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나이쯤이야..' UCC 할아버지·영타 150 할머니

2007. 6. 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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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앞에 앉으면 으레 돋보기 안경을 쓰고, 굳은 손을 주무른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최근 정보통신부가 주최한 '어르신 정보화 체전'에서 만난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다 늙어서 무슨 컴퓨터냐'는 핀잔도 듣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던가.

#. "인생은 60부터…내가 멀티미디어의 선두주자"

올해 69세인 신현우 할아버지는 캠코더를 들고 정보화체전 대회장을 누볐다. 55세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UCC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신 할아버지는 자신을 "멀티미디어의 선두주자"라고 소개했다. 이번 대회에 출품한 작품의 주제도 'IT강국은 내가 만든다'. 그의 말처럼 촬영과 편집, 내레이션까지 1인 다역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 신현우 할아버지가 만든 UCC 'IT강국-내가 만든다' 보기

신 할아버지가 UCC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건 호기심 때문이었다. 퇴직 후 아들이 취미삼아 해보라고 건넨 캠코더가 황혼녘의 친구가 됐다. 처음엔 사람들의 뒤통수와 발등 찍기에 바빴다. 보여줄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필요없는 컷을 잘라내고 포토샵을 사용해 보기 좋게 꾸미니 한결 더 재미있었다.

친목회에서 등산을 갔을 때 찍은 영상은 인기 만점이었다. 힘겹게 산을 오르는 친구들의 모습을 찍어 DVD로 구워 다음 모임 때 공개했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촬영하느라 신 할아버지의 모습은 없지만 남을 즐겁게 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배우는 게 더디고 힘드니까 이걸 계속 해야 하나, 집어치워야 하나 갈등했지.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장하다는 생각을 해.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업이라 즐겁고, UCC 시대니까 여러 사람들이 내 동영상을 감상해준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이야."

밝고 좋은 일을 영상에 담겠다는 앞으로의 계획도 야심차다. 우선 한국전쟁(6·25)때 한쪽 팔을 잃고도 택시운전을 하며 열심히 생활하는 친구의 모습이며, 75세인데도 인라인스케이트를 멋지게 타는 친구의 이야기도 담을 생각이다. 그런 만큼 요즘의 인터넷 문화를 보면 답답하다. 특히 악성댓글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거 더러운 짓이야. 그거 없애야 해." 얼굴이 안 보인다고 욕을 하고 부정확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안 된다고 따끔하게 말한다.

신 할아버지는 노인들에게 디지털 카메라 다루기 등을 강연하며 방송국에 동영상 제보를 하기도 한다. 취미삼아 시작한 일인데 주위에서는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났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할아버지는 이날 대회도 끊임없이 캠코더로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 "시집살이 50년…컴퓨터 배우는 요즘이 제일 행복하다"

올해 76세인 오점녀 할머니는 인터넷 과거시험을 치르는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지역별 예선을 통과한 150명이 모인 자리니 이미 실력은 검증받은 셈이다. 긴장하지 않고 평소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게 관건일 터. 그런 점에서 할머니는 단연 눈에 띄었다.

예상점수를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빵점 맞을 것 같아. 상 받기 글렀어." 어르신 인터넷 과거시험은 정보검색과 문서작성 등 정보활용 능력을 평가하는데, 자신만만했던 문서작성에서 이런저런 실수가 있었다. "각주랑 꼬리말, 쪽번호까지 다 달았는데 문단 왼쪽 맞춤이 안 되더라고." 올해로 세 번째 참가하는 대회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없다. 그래도 오 할머니는 연방 싱글벙글했다.

"할아버지들이야 몇 십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신 분들이잖아. 나는 50년 동안 시집살이만 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기겠어. 그냥 1년3개월 동안 하루 1시간씩 꼬박 연습을 하니까 한글 타자든, 영어 타자든 150타를 치게 되더라고. 점수는 안 좋아도 그게 기분 좋잖아."

혼자 생활하는 오 할머니가 동네 복지관에서 자원봉사 학생들에게서 ㄱ,ㄴ과 알파벳을 배우며 익힌 결과다. 이메일로 편지 주고받기는 예삿일이다.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팔이 잘 올라가지 않는데도 타자 연습은 빼먹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닉네임인 돌틈꽃(돌 틈에 낀 꽃)과도 잘 어울린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지. 그 나이에 어떻게 탁~탁 키보드를 치느냐고. 이거 아무나 못해. 나같이 한 평생 엎어지고 쓰러져본 사람이나 할 수 있지. "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와 매정한 남편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컴퓨터를 배우면서 행복을 알았다는 할머니. 젊은이들에게 '심심풀이 땅콩'일지 모를 컴퓨터가 할머니에겐 소중한 친구다.

<미디어칸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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