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레슬링, 아직 죽지 않았다구요" [MD인터뷰]


[마이데일리 = 이석무 기자] "한국 프로레슬링, 아직 죽지 않았어요"
1960~70년대 한국 프로레슬링은 최전성기를 누렸다. '박치기왕' 김일이 일본 및 서양 선수들을 잇따라 쓰러뜨릴때마다 흑백텔레비전으로 통해 경기를 지켜본 국민들은 잠시나마 힘든 생활을 잊고 기쁨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프로레슬링은 1970년대 후반 프로레슬링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점차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거기에 80년대 들어 각종 프로스포츠들이 활발하게 출범하고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이 강한 미국 프로레슬링이 소개되면서 한국 프로레슬링은 잊혀진 스포츠가 됐다. 물론 지금도 이왕표나 역발산과 같이 고 김일 선생의 제자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이들 역시 50의 나이를 넘겨 더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프로레슬링 무대에 실제로 서는 선수는 다 합쳐봐야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부분 나이 든 선수들이라 팬들이 기대하는 화려한 기술을 펼치는 것이 무리다. 프로레슬링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말그대로 꿈일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프로레슬링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젊은 주역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상에는 두 젊은 프로레슬러의 경기 모습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지난 해 11월 30일 고 김일 선생의 추모대회인 'WWW 히어로 포에버(Hero Forever)'대회에서 열린 '아이언맨' 윤강철(28)과 '악역레슬러' 김남훈(33)의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윤강철과 김남훈은 마치 실제 싸움을 연상시키는 과격한 동작과 몸을 아끼지 않는 화려한 공중기, 종합격투기를 연상시키는 그래플링 및 서브미션 기술을 펼쳐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한국 프로레슬링은 시시하다'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팬들은 그 경기를 직접, 혹은 동영상으로 본 뒤 '국내에도 이렇게 경기를 할 수 있구나'라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그 경기는 격렬했다. 몇차례 화려한 공중기술을 과시한 윤강철은 경기후 오른쪽 내측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고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지금까지도 부상 재활에 몰두하고 있는 신세다. 경기가 끝났을때는 몰랐는데 경기장을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너무 아파 그냥 푹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고.
▲ 파란만장한 프로레슬러의 인생
프로레슬링을 일컬어 '액션오페라' 혹은 '스포츠오페라'라고 한다. 프로레슬링의 가장 큰 특징은 경기에 스토리가 가미된다는 점이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젊은 기수인 윤강철과 김남훈은 프로레슬링 스토리 만큼이나 개인적으로도 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원래 합기도를 수련한 윤강철은 체대 재학시절 본격적으로 프로레슬링을 접한 뒤 그 매력에 빠져 이 길에 접어들었다. 화려한 조명을 받고 신체를 단련하며 서로 기술을 주고 받는 모습에 반했단다. 수년간의 직업군인 생활을 마친 뒤 프로레슬링의 본고장인 멕시코로 프로레슬링 유학을 갔다왔다. 지난 해 2월 지상파 TV에서 생중계 된 국내 프로레슬링 대회에서 미국 TNA의 빅스타 AJ 스타일스, 크리스토퍼 다니엘스와 3자대결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윤강철은 이후 시련을 겪어야 했다. 체육관, 헬스클럽 등 여러 사업을 시도했지만 모두 어그러지면서 갈 곳없는 신세가 됐다.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찜질방에서 김밥 3줄로 하루 세끼를 때우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 "그때 이후 위가 쫄아 고기를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라고 말할 정도였다. 어두운 세계로 오라는 제의도 있었지만 그래도 프로레슬링을 계속 하고 싶다는 열정때문에 거절했다고.
김남훈은 프로레슬러 이전에 '라디오 DJ' 혹은'IT컨설턴트', '책저자' 등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20대 중반의 나이에 어려운 길에 들어섰다. 이전에 이렇다할 운동경험이 없었지만 열정을 갖고 경기에 치르며 악역 레슬러로 스스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과천경마장에 운집한 2만명의 대관중 앞에서 경기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2005년 2월 훈련 도중 링밖으로 거꾸러 떨어지는 큰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하반신 마비로 무려 6개월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퇴원한 뒤에도 한동안 정상적으로 걷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고 다시 링에 올라 프로레슬링 팬들과 관계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 힘든 프로레슬링 '그렇기에 더 포기할 수 없다'
지난번 둘의 경기에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윤강철은 시력이 0.1 정도밖에 안될만큼 눈이 나쁘다. 톱로프에서 몸을 날리려 할때 상대 선수가 잘 안보일 정도다. 어쩔 수 없이 운에 맡겨야 한다. 공중기를 시도할때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떨어져 큰 충격을 받는 경우가 많단다.
때문에 윤강철은 아예 자신의 피니쉬기술 이름을 '대포동 1호', '대포동 2호'로 붙였다. 위력은 세지만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뜻으로 주변에서 우스개소리 한 것을 아예 기술이름으로 붙였다.
이들은 지금 프로레슬링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포기할 수 없다. 윤강철은 "사라져가는 프로레슬링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을 갖고 있다. 힘들고 어렵지만 '링위에서 목숨을 건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은행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세계 최강의 프로레슬러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윤강철의 오른쪽 인대를 끊었으니 다음 경기에서는 왼쪽 인대도 끊겠다"고 프로레슬러 답게 큰소리를 친 김남훈은 "앞으로 팬들이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UCC 형태로 프로레슬링의 멋진 앵글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또 윤강철과 함께 일본 프로레슬링과 종합격투기에도 진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금은 우울하지만 이들이 보는 미래는 밝다. 언젠가는 멕시코, 일본 처럼 프로레슬링이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재도약할 것이라는 희망이 이들을 사각의 링으로 이끌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희망 김남훈(왼쪽)과 윤강철. 사진=이석무 기자/ 지난 11월 WWW 히어로포에버 당시 두 선수의 경기 모습. 사진=디시인사이드 프로레슬링 갤러리]
(이석무 기자 smle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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