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내 이리 될 줄 알았다"

2006. 11. 2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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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하다 내 이리 될 줄 알았다' 버나드 쇼가 자기 무덤에 새긴 마지막 말이다. 한미 유무역협정(FTA) 투자챕터의 '투자자-정부 제소권'을 놓고 이만한 촌철의 평은 없으리라 본다.

이 조항이 두루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한미FTA 협상 이후부터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10년 전 IMF 직후 한미투자협정(BIT) 협상 당시부터 협정문 초안에 들어가 있던 이 조항과 씨름을 해온 터라 나름대로 소회가 남다르다.

이 조항은 스크린쿼터를 유지하기 위한 기나긴 싸움의 결과 한미투자협정이 저지되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했었고, 문제 제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공론화되지는 않았던 사안이다.

● 치명적인 '투자자-정부 제소권' 조항

일반이 보는 것과는 달리 투자챕터는 한미FTA 모든 협상 중에 단연 으뜸의 비중을 가진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내 국적별 상장주식 보유비중을 볼 때 2005년 기준 미국계 자본이 50%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 한 해 우리 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거둬들인 평가차익이 82조원(820억달러)이라 할 때, 그 중 미국자본이 챙긴 평가차익은 못해도 400억달러라 보면 된다. 우리의 대미 무역흑자가 대략 100억달러 수준이라 보면, 그 비중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이 되리라 믿는다.

미국은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더불어 전세계에 다자간 투자협정(MAI)을 별도로 제안하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간에 수년간 계속되던 MAI협상은 그렇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미국은 이러한 다자틀과 동시에 양자간 투자협정(BIT)을 각국에 제안하였고, 그 중 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94년 당시 김영삼 정부가 거절했던 BIT는 IMF 이후 경제를 살릴 샛별로 화려하게 부활하였고, 이후 현 정부에 이어진다. 한미BIT는 그러나 스크린쿼터에 잠시 발목이 잡혔지만, 곧 한미FTA 투자챕터로 뒤집기를 시도, 지금 이 순간에 이르는 것이다.

투자챕터를 놓고 수차례 정부협상팀과 논쟁을 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 - 항간에서는 '이십억' 수석이라 불렀다 - 이 이끌던 '국정브리핑' 등을 통해 나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지난 8월 국회 FTA특위에서도 정부측은 기존 주장을 고수했다.

그런데 바로 그 며칠 뒤 3차 협상을 앞둔 정부측 협상안을 보고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용'에 관한 한 투자자-정부제소권을 인정치 않고 국내 구제절차로 이를 대신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투자 전반이 아니라 오직 '수용'에 한정되고, 또 '간접수용'에 관한 미국의 투자챕터 부속서를 우리가 받아들일 경우 그 효과가 반감됨에도 불구, 나름대로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에 지지를 보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간접수용이란 그 자체로 심각한 주권침해 여지가 발생할 수 있는 개념이다.

예컨대 간접수용에는 '과도한 조세 부과'도 포함되는데, 이럴 경우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론스타가 정부의 조세 부과를 '간접수용'이란 이유로 투자자-정부제소권을 발동, 한국 정부를 상대로 얼마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 이 정부 협상팀엔 너무 버거운 짐

하지만 이후 간헐적으로 접해본 협상팀 내부의 분위기는 '자신없다', '하는 만큼만 하자' 등이었고 그래서 나로서도 오직 미ㆍ호주FTA에서만 미국이 투자자-정부제소권을 접었는데 과연 우리 협상팀이 이를 관철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 4차 협상에서 두 번쯤 말하는 시늉을 했으면 충분하다는 것일까, 이제 그만 접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5차 협상부터 다시는 투자자-정부제소권에 대해 '협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권 말기, 그것도 지지기반이 거의 와해되어 버린 정권에게 한미FTA라는 짐은 사실 너무 버겁다. 그리고 이들에게 맡겨 두기에 잘못된 협상의 결과는 너무 치명적이다. 이제 그만 하고, 명예롭게 퇴각해 다음 정부에 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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