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날씨처럼 기류안좋다" 에 웃던 아소 '싸늘'

2007. 4. 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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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중-일 3국 외무장관회담이 6월3일 제주에서 열린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은 지난 3월31일 제주 서귀포 신라호텔에서 외무장관회담을 열어, 한국이 추진 중인 3국 외무장관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김재신 외교부 아태국장이 전했다. 송 장관은 1일 3국 외무장관회담에서 "동북아 질서와 3국의 역내 및 역외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3국 외무장관은 아세안(ASEAN)+3 회의 한켠에서 회담을 열어 왔으나, 별도 회담 개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올해 1월 필리핀 '아세안+3' 회담에서 이 회담을 제의했고, 중국은 이미 동의한 상태라고 김 국장은 밝혔다. 이 회담은 중국의 급부상이란 새 변수를 안은 채 일본의 역사인식 등으로 겹겹히 얽힌 동북아 3국이 새로운 단계로 함께 나아갈 수 있을지 큰 질문을 던진 셈이다.

두 장관은 또 이번 회담에서 2003년 이후 중단된 양국 안보대화를 5월부터 개최하고, 일본이 새로 제안한 '한-일 북미국장 대화'를 곧 열기로 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미국장 대화에 대해 "일본이 한-미-일 동맹 강화와 중국 견제라는 포석으로 제안했을 수 있지만, 우리쪽에서는 한-미, 미-일동맹과 관련된 정보교환, 양국의 대미관계 협의 등을 고려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일본의 제안은 한국이 이미 중국과 북미국장 대화를 열고 있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제주 한일 장관 회담은 돌풍과 호우 속 '결렬 위기'를 뚫고 강행됐다. 최근 일본 정부 고위 지도자들의 잇단 위안부 강제 연행 부인 발언으로 높아진 역사적 긴장은 회담장을 짙은 안개처럼 감쌌다.

송 장관은 31일 회담을 시작하면서 "미래를 향한 의지가 역사 인식 문제로 앞으로 나가기 어렵게 돼 있다. 오늘의 날씨처럼 (한-일관계) 기류가 좋지 않다"며 작심한 듯 강한 어조로 일본의 역사 인식을 겨냥했다. 굳은 표정의 송 장관과 달리 활짝 웃는 얼굴로 회담 테이블에 앉았던 아소 장관의 얼굴에서도 곧 웃음이 사라졌다. 회담장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송 장관은 회담 뒤 "군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지도자들이 잘못된 발언을 하고 있는 데 유감을 표명했다. 역사 인식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인데, 굴곡된 거울을 통해 올바른 미래를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본 고교 교과서 검정 발표와 관련해 우리는 그릇된 역사인식을 토대로 한 교과서는 한일 관계는 물론 역내 및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위치와 역할, 나아가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아소 외상 "아베 총리가 고노담화 계승…한일FTA 협상 재개하자"

일본 쪽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소 외상은 "아베 총리가 3월26일 국회에서 고노담화를 계승하고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발언을 그대로 인용했고, A급 전범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 문제는 "신사가 결정하는 것으로 정부가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했다고 일본 외무성의 사카바 미쓰오 외무보도관이 전했다. 일본쪽은 "교과서와 독도(다케시마) 문제가 나왔는데 우리가 독도에 대한 우리 입장을 얘기했고, 국정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일일이 관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아소 장관은 "역사와 정치는 분리해서 해나가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 양쪽은 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조기 출범을 위한 위원장간 협의를 이달 중 개최하기로 했다. 일본은 또, '21세기 동북아 청소년 교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앞으로 5년간 한국에서 매년 중·고·대학생 1000명씩을 10~14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에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아소 외상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재개하자고 제의했으며, 송 장관은 "높은 수준의 한일 FTA가 맺어질 수 있도록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며 일본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한·일은 2003년 12월~2004년 11월 6차례의 FTA 협상을 벌이다 중단한 상태다. 관심이 됐던 한일 정상회담 개최 문제는 최근 한일간 긴장 상태를 반영한 듯 논의되지 않았다.

북핵 6자 회담에 대해 송 장관은 "6자외무장관 회담은 60일 이내의 초기조처가 시행되고 나면 앞으로 비핵화, 불능화 과정을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관련국 관계정상화, 지역 다자안보대화 수립을 공고히 하는 측면에서 6자외무장관 회담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 두 장관이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의 사카바 외무보도관은 "송 장관은 지난달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한국이 북한에 한국인과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말했으며, 아소 외상은 한국이 남북대화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납북자 문제에 매달려 6자회담 등에서 외톨이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해, 일본이 고립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31일 밤 3시간에 걸쳐 진행된 만찬 회담에서 송 장관과 아소 외상은 술잔을 마주하면서 중동 정세와 한중일 에너지 외교 협력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한일 외교부 아중동 국장급 회의도 열기로 했다. 또, 중국 경제상황 등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1일 오전 두 장관은 굵은 빗줄기가 계속 쏟아지는 가운데 각각 우산을 받쳐들고 호텔 정원을 산책한 뒤 헤어졌다.

서귀포(제주)/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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