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택의서울자전거여행] '45분 규칙' 거참 희한하네

2006. 9. 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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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 여행' ⑨

지구가 네모라고 믿던 시대가 있었듯이 지하철만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서울이 직사각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서울은 길다란 네모다. 제한된 면적에 수많은 역들을 집어넣다 보니 공간에 대한 왜곡도 일어난다. 구파발 옆에 의정부 북부역이 붙어 있고 심지어 천안이 성남의 모란역과 나란히 있다.

서울이 그렇게 직사각형이라면 밑변은 30㎞, 높이는 20㎞ 정도일 것이다. 서울은 남북보다는 동서로 더 뻗어 있다. 면적은 605㎢다. 그 직사각형 안의 두 대각선은 남산 부근에서 만난다. 중구 필동 어딘가가 서울의 중점이다. 서울에 들어와 W자로 흐르는 한강의 시계 내 길이는 36킬로미터밖에 안 된다. 마라톤 풀코스보다 짧다. 여기에 천만 명이 산다.

실제 서울의 모습은 아메바처럼 무정형적으로 꿈틀대며 퍼져 있다. 자세히 보면 외계인 E.T.의 얼굴 같기도 하다. 만약 북한산, 관악산, 수락산, 아차산, 청계산과 같은 훼방꾼들만 없었으면 원형을 이루며 뻗어갔을 텐데. <과학자의 눈으로 본 도시 이야기>를 쓴 제임스 트레필에 따르면 도시의 둘레에 있는 각 점들은 도심에서 같은 거리에 놓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어느 변두리든 도심에서 떨어진 거리가 거의 비슷하다는 얘기다. 물방울의 표면장력과 같은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뭔가 하나의 개체성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힘, 그 힘이 바로 출퇴근 시간이다. 트래필은 중심에서 변두리까지 가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릴 때까지만 도시가 커나간다는 걸 발견하곤 '트레필의 도시 팽창법칙'을 선포하기 직전까지 갔다. 좀 더 알아보니 도시계획자들 가운데 이미 '45분 규칙'이 있었다. 사람들은 일하러 가거나 장보러 가는데 45분 이상 걸리는 거리면 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런던은 빅토리아 여왕이 태어난 해인 1819년 인구가 80만 명이었고 중심에서 변두리까지 5㎞가 넘지 않았다. 대부분 걸어서 45분 거리 안에 있었다. 오늘날 거리가 10배 이상 늘어났지만 여전히 평균 통근시간이 45분 이하다. 지하철이나 열차로 통근하기 때문이다. 트레필은 바그다드에서 뉴욕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시에서 똑같이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했다.

노선표에 나타난 공간의 왜곡

서울도 비슷하다. 남단인 수서역에서 종로3가역까지는 지하철로 45분 정도 걸린다. 동단인 암사동에 사는 사촌동생도 을지로까지 오는데 지하철로 50분이 채 안 걸린다고 한다. 금천구의 시흥동에 사는 한 영국인도 광화문까지 오는데 50분 걸렸다고 말했다. 상계동 신내동 구파발에 사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50분 안 쪽이다.

모양은 울퉁불퉁하지만 서울의 변두리는 실질적으로는 물방울의 테두리와 같은 원주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면적이 605㎢니까 원의 면적을 구하는 공식 Πr²을 적용하면 서울은 지름의 길이가 28㎞, 반지름은 14㎞인 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반지름이 중요하다. 어느 변두리든 도심까지 가는 거리가 곳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14㎞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14㎞면 이봉주 선수 같은 이들은 50분 안에 달려서 주파하는 거리다.

자전거로 시속 14㎞면 매우 느린 편이다. 웬만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시속 28㎞는 우습게 낼 수 있다. 여기에 길이 반지름처럼 직선이 아닌 점, 또 고개가 있는 점 등 시간 증가요인들을 감안해도 대략 45분대의 도심 진입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고 나는 실제 그 경험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단순계산을 하면 자동차의 경우 시속 60㎞로 달리면 20분 안에 도심을 진입하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그 얘기가 성립하려면 다른 자동차들이 안 달려줘야 하니까 자기모순에 빠진다. 서울의 도로는 이미 자동차 포화상태. 한국처럼 개인적 공간이 적은 나라에서 자동차는 교통수단보다는 주거공간의 연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들으면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혼자 차를 몰 때가 아니면 없는 직장인들이 많다. 그러니 아무리 교통이 막히더라도 혼자 있고 싶은 사람들은 자동차를 끝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집이 걸어다니는 것이어서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틀어박혀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서울과의 격리이고 자연으로부터의 고립이다.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도로를 더 넓히는 것은 더욱 더 현명한 일이 아니다. 도로는 신기하다. 나도 트레필처럼 뭔가 근사한 교통량 불변의 법칙을 생각해냈다. 도로를 아무리 많이 내도 교통량은 일정하다는 법칙이다. 새로 도로를 내면 개통한 순간뿐이고 다시 자동차들로 가득 찬다. 해변 모래밭에서 손으로 길을 파면 바로 물이 들이닥치는 것과 같다. 새로운 도로는 새로운 교통의 수요를 발생시킨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독일의 수학자 디트리히 브라에스가 "도로를 내면 교통 체증은 더 심해진다"는 역설로 정리한 바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역시 내 머리로 뭔가를 생각해낼 정도라면 이미 세상에 다 나와 있는 것으로 추정해야 맞다.

이촌동으로 바뀐 한강 백사장

서울시는 그 동안 도로를 넓히기 위해 엄청난 일들을 벌여왔는데 수많은 무리수들 중 두 가지만 예를 든다면 너비 50m의 태평로를 만든다고 해서 고종의 왕궁이던 덕수궁이 담벼락을 내주고 뒤로 물러나야 했고 금화터널에서 사직터널로 이어지는 고가도로의 건설 때문에 일제도 건드리지 못했던 독립문이 눈물의 이사를 가야 했다. 그렇게 열심히 길을 닦고 넓혔지만 시내 차량의 평균 주행 속도는 계속 느려졌다. 2003년 서울 시내 주행의 평균시속은 불과 15.5㎞다. 자전거보다 느리고 시속 20㎞로 달리는 이봉주보다도 느리다.

서울에는 더 이상 도로를 낼 땅도 없어 보인다. 그것은 80년대 강북의 구의동 택지개발을 끝으로 한강의 간척사업이 끝났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땅을 넓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군사정부의 힘으로 경기도 시흥, 광주, 김포군에 있는 땅을 빼앗은 게 하나고 현재 강남 송파 서초 양천, 강서구 일대와 중랑, 광진구 일부가 해당된다.

두번째는 한강의 강안을 간척하는 것이었다. 그 이전 한강은 거대한 백사장을 거느린, 그래서 유역만 크고 실제 강줄기는 그렇게 실하지 않은 강이었던 것 같다. 유유했지는 몰라도 도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홍수가 오면 강물은 백사장을 넘어서 용산까지도 침수시킬 만큼 성질을 내곤 했는데 변덕스런 한강을 다스린 게 바로 72년에 완공된 다목적 댐인 소양강댐이다. 이 댐을 건립하고 강둑 제방을 쌓음으로써 한강은 순치되기 시작했고 과거의 백사장과 유수지가 일순 노는 땅으로 탈바꿈했다.

사실 간척사업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높이 123m의 소양감 댐이 세워져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상류의 넓은 유역이 물에 가라앉았고 따라서 오랜 마을들이 아틀란티스처럼 사라졌다. 한강 상류와 하류에 있는 땅들의 교환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그렇다면 소양강 상류에서 땅을 잃은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생겨난 땅을 주는 게 정당한 보상이었을지 모른다. 그 땅들의 현재적 가치에 비춰보면 최대의 재분배 잔치가 됐을지 모른다.

서울 시내에 갑자기 생겨버린 땅을 택지로 바꾼 첫 작품이 동부이촌동 아파트 단지다. 나는 50년대 말 신익희 선생이 한강백사장에서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할 때 당시 80만 명의 서울 유권자들 중 30만 명이 운집했다는 말을 듣고 거기가 어딘지 항상 궁금했었다. 아무리 봐도 그런 군중을 수용한 백사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이 지금은 호화 아파트촌인 동부이촌동이었을 줄이야. 이 사실을 손정목 선생이 쓴 <서울도시계획 이야기>에서 처음 알게 되면서 약간 현기증을 느꼈다. 맙소사! 그런 지리적 반전이.

서울은 그렇게 믿기 어려운 격변의 현장이다. 이어 동부이촌동을 마주보고 있는 유수지였 던 구반포, 그리고 잠실과 압구정동도 섬 또는 유수지에서 거대 아파트 단지들로 탈바꿈했다. 구의동을 끝으로 한강 자체의 간척사업은 완료됐고 한강 지류인 안양천변의 개발을 통해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가 생겨난 것을 끝으로 서울 안에서의 평면적 확장은 멈췄다.

현대건설이 작살낸 섬 저자도

건설의 시대 건설회사들은 특혜를 누렸다. 한강변 택지개발 사업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공유수면 매립 허가를 얻어 제방을 쌓고 차단된 땅에 모래와 흙을 부어 다지면 끝이었다. 조성된 택지는 정부기관에서 매입해줬고 그 땅에 아파트를 지으면 건설에 참여해서 돈을 다시 벌었다. 한가지 골치거리는 어디서 그 많은 모래와 흙을 구하느냐는 것. 그 때는 한강의 모래가 동이 나 연탄재를 갖다 붓던 시대였다.

현대건설은 그래서 섬 하나를 작살 냈는데 바로 그 섬이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면서 분만한 저자도였다. 과거에는 한강의 4대 섬으로 꼽혔고 닥나무가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던 저자도는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 섬의 모래와 흙은 지금은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의 바닥에 깔려 있다.

그래도 나는 중랑천을 따라 동호대교로 자전거 타고 갈 때마다 혹시 저자도가 물 위로 부상하지 않을까 유심히 보곤 한다. 여전히 중랑천과 한강의 물길이 서로 감기면서 모래와 흙들을 떨구어 놓기에 딱 적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무지막지한 개발 시대에 유실된 섬의 부활. 그것은 자연과의 공존의 시대에 딱 맞는 상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여름 홍수가 지나고 물이 빠지자 실제 모래언덕 하나가 강 위로 떠올랐다. 위치는 저자도가 있었던 곳의 맞은 편이면서 약간 하류인 동호대교 남단. 이곳은 한강이 흐르는 모양인 W자 중 가운데 봉우리에 해당되는 부분. 한강이 90도로 방향이 꺾이고 난 직후의 지점이다. 물길이 급하게 꺾일 때 유속은 바깥쪽에서 빠르고 안쪽에서 느려질 수밖에 없으니 자연 남쪽에 모래가 쌓이는 것. 아니면 저자도의 유령이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괴물>이라도 돼서 모래언덕을 밀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몇 주 이 섬을 지켜본 결과 물이 더 빠질 때 이 섬이 강안과 연결된 것으로 드러났다. 잠실이 강북에서 생겨난 반도였던 것처럼 강남에서 새 반도가 돋아나고 있는지 모른다. 서울시가 유속을 고르게 한다는 이유로 매년 수십억 원을 들여 모래를 퍼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참고=지난 회 멋진 건물의 사진을 실으면서 그 정체를 모른다고 했는데 청계9가에 있는 서울문화재단의 건물이었습니다. 과거 성북 수도사업소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시민들에게 개방돼 있다고 서울문화재단의 오진이님께서 연락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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