 즐거워했잖아요.

그때는 '유머 1번지'가 있었고, 요즘은 '개그콘서트'나 '웃찾사', '개그야' 이렇게 공중파 3사가 재미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즐겁습니다.많은 유행어들이 나왔었는데 요새는 유행어가 그전처럼 코미디프로에서 안 나오고 CF라든가 다른 쪽에서 많이 나와요. 그 당시는 코미디프로그램에서 유독 유행어가 유행됐던 시절이었죠.그래서 코미디프로그램을 안 보면 이튿날 회사에 출근해서 할 이야기가 없었을 정도로 '유모 1번지'때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했어요.

▶ 그때 유행어 중에 기억나는 것 있으세요?

그때 '회장님 회장님' 같은 데서 김형곤 씨가 했던 '잘될 턱이 있나' '잘돼야 될 텐데' 그런 거라든가 심형래, 장두석, 주병진, 엄용수, 최양락, 이성미, 조금산, 김한국, 이경애, 임미숙, 등 그 또래가 한참, 정말 신나게 연기했던 시절입니다.그 후로 감자골 4인방인 김용만, 김국진, 박수홍, 김수용을 비롯해 남희석, 유재석 이런 팀들이 나왔죠.

◇ 연출자의 임무는 숨어있는 제2의 감각을 찾아주는 것

▶ 코미디 프로그램을 하시면서 여러 코미디언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심형래 씨의 영구 캐릭터도 결국 교수님이 만드신 건가요?

제가 개그프로그램을 하면서 아이디어 회의가 고정화됐던 시초가 사실은 '유머 1번지' 초기였어요. 심형래 씨의 '주민등록증을 봅시다'하는 코너가 원래는 장두석 씨의 역할이었어요. 그때 심형래 씨가 갓 들어온 신인이었는데 딱 보니까 바보 같은 연기를 참 잘해요. 그래서 한 번 해보라고 똑같은 배역을 줬더니 장두석 씨보다 심형래 씨 하는 게 저는 더 웃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꽤 큰 역할인데 배역을 바꿨죠.

평소에 가만히 연기자들의 행동을 보면 그 성격과 캐릭터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연출자가 필요하고, 연출자는 숨어져 있는 제2의 개성과 탤런트를 찾아내는 역할이 사실 큰 임무거든요. 물론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야 하고, 딱 보고 연기자들의 숨어 있는 탤런트를 찾아내 주어야 하죠.

그다음부터 심형래 씨에게 바보역할을 줬는데 역할 상 바보지 평소 때는 굉장히 똑똑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한번 있었어요. '심형래 씨! 사전 녹화할 테니 준비해.' 그랬더니 녹화 들어가는데 안 보여요. 그래서 어디 갔느냐고 했더니 콘사이스(concise) 찾으러 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왜 콘사이스를 찾느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사전녹화 한다고 했잖아요.' 하면서 콘사이스를 찾으러 갔다고..... (웃음)

▶ 맹구 이창훈 씨는요?

'우리 집 식구는 아무도 못 말려'라는 연극을 대학로에서 보는데 그때 형사역할인가를 하면서 오버 깃을 딱 올리고 이창훈 씨가 무대에 등장하는데 관객이 웃는 거예요. 알고 보니 이창훈 씨가 몇몇의 펜들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더라고요.그날은 길게 얘기 못 하고 제가 KBS의 PD인데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다고 해서 KBS별관 쪽에서 만나 얘기를 했죠. 그런데 제가 코미디프로그램으로 들어오라고 했더니 딱 거절을 하는 거예요. 그때 최주봉 씨가 연극을 하다가 방송으로 들어왔을 땐 데 연극으로 들어와서 방송에서 성공 못 한다고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을 경력을 인정해 주고, 출연료도 얼마 주고,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뒷받침해주겠다고... 잘 설득해서 방송에 들어와서 성공한 캐릭터죠.

▶ 굉장히 웃겼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그만뒀죠?

가끔은 개인적으로 만나는데 얼마 전에도 농담 삼아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 그만 하세요. 맹구를 씻어버리려고 하는데 왜 자꾸 맹구 옷을 입히려고 그러세요...' 하더라고요. (웃음)얼마 전에 '둘이 타는 외발자전거'라는 연극도 하기는 했는데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가고 싶어 하죠.

▶ 유재석 씨도 발굴하신 거예요?

그 또래... 유재석, 남희석, 양원경... 제가 그때 코미디 PD이었으니까요. 물론 코미디 담당하는 사람들과 예능국 사람들과 대여섯 명이 함께 뽑지만 제가 늘 심사위원이 돼서 뽑고 배역도 주면서 같이 활동도 하고 그랬는데 유재석 씨야말로 늦깎이 연기자죠. 처음에 숱하게 많은 기회를 줬었어요. '이래도 안 뜨냐!' 할 정도로 KBS에서 끈질기게 기회를 줬죠. 그래도 안 뜨다가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에서 A팀, B팀을 나눠서 어떤 게임을 하는데 진행하는 재능이 있었던 거예요. 유재석 씨한테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할 수 있는 재치가 있었던 거예요.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에서 MC로 인정을 받으니까 거기서 이제 마음이 풀어진 거죠. 그렇게 자신이 생겨서 모든 프로그램에서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니까 숨겨져 있는 재능이 보이고, 남이 못 보는 얘기를 끄집어내고, 그렇게 프로그램을 완성도 있게 만드니까, 프로그램이 좋아지고, 시청자들도 좋아하게 되고 그랬지요.

▶ 본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재주를 끌어내기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대부분 방송은 못 기다려주잖아요. 일일 휴지 쓰듯이 하다가 안 되면 금방 버리고 그래서 손해를 본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그때도 유재석 씨나, 그나마 스타덤에 올라왔던 많은 친구들이 사실상 그 속에 어느 한줄기는 뭔가 재치가 있는데 그것을 꽃을 못 피우는 것뿐이라는 것 때문에 사실은 생명이 연장된 거지 전혀 아무것도 안 보였으면 뭐 낙오가 됐겠죠.

◇ 영구 심형래, 맹구 이창훈, 그리고 늦깎이 유재석

▶ 그런 재주를 발굴해주고 기다려주는 프로듀서를 만나는 것도 운이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부인하고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연이 돼서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신입PD이었을 때 대학축제에서 코미디를 하려면 기존의 작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대학에 있는 재주꾼들을 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각 대학을 찾아다녔어요. 그때 포니원이 처음 나왔을 때인데 그 포니원을 타고 시간만 남으면 대학을 뒤졌죠. 각 대학교의 신문사와 방송국을 뒤지면서 글 잘 쓰는 사람, 재주 있는 사람, 방송국 주관이라든가 방송국장을 하는 담당교수를 만나서 소개도 받고, 이야기도 하면서 대학에 숨어있는 인재들을 발굴하러 다닐 땝니다.그러다 숙대 신문사를 갔는데 김남조 교수님이 주관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재미난 글을 잘 쓰는 사람을 하나 소개시켜 달라고 그랬더니 한 학생이 글을 잘 쓴다면서 내일모레 방송국으로 보내 줄 테니 만나보라는 거예요. 그때 서소문에 TBC가 있었는데 딱 만나서 보는 순간에 소위 말하는 필(Feel)이 팍 오는 거예요. 저 여자가 참 좋다, 어떻게 저런 여자가 있나... 그래서 코미디프로그램에 대한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자기는 그 길이 아니라고 하면서 바로 거절을 하고 가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차라도 먹고 가라고 잡았죠. (웃음) 그 후로 괜히 숙대에 찾아가서 김남조 교수님하고 연관도 맺고, 비록 프로그램은 같이 안 했지만 남자가 끈질기면 여자가 귀찮아서라도 그래 가주마... 뭐 그런 쪽으로 이제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제가 좋아서라기보다 끈기에 져서 왔겠죠. (웃음)

▶ 구체적으로 어디가 그렇게 좋으셨어요?

그 당시에 저도 신입사원이고 그래서 아주 깊은 관계는 아니지만 여자 친구와 교제를 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집사람을 보는 순간 여러 가지로 딱 느낌이오는 생각이 들어서 사귀던 여자와 정리를 했죠. 뭐 총각 시절이니까 이런 얘기도 하지요. (웃음)집사람이 국문과 출신인데 학교 신문사에 재미난 콩트라든가 단편 같은 글을 많이 썼더라고요. 재치가 있어요.

▶ 지금도 글을 쓰세요?

지금은 한양여대 여성인력개발과 교수로 있습니다.

▶ 연애하실 때 상대방 여성을 웃기는 유머가 풍부하신 분이었나요?

평소에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사회과학적인 것, 수학공식, 증권...이런 건 잘 몰랐으니까 (웃음) 재미난 이야기는 줄 창 관심을 갖고, 뭐가 재미있나, 지난주에는 이런 걸 가지고 웃겼는데 이번에는 무엇으로 웃기나, 지난주에는 뭐가 재미없었는데 하면서 늘 반성하고...또, 모여서 이번 주에 웃길 것들을 생각하니까 머릿속에 남아있는 재미난 얘기들이 늘 있죠. 그럼 그런 것들을 데이트하면서 끄집어내서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거예요.멀어지려고 하면 웃겨서 잡아당기고... (웃음) 또, 멀어지려고 하면 웃음으로 거리를 당기고...

▶ 그래서 결혼까지 가셨군요. 지금 몇 남매를 두셨어요?

1남 1녀인데 작년 가을에 아들이 결혼했고, 그 전전 해에 딸도 결혼을 했습니다.

▶ 며느리도 보셨는데 집안에서는 어떤 남편, 어떤 시아버지세요? 며느님과도 우스운 이야기 하시나요?

애드립, 즉흥적인 것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뿐만이 아니고 집안의 아주 소소한 곳, 식탁에서라든가 응접실 같은 데서 혹은 집안모임에서도 상황이 많이 있잖아요. 그럴 때 즉흥적인 이야기로 분위기를 즐겁게 이어가죠.그런데 평소에 자식을 키울 때 거의 한 번도 욕을 안 했던 것 같아요.엄마가 싫은 소리 하고, 저는 점수를 따고.. (웃음)저는 긍정적인 얘기, 즐거운 얘기, 아주 실망적인 최악의 상황에 빠져서도 용기를 가지라는 얘기를 하죠. 절대 야단을 안 쳤거든요.

◇ 멀어지려고 하면 웃겨서 잡아당기는 연예의 기술

▶ 실제로 김웅래 교수님께서는 늘 인생에 대해서 낙관적이세요?

네, 저는 정말 낙관적인 것 같아요. 너무 낙관적이라서 걱정할 정도죠. 이렇게 낙관적으로 살아서 될 것인가 할 정도로 저는 모든 상황에서 우울하다든가 비관적인 생각을 안 갖습니다. 바로 상황을 바꾸죠.

▶ 고향이 어디세요?

DMZ 판문점 2㎞ 남방에 있는 자유의 마을 대성동이라는 곳이 제 고향입니다.대성동은 100m짜리 태극기가 서 있고 그 맞은편엔 기정동 마을이라고 2㎞ 건너편에 북한이 높은 깃발을 세워서 마주 보고 있는 그런 마을입니다. UN 사령부에서 헌병들이 관할하고, 지금 남아있는 한 50여 채의 가구들은 1.4후퇴 때 나오지 않고 고향을 지켰던 사람들한테 자격을 준거지요.

▶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나요?

네, 그리고 우린 인삼밭을 했어요. 6년째 되는 해에 인삼을 캐야 하는데 6,25 때문에 피난을 나왔어요. B29에서 폭탄을 쏟는데 목숨이 중요하니까 다 놔두고 피난을 나왔죠.저희는 서울로 나왔고 지금 남아있는 주민들은 전부 우리 친척들이에요. 다 친척들이기 때문에 가끔 기제사라든가 한식날, 아들, 딸 결혼식 때 가죠.농사 손이 모자라니까 데릴사위도 많이 해요. 문촌이나 금산 이런대서 데릴사위를 해서 들어가서 농토가 많으니까 정부에서 일할 수 있는 트랙터라든가 이런 것을 아주 싼 값에 줘서 아주 행복하게들 살고 있습니다.

▶ 거기는 증명서가 있어야 드나들지 않나요?

동네잔치 같은 경우는 당일 패스로 하루 들어갔다가 나오죠.

▶ 부모님은 서울에서 사셨어요?

네, 서울에서 사시다가 지금은 다 돌아가셨고 거기 가면 다 친척들이니까 가끔 가면 우리가 살던 집터도 그대로 있어요. 작년에 갔더니 집터에 고구마를 심어서 시커멓게 건강한 잎들이 쫙 깔려져 있더라고요. 제가 4살 땐가 5살 땐가 들어갔던 반공호 속도 기억이나요. 뒷동산에 반공호를 파고 들어가서 비행기가 지나가면 나오고 그랬죠.

▶ 저도 개그프로그램을 참 열심히 보는데 요즘에 개그맨들이 아이디어 회의 때 머리에 쥐가 난다고 그러더라고요. 옛날의 코미디언하고 요즘의 개그맨하고 세월 따라서 어떤 변화가 있는 것 같으세요?

과거에 소위 선배 코미디언들은 그때의 대본들은 창의적인 것은 좀 약했었고, 있었던 얘기들, 우리 옛날 얘기들, 고전 얘기들, 혹은 세계명작을 기본으로 대본을 만들고 연기력 위주로 했죠.후배들은 대본에 있어서는 보다 창의적이에요. 창의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생겼으니까 남의 것을 본떠서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일반화되어 내 생각을 해야 하는구나 그래서 대본을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 고민을 하는 것이죠. 대신 작가가 써주고 연출자가 보충해서 얘기해주는 것 이외에 애드리브가 많이 들어가니까 이제 연기력보다는 어떤 말이 주가 되는 그런 개그가 많이 유행됐죠.흐름으로 봐서 연기가 주됐던 것이 과거의 흐름이라면, 최근엔 말이 주된 개그의 시대가 되었죠.그러다 최근에는 복고조로 돌아와서 슬랩스틱코미디가 또 유행을 했어요. 최근에 '마빡이' 이후로 신체적인 웃음을 많이 선호하는데 사실은 양쪽을 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소재의 다양성이 사회적으로 허용이 되고, 그걸 좀 만족시키기 위해서 소재들이 행동이 주된 것도 있고, 말이 주된 것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 관심, 반성, 연습으로 이르는 개그의 완성

▶ 옛날에는 사실 건드리지 못할 소재들이 많았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건 많이 풀린 것 같아요. 30여 년 동안 코미디, 개그프로그램을 죽 하시면서 유머감각을 잘 갖추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평소에 웃음에 관한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집에 혹시 액자가 생겨서 액자를 걸어야 하는데 시멘트벽에 박을 못이 없으면 그 다음날 철물점에서 가서 못을 사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출퇴근 때 쳐다보지 않았던 철물점이 어디 있나 생각을 하게 되고 평소에는 늘 지나치고 눈에 띄지 않던 철물점이 보이게 됩니다. 관심을 가지니까요... 내가 내일 무슨 아이템을 해야 되겠다는 관심을 가져야 그 아이디어가 눈에 띄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는 수없는 아이디어가 지나다니는데 관심을 갖지 않아서 눈에 띄지 않을 뿐이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잡았으면 그걸로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합니다. 가끔 녹화 들어가기 전에 방송국 복도에서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를 많이 듣거든요. 그 사람들이 수없이 연습을 해요. 나가서 실수하지 않을 정도의 연습을 계속 하는 것이거든요. 많이 연습을 했는데도 웃지 않으면 왜 웃지 않았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이런 간단한 과정을 그냥 끊임없이 반복하고 마음을 즐겁게 갖고 그러면 유머감각을 갖게 되는 것이죠.그러면 저 사람은 유머감각이 있는 것 같아, 저 사람하고 얘기하면 지루하지가 않아, 저 사람이 그 모임에 나간다면 나도 가고 싶어... 그런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늘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늘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 합니다.

(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 5분에 방송된다. 정리(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이상원)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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