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때려치고 목수 할까

2007. 1. 1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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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내가 만든 건데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1m짜리 책꽂이 2개…배우기 쉽고 여자라면 더 도전해볼 만한 DIY 가구 세계로 초대합니다

▣ 글·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해 9월 북극 출장을 다녀오니 베란다며 집안 곳곳에 이삿짐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5년간 같이 살던 장인 장모가 새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한 집 살림이 나가며 비워진 안방에는 거실에 있던 아내의 화실이 들어갔다. 거실이 새로 생겼다. 가구가 필요했다. 이때다 싶어 아내한테 책꽂이를 만들겠다고 했다. 줄자로 거실 크기를 재고 종이에 스케치를 했다. 사방 1m짜리 책꽂이 2개.

거실이 생기고, 기회가 오다

공구는 그럭저럭 있는데 작업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집이 15층이라 전선을 이어 옥상에서 일하곤 했는데, 몇 달 전 관리소에서 잠가놨다. "애들이 떨어져 죽거나 나쁜 짓을 할 수 있다"며 열어줄 수 없단다. '어쩐다' 하면서 몇 개월째 잠자고 있던 공구에 기름칠을 하다 문득 생각이 났다. 그래, 반쪽이 공방!

"예전에 전화한 적 있는데요, 기억 못하실 겁니다. 한겨레 류우종입니다. 반쪽이 최정현 선배 소개로…."

"아, 네, 기억납니다. 꼭 요맘때였죠."

"책꽂이를 만들려고 하는데, 장소가 필요해서요."

"가능해요. 언제 오실 수 있는데요?"

"지금 가도 되나요?"

"여기 재료와 공구 다 있으니까 몸만 오세요."

공방 대문에는 '내 가구는 내가 만든다'라는 구절이 나무 패널에 쓰여 있다. 옆에는 공방 시간표가 붙어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글자까지 나무로 돼 있다. '왱~왱~, 뚝딱뚝딱, 싹~싹~싹~.' 공방 안에선 대여섯 명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야말로 환상이다. 공구 상가에서 봤던 것들이 여기 다 모여 있다. 저걸 다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흥분이 된다. 미완성된 책상, 의자, 수납장, 작업대며 45도를 자를 수 있는 전기톱, 거기다 짙은 나무 향기….

공방장 박재규씨한테 내가 스케치한 것을 보이며 뭘 만들지 얘기했다. 공방장이 다시 연필로 쓱쓱 3단 책꽂이를 그려 보인다. 내가 스케치한 것에 '1M'이라고 쓴 것을 두 줄 쳐 지우더니 '1000'이라고 고친다. '18cm'도 '18T'(thickness)라고 고친다.

"밀리미터 단위를 쓰세요. 1밀리미터 오차도 무지 크거든요."

"예쁘게 될까요?"

"예쁘게 만드셔야죠. 나무 재단은 제가 하고, 칠하고 조립하시면 됩니다. 전기톱이 위험해서 재단은 제가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를 드릴게요."

작업순서와 주의사항을 공방장이 계속 들려준다. "나무는 홍송 집성목을 쓰고, 재단하고 나면 가구 안쪽에 들어가는 면에 페인트칠과 사포질을 한 뒤 바니시를 칠해요. 주의할 건 절단면에 페인트나 바니시를 칠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다음은 뒤판이 들어갈 홈을 파고 조립하면 됩니다. 참, 장갑은 끼지 마세요. 오히려 더 위험해요."

장갑은 끼지 마세요

'윙~윙~, 왱~!' 전기톱 소리와 나무 향기가 나더니, 순식간에 도면에 적은 치수대로 재단이 됐다. 빈 작업대로 옮기고 톱밥을 털어냈다. 나무 표면이 이미 샌딩이 돼 있어 만질만질하고 결도 예쁘다. 페인트는 회색으로 결정했다. 칠을 하는데 공방장이 "너무 두꺼워요. 얇게 칠하세요" 한다. 페인트 냄새 대신 향긋한 오렌지향이 난다. 천연 페인트는 두어 번만 칠해도 투명하고 예쁜 색감을 낼 수 있고 건조가 빨라 DIY(Do It Yourself) 가구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즐겨 쓴다. 유독한 화학 페인트와 달리 환경친화적인 성분 때문에 어린이용 가구에 종종 사용된다.

칠 다음은 사포 작업. 칠한 면이 마르면 샌딩을 한다. 페인트가 수성이라 칠한 면이 부풀어 오르는데 이때 생기는 거스러미를 가벼운 사포질로 없애는 작업이다. 에어 브러시로 표면을 청소하고 바니시로 마감. 바니시 역시 수성이다. 마르고 나면 일상적인 방수는 된다고 한다. 역시 천연 재료라 냄새가 없고 빨리 마른다. 다음은 뒤판용 홈파기. 뒤판(미송합판 5mm)이 들어갈 자리로 측판의 뒷부분에 트리머를 이용해 6mm 너비, 깊이의 홈을 판다. 공방장이 시범을 보인다. 밀착하는 것이 포인트. '뜨르륵 뜨르륵.' 이내 일정한 홈이 생긴다. 예전에는 트리머가 없어 그냥 뒤판을 못으로 박았다.

자, 이제 조립이다. 먼저 선반이 붙을 자리를 측판 내부에 표시하고, 못을 박을 자리는 측판의 외부에 표시한다. 측판 내부의 연필선에 맞춰 선반을 나사못으로 결합한다. 외부 못 자리에 이중 비트가 달린 드릴로 구멍을 뚫고 나사못으로 박는다. 이때 클램프로 고정해 흔들리지 않게 해야 작업이 수월하다. 예전에는 딸아이나 아내가 잡아줘서 했는데….

직각으로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등이 따뜻해지면서 이마에서 땀이 난다. 직각도 중요하지만 모서리를 정확히 맞추고 깊이도 일정해야 한다. 예전에 대충 했던 부분들이다. 이내 나사못 박기가 끝났다. 이쯤 되면 80% 완성. 다음으로는 못 자리를 다월(나무못)로 막기다. 이 역시 공방장이 시범을 보인다. 엇, 감쪽같다! 우선 못 자리에 오공본드를 땀 한 방울 정도 넣는다. 그리고 나무못을 꽂고 쇠망치로 박는다. 그다음 튀어나온 나무못을 플러그 톱으로 잘라낸다. 근사하게 형태가 나온다. 자꾸 모서리에 손이 간다. 내가 만든 건데 믿기지 않는다. 완벽하다. 다시 사포 작업. 모서리 부분을 손사포로 다듬고 외부 샌딩은 전동공구를 이용했다. 나무못으로 막은 부분과 노출된 마구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사포질한다.

나무로 직접 만든 벽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오전 11시 반에 와서 밥도 안 먹고 종일 서서 작업해선지 다리가 아프다. 긴장하고 있었던지 갑자기 허기와 피로가 몰려온다. 나머지 작업은 이튿날로 미루고 작업대를 정리했다. 몇 시간 같이 있었을 뿐인데 작업대며 드릴, 트리머, 기계 소리, 사람들 모두 익숙해진 느낌이다. 자꾸 책장에 손이 간다. 매끄럽고, 정말 뿌듯하다. 퇴근하는 공방장을 꼬드겨 공방 앞 통닭집에 갔다.

아내 돈 좀 날린 '아픈 과거'

"잘하시는데요. 어디서 배우셨어요?"

"아뇨…. 사실 저 돈, 시간 무지 많이 투자했습니다. 결혼 전에 왜 남자가 집 마련하고 여자가 가구 장만하잖아요. 조그마한 전셋집이지만 그때 아내하고 가구를 보러 갔는데, 무지하게 비싸고 무엇보다 허접하고 약해 보이더라고요. 아내한테 제안을 했죠. '그 돈, 나 주라. 내가 만들게.' 그때만 해도 아내가 나에 대한 믿음이 강한 때라…, 믿으니까 결혼하는 거겠죠? 그 돈을 주더라고요. 바로 청계천으로 갔죠. 전동드릴, 중전드릴, 직소, 전동샌딩기 등을 샀죠. 그리고 인천 제재소에 가서 소나무 원목 큰 놈을 찍어 켜달라고 해서 갖다놓고 막내 동생한데 여름휴가 같이 보내자고 해서, 집 앞에다 펼쳐놓고 뚝딱뚝딱 일주일 만에 책장과 책상, 거실 수납장 겸 TV 선반을 만들었어요. 장롱은 '그냥 사자'고 아내가 말리더라고요. 힘들다고. 그게 사실은 내가 만든 게 너무 투박하고 맘에 들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도 새로 차린 살림에 내가 만든 책장이 자리잡다니, DIY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됐죠. 근데 문제는 3개월이 지나 이놈들이 뒤틀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결국 TV며 물건이 서 있지를 못하고 흘러내리는 바람에 버렸죠. 젖은 나무가 마르면서 휜다는 것을 놓친 거예요. 조립할 때 나뭇결에 대한 것도 놓치고 암튼 그 뒤로 내가 뭘 만든다 하면 아내는 반대하죠. 아내 돈이 아니라 내 돈으로 만드는 것 빼고."

"아마 그때 실패한 것이 앞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참, 공방 운영은 어떻게 해요?"

"회원제로 운영해요. 기초교실 이수 뒤 평생회비 10만원을 내면 공방을 자신의 작업장처럼 이용할 수 있어요. 회원은 공방의 시설과 각종 공구를 별도의 비용 없이 사용하죠. 단 철물과 목재 페인트는 사용분에 따라 지불하면 됩니다. 회원에게는 기초교실 이후에도 필요한 때에 목공 관련 정보와 지식을 지속적으로 알려주죠. 서비스업입니다. 완제품을 사거나 주문 제작을 통해 구입하는 것보다 30% 정도 가격이 저렴해서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돈보다는 주말을 뭔가 생산적인 일로 보내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이 찾습니다."

평생회원 가입을 약속하고 집으로 가는 길, '노가다'하고 일당 받아들고 가는 기분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얼마큼 했어? 괜찮아?", 딸아이가 "아빠 무슨 색으로 했어?"라고 묻는다.

"응, 내일 가지고 올 거야. 회색으로."

"회색!"

"응, 연한 회색. 예뻐."

두 사람 다 무지하게 궁금해한다.

"혜빈 엄마, 나 사진기자 때려치고 목수 할까?"

"뭐? 어디 아퍼!"

"아니…, 지금 당장 말고. 한 5년 정도 있다가. 너무 재미있어! 나한테 딱이야!" 주변을 맴돌던 딸아이가 거든다. "아빠 하던 거 해!" 이 말에 우스워 죽는 줄 알았다.

"아빠, 내 책상도 만들어줘. 응? 필통도."

"그래, 가방도 만들어줄게. 내일은 책장 마무리하고 다음주에 만들자."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식욕 떨어뜨리는 색?

이튿날 공방을 다시 찾았다. 일요일이어선지 전날보다 사람들이 많다. 남자보다 여자 회원들이 더 많다. '혜빈이를 괜히 데리고 왔나?' 또래 아이가 보인다. 안심이다. 혜빈이 신기해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어제의 내 모습이다.

"아빠, 이거야?"

"응, 예쁘지?"

"아빠, 근데 이 색이 식욕을 떨어뜨리는 색인데, 딴 걸루 해."

"안 돼. 이미 칠한걸." 헉, 식욕을 떨어뜨린다고!

전날에 이어 외부 페인트칠을 하고 바니시 마감. 한결 쉽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뒤판을 결합하고 줄자를 이용해 직각을 확인했다. 이어 디귿자 타카를 이용해서 뒤판과 본체를 고정했다. 드디어 완성. 용달차를 전화로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여유 있게 공방을 둘러봤다. 작은 체구의 윤성혜(34)씨. 어머니한데 선물할 콘솔을 만들고 있다. 공방 나온 지 3년 됐다는 윤씨는 DIY 재미에 흠뻑 빠져 멀쩡한 가구까지 남 주고 새로 제작할 정도란다. 이런 못 말리는 열정 덕분에 집안에는 '메이드 인 윤성혜' 표 가구들로 가득하단다. 지금까지 손수 만든 가구는 20여 개. 서랍장, 책장, 쌀통을 결합한 퓨전 수납장 등 종류도 다양하다. 더 이상 새로 만들 가구가 없어도, '그만 좀 만들라'는 남편의 푸념에도, 그녀의 DIY 사랑은 사그라질 줄 모른다. 요즘은 주로 친인척이나 이웃의 부탁을 받고 만들거나 친구 생일선물용 가구를 제작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예전에 식탁을 사러 다녔는데 맘에 드는 게 없어 직접 만들기로 작정하고 반쪽이 공방을 찾게 됐다"는 윤씨. 가구 만들기는 결코 거칠거나 위험한 작업이 아니다. 한 달 정도면 웬만한 수납장은 직접 만들 수 있을 만큼 배우기도 쉽다. 요즘은 공구가 다양해 여성이라고 특별히 힘들 것도 없다. 오히려 꼼꼼하고 세심함이 요구되는 작업이 많아 여성에게 더 적합한 면이 많다. 친구들과 카페에 들러도 원목의자나 테이블의 재료를 유심히 살펴볼 정도로 가구 보는 안목이 생긴 것도 부수효과다. 예전에 가구를 고를 때 디자인 위주로 선택했지만 요즘은 소재와 견고성을 첫째로 따지게 된다고 한다.

"시중에서 파는 가구들은 대부분 원목이 아닌 MDF(Medium Density Fiberboard)나 PB(Particle Board) 같은 대체 소재를 사용해요. 목재 등을 잘게 부순 뒤 목재의 섬유질을 추출, 접착제와 섞어서 고압으로 압착시킨 소재입니다. 가격이 싸 일반적으로 인테리어와 대부분의 가구에 쓰이지만, 유독한 방부제(포름알데히드) 방출이 심해 새집증후군, 아토피 피부염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니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죠."

흔히 사람들은 '원목가구는 비싸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윤씨는 "DIY 가구를 접한 순간 기성 가구가 얼마나 비싼지 새삼 실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취감·자부심에 저렴하기까지

아파트 문화 위주인 우리의 주거 특성상 가정에서 DIY를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몇 년 전부터는 각 지역에 공방들이 생기면서 DIY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 DIY 가구 만들기 취미를 가져봐도 좋겠다. 교외나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가족이 함께 노동하며 땀 흘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릴 적 가족과 나를 위해 썰매며 평상을 만드시던 아버지의 등을 보며 큰 사랑을 느꼈다. 그때의 아련한 기억이 남아서였는지, 아니면 나도 아버지가 돼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였는지, 나는 DIY 예찬론자가 됐다.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내가 만들었다'는 성취감에다 단 하나뿐인 물건을 우리 가족이 사용한다는 자부심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DIY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가구 만들기다. 뚝딱뚝딱 대패질, 못질해가며 내 집에서 쓰는 가재도구를 내 손으로 만들고 수리하는 기쁨을 느껴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대패질, 못질 한 번 안 해보고 자란 아빠들도 수두룩하니…. 이런 사람들은 '공방'의 문을 두드려보면 좋겠다. 수강료가 들지만, 기술이란 배워두면 두고두고 쓸 수 있고, 작업공간이나 공구, 재료 걱정도 덜어낼 수 있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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