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삵

2007. 2. 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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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공의 적'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안티 모범생이기 때문이다. 법과 원칙에 충실해야 할 검사와 경찰이 적당히 '나쁜 인물'로 묘사되면서 오히려 그 용기와 솔직함이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법보다 주먹을 앞세우는 인물이 갈채를 받는 것은 그만큼 '공공의 적'이 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소설가 김동인은 일찍이 그같은 인물을 1933년 발표한 소설 '붉은 산'에서 만들어낸다. 주인공 '삵'이야말로 안티 모범생 캐릭터의 원조일 듯싶다.

일제시대 한민족의 비애와 독립 의지를 담은 이 소설의 배경은 만주 벌판의 조선인 소작인 마을. 평소 성격이 패륜아에 가까운 삵은 사람들의 미움과 저주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소작료를 적 게 냈다는 이유로 송 첨지라는 인물이 만주인 지주에게 맞아 죽 으면서 극적 반전이 시작된다. 다음날 동구 밖에서 삵이 초주검 상태로 발견된다. 그는 죽어가면서 붉은 산과 흰 옷을 찾으며 애국가를 불러달라고 애원한다. 삵은 홀로 만주인 지주를 찾아가 그 를 해치고 죽음을 맞은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삵은 불의에 맞서지 못하는 다수의 비겁함을 일 깨우며 용기를 앞세워 '민족의 적'을 응징하는 상징으로 각인 되었다.

그런 이미지의 동물인 삵이 최근 수난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2년반 동안 지리산 주변 4개 도로에서 차량사고로 죽은 야생 동물, 즉 로드킬(road-kill)을 조사한 결과 삵이 법정보호동물 중 가장 많이 희생됐다. 모두 311마리가 죽었는데 삵이 103마리 이고 이어 천연기념물인 소쩍새가 102마리였다.

진정한 용기와 날렵함의 상징인 삵이 많은 생명을 살상하는 자동차를 퇴치해야 할 '공공의 적'쯤으로 보고 달려든 것은 아닐까.

교통사고는 자동차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원죄' 때문에 교통사고의 책임 역시 보행자보다는 주의 의무를 게을리한 운전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로드킬도 마찬가지일 듯싶 다. 지리산이야말로 원래 야생동물의 안방이었다. 도로가 나고 차량이 등장하면서 로드킬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인간과 자동차에그 책임을 우선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다.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사는 상생의 묘책을 찾지 못한다면 인간과 자동차는 생태계의 또 다른 '공공의 적'일 수 있다.

[[김영호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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