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에 의한,소수를 위한 '학교'

2007. 6. 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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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내신강화의 그늘 / 하 -고민하는 교사 답답한 학부모

중학교 내신을 둘러싼 고민은 학부모와 학생만의 몫은 아니다. 교사들의 어려움도 간단치 않다. 학부모는 교사의 지도를 불신하고 사교육에 기댄다. 고교 입시에 대한 상담은 학원의 몫이 되어 버렸다. 학생들은 교사의 시험 출제와 채점이 항상 불만이다. 1점에 울고 웃는 학부모와 학생의 성화에 교사들은 지쳐간다.

교사들은 중학교에 드리워진 내신 경쟁의 짙은 그늘이 ' 중학교 교육의 혼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교 진학이 평준화 제도에 의해 이뤄지지만, 특목고 입시 때문에 사실상 평준화는 무너졌다. 정작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은 소수이지만 다수가 그 소수의 영향을 받고 있다. 중학생들이 학원 등 사교육 의존 비율이 가장 높은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중학교에서 누구를 상대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방향을 잡기 힘들다."특목고 입학생 배출 1~2위를 다투는 서울 목동의 한 중학교 교사의 말이다.

전교 등수를 알고 싶어하는 학부모의 요구에 '타협'하는 중학교가 많은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서울 강동구 ㅂ중학교는 성적표에 전체석차를 따로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성적표가 배부된 다음에 학부모의 '항의성' 전화를 받는 게 다반사다. 들쭉날쭉한 과목별 석차로는 자녀의 위치와 수준을 가늠할 수 없는 학부모들이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이 학교 권아무개 교사는 "전체석차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학생들 지도에 소홀하다고 여기는 학부모들이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전국의 모든 학교가 동일하게 쓰고 있는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성적산출시스템에는 전체석차를 계산하는 칸이 없다. 상당수 학교에서는 '개별 가정통신문' 항목에 반석차와 전교석차를 교사가 수기로 기입해 제공한다. 학부모들을 위한 교사들의 '배려'이지만, 내신경쟁에 대한 '굴복'인 셈이다.

그러나 전교석차로 아이의 학업 수준을 이해하려는 것은 맞지 않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경기 안산시 ㅅ중학교 김아무개 교사는 "3학년 내신성적을 낼 때 과목별로 수업시수(일주일에 진행되는 총 수업시간)에 따른 가중치가 부여된다"며 "시험볼 때마다 나가는 전체석차는 모든 과목을 같은 비중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고교 입학때나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최종 성적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매 시험마다 나오는 전체 석차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과목별 석차를 통해 과목별 약점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학습계획을 세워 지도하는 게 자녀에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마다 시험 난이도를 놓고 겪어야 하는 갈등도 해결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수우미양가' 성취도 평가를 하지 않고, 과목별로 석차 평가를 하기 때문에 동석차가 많이 나오면 그만큼 원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의 ㅅ중학교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수학 만점자는 64명이다. 과학도 비슷하다. 3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과학고 원서를 내려면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적어도 7%안에 들어야 하는데 1등을 하고도 10%에 못드니 엄청난 손해"라며 "선생님들이 시험을 출제하면서 변별력 확보에 실패했다"고 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중학교생에게는 학습 동기를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기 안양시의 ㅇ중학교에서는 1학년 사회과목의 만점자가 전체 500여명 가운데 100명을 넘었다. 이아무개 교사는 "상위권 학생들만을 염두에 둘 수 없기 때문에 다수를 위한 동기부여의 기회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물론 동석차를 막을 방법은 있다. 생활기록부 기재를 위한 성적 산출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합산해 학기별로 하기 때문에 기말고사 난이도 조절을 통해 교정이 가능하다. 일부 학교에서는 소수점까지 점수를 내는 방법으로 동석차를 막는다. 서울 노원구 ㅅ중학교의 한 교사는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들에 맞춰 시험을 낼 수는 없다"며 "석차보다는 과목별 점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학업성취도를 판단하고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특목고 입시를 위해 석차 관리를 해야 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위안'이 되지 않는다. 중학교 내신의 성적 표기가 학업 성취도보다는 석차 중심인 이상 시험에 대한 학부모의 불신은 쉽게 사라지기 어렵다.

내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행평가는 교사들에게도 부담이다. 서울 은평구 ㅅ중학교 정아무개 교사는 "숙제 형태의 수행평가를 학부모가 대신 해주는 등 일부 부정적인 사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부터 수업시간에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등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노원구 ㅅ중학교 고아무개 교사는 "대부분의 수행평가는 기본점수를 주기 때문에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성적 향상의 효과로 나타난다"며 "노트필기나 복사물 정리 등을 점수화하면서 중하위권에게는 공부의 기본기를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아직은 소수라고 해도 '고입 경쟁'은 이제 현실이 되었고, 중학교는 그 경쟁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고교는 항상 우리의 관심권에 있다. 대입이라는 목표가 그만큼 중요하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중학교는 상대적으로 덜하기 대문에 관심권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그러나 중학교가 겪고 있는 혼란을 더이상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제 중학교 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다.

'학원 강박증' 버리셔도 좋습니다!

전교 30등에서 1등 꿰찬 중3 형석이의 '달라진 1년'

" 교과서를 3번 정도 봤어요. 한번만 보면 놓치는 것도 있고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더라구요."

서울 노원구 상계중학교 3학년 김형석군은 1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30등 안팎을 오가던 성적이 드디어 정상에 오른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상위권 그룹에서 최상위권으로 30계단을 단숨에 뛰어오른 형석이가 벼린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지난해 형석이는 시험보기 전에 교과서를 한 번 정독했다. 꼼꼼히 보다보니 국어처럼 시험범위가 많은 경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한달전부터 시험준비태세에 돌입했지만 보름 가량 국어만 붙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전략을 바꿨다. 한번은 통독하고 두번째는 중요하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표시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표시했던 부분을 확인했다.

작년엔 학교에서는 '꾸벅' 시험볼땐 '실수'올해엔 학우너 끊고서 집중력 '쑥' 성적도 '쑥'

국어나 과학은 교과서와 자습서를 비교하며 봤다. 사회는 문제집에 교과서를 벗어나는 내용이 많아 크게 참고하진 않았다. 선생님이 나눠준 복사물이 교과서를 해설해주기 때문에 차라리 그것을 봤다. 교과서를 반복해서 보고 자습서와 복사물로 공부한 내용을 재차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줄었다.

교과서를 세 번이나 볼 수 있었던 것은 학원 수업을 끊은 덕이었다. "2학년 때는 학원 때문에 잠을 많이 못잤어요. 늘 몸이 무거웠고 수업시간에도 많이 졸았죠." 지난해 형석이 성적표에는 100점이 없었다. 시험이 아무리 쉽게 나와도 하나씩 꼭 틀렸다. 특히 수학이 심했다. 부호가 틀리고 문제를 잘못 읽었다. 2학기말 수학 성적 87점. 새벽에 끝나는 학원수업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올초부터 학원을 끊고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을 찾았다. 잠도 충분히 잤다. 엄마가 깨워야만 일어났는데 언젠가부터 혼자 일어날 수 있게 됐다. 밤에 충분히 자니까 수업시간에 집중하기가 쉬웠다. 학원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는 친구들이 책상에 엎어져 잠들어 있을 때 형석이는 깨어 있었다. 선생님이 그때 흘린 국어 서술형 문제의 힌트를 받아 챙겼다. 중간고사때 친구들이 다 틀린 문제를 그렇게 맞힐 수 있었다. 이번 시험은 검토할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검토를 통해 틀릴 뻔했던 수학 한 문제를 건졌다.

어머니 백금현(41)씨의 변화도 형석이의 공부를 도왔다. "작년에 형석이는 가방을 메고 청소를 했대요. 한자리에 집중해서 있지 못하고 불안해한다는 말씀을 선생님께 전해 듣고 내 탓이구나 싶었어요." 지난해 백씨는 형석이 성적이 뜻대로 오르지 않자 마음이 불안해졌고 자꾸만 형석이를 채근했다. 10분마다 방문을 열고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졸고 있는 형석이에게 매운 꾸지람이 이어졌다. 시험 때면 형석이와 엄마는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백씨도 달랐다. 중3이나 된 애한테 지나치게 간섭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간식만 챙겨주고 방해꾼 둘째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괜한 신경전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몸을 낮췄다.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만 신경을 썼다.

형석이는 중간고사에서 영어 1개, 한문 1개를 틀렸다. 총 8과목 중에 6과목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다. 선생님은 형석이의 성적표에 '1/38, 1/498'이라고 썼다. 전체석차의 의미가 예전같지 않지만 그래도 1등은 기분이 좋다. 학원대신 학교를, 기출문제집 대신 교과서를, 과외선생님 대신 학교선생님을 무기로 삼았던 결과다. "기말고사도 똑같이 한번 해보려구요." 형석이의 기말고사 성적이 궁금해진다.

'앞서가는 학원' 맡겨도 '뒤처지는 아이' 어쩔꼬?

학교시험 준비의 3원칙

곧 기말고사다. 학원은 늘 앞서간다. 1학년 겨울방학에 2학년 1학기 선행수업을 하고 2학년에 올라가선 시험치기 한달전부터 시험대비를 한다. 먼저 한다고 제대로 아는 건 아니지만 부모들은 내 자녀를 남보다 앞세우기 위해 학원에 기댄다. 학교수업보다 늘 앞서가는 학생들이 태반이지만 그들의 성적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왜 그럴까?

◆ 출제자는 학교 교사다

"수업시작 5분, 수업종료 5분이 제일 중요합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여중 과학과 김찬우 교사는 수업시간에 강조하는 모든 내용을 수업시작과 끝에 갈무리한다. 수업시작과 동시에 전 시간에 배웠던 개념을 복습하고 종료를 5분정도 앞두고는 당일 배웠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시험 출제 예상 문제들이 쏟아지는 시간이다. 학생들이 학원보다 학교수업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출문제에 기대는 것도 한계가 뚜렷하다. 김 교사는 시험문제를 출제한 뒤 기출문제나 자습서 등을 훑으면서 비슷한 문제부터 뺀다. 교사들이 출제를 이렇게 하다 보니 학원들이 시험대비에 활용하는 자료에서 똑같은 문제가 나올 리 없다. 학원의 예측보다 교사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예상이 더 정확할 수 있다. 김 교사는 "7차교육과정부터 교사들은 교과협의회를 통해 문제를 공동출제하고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심의까지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집에 나온 문제를 그대로 베끼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 학교시험에는 기본 점수가 있다

"기초학력만으로도 풀 수 있는 문제를 20% 정도 배당해 출제합니다." 같은 학교 수학과 오지은 교사의 난이도 배분은 2:3:3:2다. 기초연산실력만 있으면 풀 수 있는 문제, 교과서 기본문제 수준, 교과서의 종합문제 수준,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사고력을 요하는 '도전문제'까지 학생들의 다양한 수준을 고려해 문제 출제를 한다. 교과서만 열심히 보면 80점은 맞을 수 있는 구성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에서 내주는 심화문제에 허덕이다 학교시험이 거저 내주다시피하는 기본점수를 놓치고 만다.

다른 교사들의 출제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 중, 하의 학생 수준을 고려하거나 교과서 내용을 기본, 활용, 심화로 나누어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게 보편적이다. 오 교사는 "공부는 기초부터 심화까지 단계별로 하는 게 좋다"며 "우선 기본개념을 묻는 문제를 풀고 그 다음 중간정도 되는 연습문제, 마지막으로 사고력이 필요한 심화문제를 풀면 이해가 쉽다"고 했다. 학교시험이 주는 기본점수를 다 받으려면 자기 수준을 파악하고 수준에 맞는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

◆ 교과서가 문제은행이다

모든 문제의 뿌리는 교과서에 있다. 교사들의 일차적인 수업도구가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나온 문제가 약간의 변형을 거쳐 출제(그래픽1 참조)되거나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이 문제화(그래픽2 참조)되는 게 기본이다. 서술형은 특히 더 그렇다. 수학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문장이 식으로, 식이 문장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그래픽1-1 참조). 과학은 그림으로 된 실험과정을 서술형으로 바꿔 묻기도 한다(그래픽2-1 참조). 잡다한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것보다 교과서로 이해의 뼈대를 세우는 게 시험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그밖에 교사들이 수업에 활용하는 여러 자료들도 중요하다. 흔히 '프린트'라고 부르는, 교사들이 직접 작성한 교과서외 자료들은 교사가 애용하는 시험출제 자료다. 최근에는 각 시도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습도우미 사이트를 활용하는 교사들도 많다. 현직교사들이 직접 개발해 출제한 문제들이며 학생과 학부모는 무료로 모든 자료를 쓸 수 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의 정기고사는 학교 교사가 직접 출제하는 시험이다. 교사와 출제자가 달라 출제방향이나 방식을 가늠할 수 없고 사교육의 여지가 있는 수능과 같은 대학입학고사가 아니다. 학교 시험은 수업내용을 바탕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문제를 출제하는 시험이다. 이를 무시한 채 학원 등에만 기대는 지나친 교육열이 외려 자녀의 학습부진을 낳을 수도 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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