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 객원전문기자의 대한민국 통맥풍수]⑩풍수와 장법

2006. 11. 1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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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강화 전등사 동문 옆 소나무 숲. 스무 살 남짓한 두 자매가 소나무를 얼싸 안은 채 울고 있다. 햇볕이 잘 드는 정족산성 위 150년은 넘어 보이는 아름다운 낙락장송이다. 한 달 전 이 나무에 '죽어도 잊지 못할 아빠'를 화장하여 수목장으로 모셨다고 했다. '우리 아빠 나무'라며 보고 또 보고 얼싸안는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수명이 다하면 모든 생명체는 죽게 되어 있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어서 더욱 애달프다. 삼라만상 모두가 생멸을 피할 수 없다면 멸한 후, 죽은 후가 문제다. 이것이 장법(葬法)에 관한 것이다.

1997년 10월 이집트기자협회 초청으로 카이로 기자지구를 방문했을 때 쿠푸왕 피라미드(기원전 260∼248년) 내부를 샅샅이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사람이 한 생을 살다가 죽은 후의 일이 이토록 엄청난 사건인가. 보는 이마다 놀라는 현장이었다. 이집트 고대 왕조는 이보다 훨씬 전인 3000여년 이전에도 흙으로 피라미드를 조성하여 사후를 대비했다.

강화읍 일대와 전북 고창군 도리산 주변의 고인돌은 세계적인 돌무덤 표본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다. 특히 강화 고인돌은 그 모양이나 규모에서 고대 묘제와 장법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어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왜 그리도 장법을 중시했을까.

이집트 왕들은 보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묘를 조성하기 시작했고, 영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최고 재질의 석관을 만들어 현재까지도 시신을 보관해 오고 있다. 사원 내부에 가득 찬 음습하고 퀴퀴한 냄새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농경 생활 위주의 우리나라에서는 매장 방식의 토장(土葬)이 주류를 이루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찍이 동양의 불교권에서는 화장이었다. 인도인들은 자신이 죽은 뒤 깨끗한 장작더미에 화장돼 갠지스 강물에 뿌려지는 것을 최후의 행복으로 여기고 있다.

내세와 끊을 수 없는 게 장법이다.

◇수목장으로 모신 소나무를 정성으로 보살피며 가꿔 놓았다. 자손들은 '엄마 아빠 나무'라며 극진한 사랑과 애착을 갖는다. 국토 사랑과 자연 보호로 이어지는 새로운 장법이다.

우리 조상은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속의 뼈와 함께 있으면서 후손들을 돕는다고 믿었다. 동기감응(同氣感應)이다. 제례에서 향을 사르는 삼상향(三上香)은 하늘의 혼을 부르는 예법이고, 술을 땅에 붓는 집찬관지(執瓚灌地)는 땅속의 체백을 모셔 영과 육이 하나되게 하는 절차이다. 이 같은 제례법은 종교와는 전혀 무관한 조상의 숭조효행 사상이다.

이러한 전통 숭조 개념이 서양 종교와 대립하면서 묘제와 장법에까지 크나큰 변혁을 초래하게 된다. 불교는 자연회귀 사상에 바탕을 둔 다비(茶毘·화장) 장법이다. 매장을 하든 화장을 하든 결국에는 대자연과 동화된다는 원융 사상이다. 이와는 달리 기독교는 부활 신앙이 내세관의 핵심이다. 예수가 재림하여 성도들과 함께 승천할 때 육신이 없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이다.

2004년 고려대 김장수 농대학장 시신이 화장돼 참나무 아래 산골됐을 때 세상 사람들은 놀랐다. 조상 묘지에 나무뿌리만 침범해도 불효라고 야단법석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 후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이 노래의 고향인 목포 삼학도에 수목장으로 안장되면서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5년 사망자 중 53%가 화장을 택했다. 이 중 부산의 경우는 75%가 화장이어서 매장을 압도적으로 추월했고 지금도 전국적으로 화장서약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서 화장과 매장의 대체 장법으로 파생된 것이 바로 납골당과 납골묘이다.

필자도 이 분야에 새로운 관심을 갖고 뒤늦게 대학에서 장례풍수학을 전공한 바 있다.

흔히 납골묘와 납골당을 혼동하여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크게 다르다. 납골묘는 화장 후 매장하는 것으로 선택한 묘의 규모에 따라 여러 기를 모실 수 있는 석묘(石墓)다. 일정 지분의 땅이 있어야 하며 쇄골 후 항아리에 넣어 모셔 두는 장법이다.

◇매장과 화장의 장점만을 활용한 선조합동묘. 일정 단위면적에 많은 분의 조상을 한꺼번에 모시는 장법으로 현재 특허 출원 중이다(왼쪽), 서울시립 용미리 제2묘지 내의 납골당. 유족들이 단장해 놓은 꽃으로 향기가 넘친다. 갖가지 사연을 담은 편지도 꽂혀 있다.

납골당은 집이나 탑처럼 지은 층층의 공간에 화장한 유골을 항아리에 모셔 두는 장법이다. 단위 면적당 수용량이 많아 이른바 국토 면적의 효율성에서 단연 앞선다. 최근에는 유명 문중에서 선대 묘를 파묘하여 화장한 후 납골당에 모시는 사례가 늘면서 한때 제작 업체가 성업을 이루기도 했다.

납골당이나 가족 납골묘도 사용 연한이 제한돼 있어 처음 15년 계약 후 5년씩 3회를 연장할 수 있다. 결국 30년 후에는 새로 이장하거나 산골해야 하는 절차가 후손 몫으로 남게 된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서는 경기 고양시 용미리 묘지 등에 '추모의 숲'을 만들어 산골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석제 무덤의 문제점은 돌이라는 재질에서 기인한다. 암석이 친환경적이지 않을뿐더러 방치하면 자칫 흉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돌은 오랜 세월이 가도 풍화작용에 의한 침식이 있을 뿐 땅속에서도 썩질 않는다.

목·화·토·금·수의 오행 가운데 돌은 금에 속한다. 금생수(金生水)라 하여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밤 기온이 내려 가면 돌은 물을 머금는다. 이래서 유골함의 방습 처리가 잘못되면 습기가 자연발생하게 된다. 여기에 공기라도 유입되면 또 다른 부패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미 일부 환경단체와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묘제를 놓고 다양한 문제점과 대안을 내놓은 상태다.

현재 국내에는 상당수 납골당과 가족 단위 납골묘 운영 업체가 있어 성업 중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규모 시설이 있는가 하면 법인을 구성하여 분양하는 곳도 있다.

매장을 합리적으로 개선하여 효용성을 높이는 장법도 있다. 사단법인 정통풍수지리연구학회(이사장 윤갑원)가 창안한 '선조합동묘'는 제한된 공간 내에 여러 구의 유해를 동시에 이장하는 장법이다. 가로 28㎝ 세로 38㎝의 광중(壙中)을 조성하여 화장하지 않고 매장하는 묘제다. 부부간은 15㎝ 세대간은 20㎝의 간격을 두어 구분한다. 화장을 꺼리는 유족들의 정서도 보상되고 명절이나 시제 때 친·인척이 한자리에 만날 수 있어 문중 화합에도 기여하게 된다. 현재 이 선조합동묘는 특허 출원 중이다.

2030년 이후에는 전국에 산재한 40%의 묘가 무연고 분묘로 아무도 찾지 않게 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현재의 장묘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일부에서는 현재 방치된 분묘만 제대로 정리해도 국토 효용성이 달라질 것이란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대만은 타이베이 외곽 명당자리에 거대한 국립 납골당을 건립해 묘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화장에서 매장 효과까지 겸한 관리와 종교별 공간도 따로 마련하여 국민적 휴식공간으로 각광받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이제 우리도 국가 차원에서 장묘제도 개선과 대체 방안 마련에 나설 때이다.

◇이집트 카이로 기자지구 피라미드 묘제를 취재 중인 필자. 3000년이 넘은 흙 피라미드로 돌 피라미드보다 연대가 앞선다(왼쪽), 강화 고인돌. 고대인의 장법으로 기하학적 역학구조와 입지 선택이 놀랍다. 풍수학적으로도 명당 길지다.

가까운 시일 내 수목장이 법제화되면 우리 전통 장법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조계종 사찰에서는 경북 영천 은해사와 경주 기림사 등에서 수목장을 시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창건한 한수 이남의 고찰로 지장(地藏)성지 도량이다. 지난 8월 동문 쪽에 개방한 수목장은 예약이 쇄도하고 있어 '임종이 가까운 분'만 우선 접수하고 있다. 소나무 뿌리 주변을 30∼50㎝ 깊이로 판 다음 화장한 유골을 안장하며 나무는 절에서 돌봐준다. 장목(葬木)이 자연재해나 수명을 다해 손상되었을 때는 대체목으로 이식한다. 소나무의 수령은 대략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등사 스님들의 독경 소리를 들으며 안식하시니 영혼이 얼마나 편안하시겠습니까. 부모를 모신 나무는 자손들이 와서 지성으로 가꿉니다. 지나치는 신도들도 유골을 모신 나무를 함부로 안 합니다."

회주 장윤(章允) 큰스님의 법문이다.

수목장을 모신 나무에는 망자의 명패가 걸려 있고 주위에는 가족들이 가져온 돌로 경계를 만들어 꽃을 심고 나무를 가꾼다. 바로 숭조효성이 국토 사랑으로 이어지는 현장이다.

2006년 4월19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박종순 목사)도 '장묘문화 국제심포지엄'을 열고 기독교수목장운동본부를 발족한 바 있다. 이 밖에 다른 종단에서도 수목장지를 매입하여 신도들의 요청에 대비하고 있다.

토지 많아 무엇해 나 죽은 후에/ 삼척광중 일장지(一葬地) 넉넉하오며/ 의복 많아 무엇해 나 떠날 때에/ 수의 한 벌 관(棺) 한 채 족치 않으랴.

스님한테 들은 허사가(虛辭歌)의 일부다.

정녕 '나'는 어찌할 것인가.

시인·온세종교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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