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반환 10년](上)높아지는 민주화 열망

2007. 6. 18. 19:1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린 중국 아닌 홍콩인…정치자유 원해"

다음달 1일이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만 10년이 된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156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1997년 중국에 넘어간 홍콩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일국양제'라는 초유의 실험은 성공을 거둘 것인가. 전세계가 주목한 '화두'였다. 주권 반환 당시 '홍콩은 죽었다'고 단언했던 일부 서방 언론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잘못했다'고 꼬리를 내렸다. 지난 10년 동안 홍콩 경제는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타격으로 휘청하기는 했지만 이후 회복세로 돌아섰다. 홍콩 자체의 경쟁력이라기보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홍콩을 내버려둘 수 없는 중국 중앙정부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가능했다. 앞으로 40년 뒤 사회주의 중국에 편입될 홍콩의 장래도 관심거리다. 홍콩 현장 취재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현주소와 향후 전망을 세 차례에 걸쳐 집중 점검한다.

홍콩의 최고 명문인 홍콩대학은 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10시쯤 찾아간 홍콩대학은 50여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야 캠퍼스에 이른다. 등산을 하듯 숨을 헐떡이며 찾아간 중앙도서관 옆에는 '민주의 벽(民主墻)'이라는 이름의 게시판이 있었다. 게시판을 가득 메운 대자보에는 홍콩 민주화에 대한 홍콩대학 학생들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대학 학생회 집행부가 쓴 '홍콩인이 이겼다고요. 알란 렁(梁家傑) 선생'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가장 눈에 잘 띄었다.

지난 3월25일 홍콩 역사상 첫 야당 후보로 도널드 창(曾蔭權) 홍콩 행정장관에게 완패한 야당 범민주파 대표인 공민당의 알란 렁에게 격려와 분발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캠퍼스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의외로 처음 만난 이방인에게 "중국 공산당이 싫다"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공산당의 지배를 받는 홍콩이 싫다"고 밝힌 한 대학생은 "우리는 중국 사람이 아니라, 홍콩 사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륙에서 온 유학생은 홍콩과의 물리적, 화학적 통합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하얼빈에서 유학온 전자공학과 박사과정생 둥잉(동潁·여·27)은 "대륙과 홍콩의 교류와 접촉이 늘어날수록 상호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며 홍콩의 장래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홍콩 출신 학생들은 외국 유학을 떠나는 한편, 현재 박사과정의 90% 이상이 대륙에서 온 유학생들로 채워져 있다는 설명이다.

홍콩이나 중국에서 만난 대다수 홍콩 기업인들은 "홍콩의 민주화 요구는 찻잔의 태풍"이라며 "중국 중앙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가라앉힐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만난 홍콩 출신의 천란핑(陳然萍·여·33) 난광투자컨설팅 매니저는 "행정장관이 어떻게 되든, 누가 되든 돈버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최고"라고 말했다.

홍콩의 민주화 요구는 아직도 기대하기 힘든가. 홍콩은 해마다 6월4일이 되면 톈안먼(天安門)사태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집회를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고 있다. 중국에서 이단으로 찍힌 파룬궁(法輪功)도 버젓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2003년 7월1일에는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 기본법 23조에 국가안보를 위해 각종 규제를 할 수 있는 이른바 '홍콩판 국보법'을 추진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50만명이 몰려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전체 700만명 가운데 10% 가까운 인파가 몰려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당시는 사스의 여파로 300여명의 홍콩 사람이 숨진데다 경기 침체로 둥젠화(동建華) 당시 특구 행정장관의 행정 능력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이뤄졌다.

입사 이후 23년 동안 홍콩 정치를 취재해온 홍콩의 대표적인 영자신문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의 크리스 영 편집위원(47)은 "바야흐로 홍콩 사람들의 민주화 요구가 시작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민주화 핵심은 특구 정부의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을 현행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고, 입법기관인 입법위원(총 60명)의 절반을 직선으로 뽑는 것에서 모두 직선으로 바꿔 뽑자는 내용이다.

지난 3월 행정장관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도널드 창 행정장관은 "임기 5년내 2012년까지는 직선제에 대한 틀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전망이 밝지는 않다. 중국 중앙정부가 적극적인 직선제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화 바람이 중국에 부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앙정부가 바라지 않는 인물이 직선제로 선출될 경우, 부담도 만만찮다.

시사주간 타임은 반환 10년을 맞은 홍콩에 대해 '햇살이 구름 속에서 비친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홍콩은 늘 비가 내렸다가 그치는 궂은 날씨가 계속 이어졌다. 예측불가능한 홍콩의 장래를 함축해 보이는 날씨였다.

▲일국양제중국과 영국은 1984년 12월, 홍콩의 주권 이양에 합의하는 내용을 담은 '중·영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공동성명은 홍콩이 주권 반환 이후 50년 동안 '일국양제, 즉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 등의 원칙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영국과의 협상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일국양제' 원칙은 중국이 대만과의 '평화 통일'에 대비한 하나의 묘책이었다. '일국양제'에 따라 중국은 홍콩에 일정 기간 사회주의 체제를 강요하지 않았고, 홍콩은 자본주의 체제를 당분간 유지할 수 있었다.

▲홍콩기본법

'홍콩 기본법'은 홍콩을 위한 헌법이다. 홍콩과 중국의 전문가들이 기초한 초안을 중국 전인대(국회)가 심의 끝에 90년 통과시켰다. 기본법의 공식 발효는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97년 7월1일부터였다. 총 9장 160조로 구성된 홍콩 기본법은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의 선출과 입법회 위원 선출 등을 담고 있다. 기본법 제45조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보통선거로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못박고 있다.

〈홍콩|홍인표특파원 iphong@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미디어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디어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